2006년 충무로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바로 ‘다양성’이었다. 영화 <괴물>의 폭발적인 흥행과 이에 따른 독점적 배급문제의 야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을 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먼저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영화를 살펴보면, 2006년은 그야말로 영화의 상찬이었다. 무려 108편의 영화가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대안가족(가족의 탄생)에서 동성애(후회하지 않아)까지, 애니메이션(아치와 씨팍)에서 다큐멘터리(비상)까지, 사극(왕의 남자)에서 뮤지컬(삼거리극장)까지, 어린이(아이스케키)에서 동물(마음이…)까지, 괴수(괴물)에서 사이보그(싸이보그지만 괜찮아)까지 다종다양한 작품들이 까다로운 관객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었다.
한국영화가 대외적으로 다양성을 인정받은 것은 벌써 몇 년째 이어온 사실이지만 2006년처럼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 시기는 없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생산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산업의 파이가 커지다보니 제작 편수가 급증했다는 점. 둘째, 가부장과 미국 주도의 사회 지배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색다른 소재 발굴이 용이했다는 점. 셋째, 중국, 일본처럼 특정 장르의 전통이 없어 여러 장르의 모색이 가능했다는 점. 넷째, TV드라마의 강세로 인한 사극과 시트콤 등의 스크린 이식이 수월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영화 다양성의 취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째 제기돼 온 특정영화의 대박에 따른 아류작들의 양산은 차치하고라도 여러 장르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등장했음에도 유독 공상과학(Sci-Fi)과 미스터리 스릴러와 같은 전통적인 장르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하나다. 특히 공상과학영화의 경우, 2006년 단 한 편도 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장르에 대한 시장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 점에서 2006년 등장한 다양한 영화들의 대부분이 특정 감독에게만 의존했다는 사실은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흥행에 실패했거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경우 지속성을 갖지 못해 하나의 영역으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를 기능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드웨어, 즉 극장이다. 극장 역시 상품과 같아서 다양성을 가질 경우 나름의 시장을 만들 수가 있다. 무엇보다 스폰지, 씨네큐브, 하이퍼텍 나다 등 특정 장르와 작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극장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산업논리가 팽배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들 극장들이 갖는 힘은 크지 않다.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단지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장르영화에 대한 기반이 더욱 튼튼해져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들의 상영을 보장할, 멀티플렉스와는 차별화된 더욱 많은 전문극장들의 등장이 필요하다.
(2006. 12. 9.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