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사람이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다. 생산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도축되었는지, 동물의 삶이란 무엇인지, 맛있는 고기 한 점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동시에 그대로 소화(?)해버린다.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있다.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다.
황윤 감독은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작별>(2001) 등의 작업을 통해 차에 치여 죽는, 동물원에 갇혀 야생의 본능을 누리지 못하는 동물의 권리 보호에 대해 역설한 적이 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도 그의 연장 선상에 놓이는 작품이다. 다른 지점이 있다면 평범한 우리 일상을 출발점 삼고 있다는 것.
육아에 한창이던 황윤 감독은 어느 날 구제역에 따른 돼지 도살처분 보도를 접한다. 아들과 함께 돈가스를 즐겨 먹던 그녀는 고민에 빠진다. 앞으로 돼지고기를 먹을 것인지 아닌지의 차원을 넘어 살아 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평생을 좁은 스툴에 갇혀 먹고 자고 새끼를 생산하는 사육 방식을 직접 목격하면서 충격에 빠진다.
비윤리적인 돼지고기 생산 방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 시일 안에 덩치를 키워 도축하기 위해 유전자 변형 사료를 먹이기까지 한다. 한국에서 돼지는 과연 안전한 먹을거리인지 회의가 들 때쯤 황윤 감독은 윤리적인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농장주를 만난다. 그는 돼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천연의 먹이를 수시로 제공한다.
이것이 과연 돼지의 삶이 아닌가, 흐뭇해 하기도 잠시. 수컷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돼지 새끼들을 거세하는 광경을 보면서 윤리적인 사육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딜레마에 빠진다. 그리고는 육식을 포기한 황윤 감독은 채식 식단으로 식사를 차리지만, 어린 아들과 남편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힌다.
그래서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당장에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하라며 계몽하는 다큐멘터리인가? 사실 육식이냐, 채식이냐는 개인의 선택 문제다. 황윤 감독은 이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개입하지 않는 대신 육식을 하더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 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알았으면 하며 강요하지 않는 시선을 내비친다.
물론 감독의 바람은 채식에 맞춰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 상대적으로 윤리적인 방식으로 얻게 된 고기와 돼지의 살아생전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교차하는 편집은 고기를 먹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 그렇더라도 돼지의 눈이 도드라진 클로즈업을 보고 있으면 감독의 심정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실상 따져보면 고기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개인 선택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는 또한 소수자의 배려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채식을 선택한 후 황윤 감독이 경험하는 고민의 문제는 단순히 육식도 원하는 가족과의 갈등에만 있지 않다. 채식주의자를 고려하지 않는 음식 제조와 식당의 메뉴 문제는 한국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삶의 힘겨움을 드러낸다.
그렇더라도 그 힘겨움을 감수할 때 얻을 수 있는 보람은 우리에게 음식의 재료로서만 지위를 갖는 동물의 삶과 권리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돼지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은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바이러스 문제는 결국 인간이 자조한 것이 아니냔 말이다. 결국, 채식은 또한 인간의 안전한 삶을 담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고기를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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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