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Northern Limit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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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 4위 결정전이 있던 날, 서해 연평도 NLL 인근에서 벌어진 남북 간 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북한 경비정 684호기가 대한민국 참수리 357호 고속정을 기습 공격한 것. 영화는 그날 참수리 375호에 승선했던 대원 중 윤영하 대위, 한상국 하사, 박동혁 상병을 중심에 놓고 연평해전의 긴박했던 순간과 그 직전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박동혁(이현우) 상병은 의무병으로 참수리 357호에 승선한다. 박 상병이 낯선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건 조타장 한상국(진구) 하사다. 이들은 모두 잠든 밤에 갑판 위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먹으며 군 생활의 낭만도 나눈다. 하지만 윤영하(김무열) 대위는 그런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 참수리의 정장이다. 언제 어디서 북한군이 도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군기를 다잡기 위함이다.

이들은 나라를 지킨다는 목적 하나로 모였지만, 개인사는 제각각이다. 박 상병은 말을 하지 못하는 엄마 혼자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한 하사는 지금 아내가 임신 중이라 매일 같이 곁에 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다. 해군 출신의 아버지를 두고 있는 윤 대위는 혹시나 아버지의 명예에 누가 될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연평해전>을 연출한 김학순 감독의 목적은 확실했다. 영화로나마 이 나라를 지켜준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는 것. “이 전투로 인해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유가족분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이 영화를 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대한 애정과 사랑, 관심을 우리가 다 같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것이 어디 연평해전의 희생자뿐일까. 영화는 중간중간 천안함은 물론 박 상병과 윤 대위의 고향이 안산이라는 사실을 노출하며 세월호 희생자까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상기시킨다.

사실 연평해전만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면, 이 영화가 왜 지금 이 시기에 제작되어 개봉했는지에 대한 맥락이 잘 잡히지 않는다. 연평해전이 남긴 메시지와 가치를 무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연평해전을 영화화함으로써 획득하는 동시대성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평해전>은 이에 천안함과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국가를 위해 한 몸을 바친, 그리고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희생자들이 한국 국민의 기억 속의 역사에서 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와 제작의 당위성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연평해전>의 제작 방식은 여느 영화와 다르게 일반인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이 영화의 제작에 관심이 있는 7,000명에 달하는 이들이 십시일반 하여 제작비 일부를 책임졌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은 <연평해전>의 엔딩 크레딧에 모두 올라갔을 정도다. 모두가 공유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를 모토로 내건 <연평해전>의 제작 배경과 영화적 메시지를 고려할 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영화에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연평해전>은 기획 단계부터 논란이 있었던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한국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남북’ 간의 교전을 다루다 보니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이 영화는 제작부터 개봉까지 무려 7년이나 걸렸다. 제작비 수급이 어려워 촬영이 미뤄지고 주연 배우들도 거듭 바뀌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가까스로 제작비를 마련했고 개봉에 이르렀다.

논란은 작품을 지워버린다

영화가 공개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보수언론에서는 ‘유족과 해전 생존자들이 참석한 시사회는 눈물바다였다’며 <연평해전>의 감동 코드에 고무된 눈치다. 반면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이 영화의 태도가 불만인 이들은 ‘애국심 팔이’라는 직설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영화가 취한 실화 소재의 색깔(?) 때문에 개봉 전부터 논란과 논쟁이 팽배했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변호인>(2013)은 고(故)노무현 대통령을 다뤘다고 하여 ‘빨갱이’ 영화라는 딱지가 붙었고 <국제시장>(2014)은 한국 사회의 근대화를 이끈 아버지 세대에 대한 노골적인 헌사를 담았다고 하여 ‘꼰대’ 영화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와 같은 논란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하며 두 영화 모두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연평해전> 역시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 이라는 예상을 내놓으려는 게 아니다. 영화 외적인 논란이 커지다 보면 남게 되는 건 흥행 관련 수치뿐이다. 정작 영화 자체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럼으로써 흥행과 작품성이 동일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영화는 소위 ‘대박’ 영화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영화를 양산한다. <연평해전>이 전형적인 예다.

<연평해전>의 제작의도는 의심할 바 없이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새겨야 할 가치다. 다만 이를 풀어가는 연출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이 영화가 다루는 제2연평해전(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에 벌어져 우리 군이 완승했다!)은 우리 군의 희생이 컸던 탓에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 응전개념으로 교전수칙이 변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해전이었다. 그중 ‘희생’에 주목하는 <연평해전>은 이에 대한 많은 접근 법 중에서도 가장 쉬운 방법인 감동 코드를 택한다.

이유는 뻔하다. 앞서 언급한 실화 소재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비결이 바로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평해전>은 윤영하, 한상국, 박동혁 세 주인공의 희생으로 눈물을 극대화해야 할 남모를 가족사에 대해 전반부를 할애한다. 남북 교전이 펼쳐지는 후반부에는 각종 첨단 기술과 장비로 볼거리의 규모를 키워 감동의 스펙터클을 배가한다. 그리고 그 볼거리는 참수리 357호에 승선한 우리 군이 피해를 당하는 장면에 집중된다.

연평해전에서 한국군은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으며 참수리 357호가 침몰했다. 북한군은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684 경비정이 대파됐을 만큼 그 피해가 우리보다 더 컸다. 엄연히 대한민국의 승전으로 기록됐지만, <연평해전>만 보면 우리 군이 대패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다. 한국군의 피해를 더 커 보이게 만드는 것이 감동을 내세워야 할 이 영화의 전략이었을 터다.

그러다 보니 <연평해전>은 한국군의 피해만 있되 그 뒤의 더 많은 것을 의도적으로 빠뜨리거나 숨긴다. 예컨대, 서해 연평도 NLL 인근에서 북한군이 선제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으면서도 이 사실을 전하지 않은 해군 수뇌부의 비상식적인 행위에 대해 영화는 굳이 따져 묻지 않는다. 오히려 연평해전이 벌어지던 그 시간,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인 붉은 악마들의 모습을 교차하며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그날의 아픔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물어야 할 책임을 누락시킨 채 감정만 강요하는 연출은 불편함을 부른다. 그 맥락은 한국영화가 흥행이라는 수치에만 몰두해 새로운 영화적 시도를 외면하는 작금의 영화계 풍경과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시사저널
(20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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