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로 이에 대한 국내의 관심도 뜨겁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동성결혼을 다룬 다큐멘터리 <마이 페어 웨딩>이 개봉한다. 주인공은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제작자 김승환이다.
세기의 결혼식
김조광수는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제작한 청년필름의 대표이자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를 연출한 감독이다. 또한, 커밍아웃한 게이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9년 지기 연인이 있다. 김승환이다.
김승환 역시 김조광수와 더불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최초의 퀴어 영화 전문 수입사 ‘레인보우 팩토리’를 설립해 운영 중에 있다. 김조광수와는 나이 차이가 무려 19살이나 나지만, 프러포즈를 받고는 결혼을 결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결혼은 당연한 것이지만, 성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에 이들의 결혼식 소식은 9시 뉴스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이 결심을 결심한 이후 2013년 9월 7일 청계천의 광통교에서 공개 결혼식을 벌이기까지 그 과정을 담은 작품이 바로 <마이 페어 웨딩>이다.
<마이 페어 웨딩>을 연출한 이는 장희선 감독이다. 장희선 감독은 <꽃다운>(2009) <고추말리기>(1999)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마이 페어 웨딩>은 여성과 관련한 테마는 아니지만, 결혼식의 주체가 ‘동성애자’, 즉 여성과 같은 소수자라는 점에서 연장 선상에 존재하는 작품인 셈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결혼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임에도 이 영화에는 의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전략이 있다. 대단한 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분위기가 밝다. 흔히 결혼식을 두고 모두의 축복을 받는 평생에 한 번인 이벤트라고 얘기한다. 안타깝게도 <마이 페어 웨딩>의 주인공 커플은 그렇지가 않다. 이들의 결혼식을 두고 일부 보수 단체와 기독교 인사들이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경우는 차치하고 한국 사회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성정체성을 드러내기를 망설인다. 김조광수와 김승환 커플이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포장하며 자신들의 결혼식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성대하게 치룬 이유다. 국가적인 관심사로 결혼식을 치루면 동성결혼에 대한 공론화가 가능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성소수자의 인권을, 커밍아웃을 독려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마이 페어 웨딩> 역시 그의 일환이다. 주인공 커플이 의도적으로라도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장희선 감독도 결혼식 중 발생한 인분 투척과 같은 불미스러운 해프닝을 부각하기보다는 결혼식 자체가 주는 축제의 성격을 강조하는 데 연출의 주안점을 둔다.
당연한 결혼식
장희선 감독은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결혼식 다큐멘터리 제안을 받고는 일반적인 결혼식 비디오를 찍어달라는 말인줄 오해하고 거절했었다는 일화를 전한다. 그러다가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사회의 가장 오래된 제도인 결혼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얘기하는 아이러니가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는 김조광수와 김승환과 같은 성소수자들에게 사랑을 제도화하는 결혼은 특별한 어떤 것일까?
김조광수와 김승환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를 이뤘지만, 성격은 판이하다. 김조광수는 성소수자와 관련한 불합리한 사안은 앞장 서서 개선을 요구할 정도로 대중 앞에 서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물이다. 반면 김승환은 김조광수를 만나기 전까지 공개적인 자리에 나선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중 앞에 자신을 노출한다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공개 결혼식에 찬성했음에도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다.
영화가 아무리 이들 커플의 밝은 모습과 결혼식의 긍정적인 풍경을 중심에 놓고 있더라도 특정 사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까지 감추지는 않는다. 김승환은 김조광수가 자신들의 결혼식을 사회운동처럼 프레임을 짜는 것 같아 불만이 가득하다. 이에 대해 김조광수는 부담을 갖지 말라며 즐기라는 말로 불만을 다독이지만, 경직된 김승환의 표정은 이들의 결혼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아니나 달라, 촌철살인처럼 김조광수가 내뱉는 말. “결혼식을 만약에 못 한다면 다큐멘터리는 재밌겠지”
김조광수와 김승환은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의 편견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으로 공개 결혼의 큰 그림에는 일치를 보았다. 그 과정에서 김조광수는 좀 더 큰 사회적 이벤트로 판을 벌리고 싶은 눈치이고 김승환은 자신들의 결혼식이 사회적 이슈가 된 상황에서도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원하는 바가 다르다보니 말을 안 하는 상태에 이르고 누군가의 입에서는 “이 사랑을 왜 갉아먹고 있는 거지”라며 볼멘소리도 나온다. <마이 페어 웨딩>이 영화적으로 의미를 갖는 부분이다.
이미 결혼을 했거나 곧 결혼을 앞둔 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결혼 준비 과정은 워낙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기 때문에 커플 간의 신경전과 대립이 가장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갈등 역시 결혼식을 앞둔 예비 부부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말해 성소수자의 결혼이라고 해서 이성애자들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마이 페어 웨딩>이 성대한 결혼식 자체보다 당사자들의 준비 과정에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이 결혼식을 굳이 사회적인 이벤트로 이슈화해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목의 ‘마이 페어 웨딩 My Fair Wedding’, 즉 ‘당연한 결혼식’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이 영화 속 인터뷰 영상에 등장할 때면 같은 쇼파에 앉아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런 작은 행동에서마저도 평등을 지향하는 이들의 보편적인 가치가 여실히 묻어난다. 그렇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시선이 이들의 결혼을 의도치 않게 ‘세기의 결혼식’으로 몰고 갔다.
결혼식 이후에도 성소수자의 평등한 권리를 찾기 위한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사회 운동은 진행 중에 있다. 이들은 공개적인 결혼식을 치뤘음에도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다. 혼인 신고를 당국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이 보수적인 제도인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했던 이유. 그것은 제도권에 투신하겠다는 의미가 아닌 존재를 인정받겠다는 당연한 권리 주장의 한 형태다. 그리고 이들이 부부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이 <마이 페어 웨딩>에서 보여준 사랑이라면 능히 그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긍정하게 된다.
시사저널
(2015.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