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영화처럼

mad-max

컬러가 지배적인 시대에도 사람들은 흑백에 열광한다. 흑백영화에도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것처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블랙&크롬>(2016)
한마디로 미친 영화다. 물과 기름을 차지했다는 이유로 인류를 지배하다니, 그야말로 미친 독재자. 그렇게 미친 세상 바꿔보자며 독재자에 달려드는 미친 객기의 사람들. 이걸 CG를 최대한 자제하고 맨몸 액션으로 밀어붙인 미친 연출. 모 아니면 도인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해 블랙&크롬 버전으로 재개봉했다. 연출자 조지 밀러 왈, “흑백 버전은 <매드맥스>를 즐기기에 최고의 조건이다!”

<동주>(2016)
우리에게 윤동주 시인은 흑백 사진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에 착안해 이준익 감독은 <동주>를 흑백 필름으로 촬영했다. <동주>는 윤동주를 우상화하지 않는 대신 일제의 만행에 시로 맞선 그의 모습을 통해 저항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도록 한다. 컬러와 다르게 흑과 백 단 두 가지 색으로 이뤄진 <동주>는 관객의 눈을 현혹하지 않고 여백의 미를 통해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유하게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두 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장 흑백, 2장 컬러로 진행된다. 1장은 극 중 영화감독이 백지상태에서 이야기를 구상하는 내용이, 2장은 이를 기본삼아 만든 영화로 이어지는 식이다.  그러니까, 1장과 2장은 긴밀하게 연결된 형태다. 백지에 검은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게 1장이라면 2장은 색을 부여하는 과정인 셈. 컬러는 결국, 흑백이 있어야 의미를 획득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프란시스 하>(2012)
젊은이의 성장은 독립을 의미한다. <프란시스 하>는 가진 것 없는 대학생 프란시스가 자신의 재능과 타고난 성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독립영화도 그렇다. 주류영화의 규격화된 틀을 탈피, 영화 자체가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끔 주력한다. 흑백필름이 의미를 갖는 이유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천연색의 볼거리가 판을 치는 거대 영화 산업 안에서 독립적인 방식으로 젊은이의 독립을 이야기한다.

<아티스트>(2011)
할리우드의 무성영화 시절을 주름잡던 최고 스타가 유성영화의 출현에 따라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미셸 아자나비슈스 감독은 흑백의 무성영화 기법으로 필름이 사라진 현대의 영화 현실을 은유한다. <아티스트>는 사운드 대신 자막으로, 마임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표정과 행위 연기로, 그리고 상영시간 내내 계속되는 음악으로 현대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로 다가간다.

<마더>(2009)
<마더>의 흑백 버전은 홍경표 촬영감독이 <설국열차>를 촬영하던 중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인물에 집중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하는 효과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확실히 컬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제공한다. 봉준호 감독은 “스산한 흑백의 느낌이 <마더>와 어울린다. 인물의 섬세한 연기도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마지막 순간, 흑백에서 컬라로 전환하는 순간이 황홀하다.

<친절한 금자씨>(2005)
<친절한 금자씨>는 아동 연쇄살인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금자씨의 복수를 그린다.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의 중반부터 화면이 조금씩 탈색해 결국 완전한 흑백으로 전환하는 실험적인 기법을 활용하려 했다. 극 중 복수심에 불탄 금자씨가 결국엔 복수의 무용함을 깨닫는 과정을 컬러에서 흑백의 전환으로 드러내려는 목적이었다. 컬러 먼저 개봉 후 흑백 변환본도 극장에 걸렸다.

<씬 시티>(2005)
밤의 세계가 낮을 지배하고 선인이 악한에게 착취당하는 씬 시티는 흑이 백을 압도한다. 로버트 로드리게스는 원작의 이야기와 특유의 이미지로 구현된 세계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원작자 프랭크 밀러에게 공동감독을 제안했다. 필름의 검은 부분을 탈색하는 방식으로 흑백 이미지를 강조하는 한편, 피와 같은 일부 대상에만 색을 부여함으로써 전에 본 적 없던 이미지의 영화를 만들었다.

<플레전트 빌>(1998)
TV 시트콤 ‘플레전트 빌’을 시청하던 남매가 흑백 TV 속으로 들어간다. 극 중 플레전트 빌은 질서정연하지만,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 흑백의 세계다. 남매는 이곳 주민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파하고 그에 따라 화면은 점점 컬러로 변한다. 컬러로 촬영된 이 영화는 특정 장면을 위해 선별적으로 색깔을 빼고 그 위에 흑백을 입히는 방식으로 컬러와 흑백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쉰들러 리스트>(1993)
홀로코스트를 다룬 가장 유명한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다. 1,100명의 폴란드 유대인의 목숨을 구한 나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주인공이다. 스필버그가 흑백으로 만든 이유는 어린 시절 ‘기억’때문이다. 유대인 스필버그는 유년기에 나치의 만행에 관련된 영상을 많이 보았다. 그 끔찍한 기록들은 모두 흑백이었다. 그 자신에게 유대인 학살에 대한 기억은 흑백 영상이었고 그래서 컬러로 찍기 힘들었다.

 

ARENA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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