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은 블레이드 러너의 꿈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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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레이드 러너>는 어둡다. 내용 뿐 아니라 화면도 영화 내내 어둡다. 밤이 배경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밤이건 낮이건 영화 속 LA는 늘 어둡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한 초대형 마천루들이 햇빛을 차단한 까닭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암연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부르주아가 경쟁하듯 세워놓은 초고층 건물들이 태양을 가린 탓에 지상에 거주하는 하류층 노동자들은 어둠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이들의 시선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빛이란 그저 초고층 건물에 걸린 초대형 광고물들이 쏟아내는 현란한 조명 뿐.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이미지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에는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자가 권력자로 등장한다. 극중 레플리칸트를 생산해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한 타이렐은 피라미드 형 건물을 본사로 가지고 있는데 권력의 최상부를 뜻하는 꼭대기 층에 타이렐의 회장이 거주한다는 설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 정부가 제2롯데월드 건축 시공을 최종 승인했다. 2014년이면 잠실에는 555m 높이의 112층 초대형 마천루가 들어선다. 근데 그 과정이 탐탁지 않다. 인근에 서울공항이 위치하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간 항공기와 충돌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 시설 제2롯데월드 건축은 불허됐는데 활주로 방향을 변경하고 장비와 시설을 보완한다는 전제로 이번 정부 들어 허가가 난 것이다.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를 기꺼이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안전을 우려하는 주변의 의견을 무시할 정도로 회장님 자신의 숙원사업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권력은 늘 높은 곳을 지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시한다. 서울시장 재직 시부터 대기업 CEO 출신 대통령은 과시하는 정책을 자주 선보여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그 뒤를 이어받은 현재의 서울시장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서울에 세계적인 랜드 마크를 세우겠다며 여러 곳에 초대형 건물을 기획하고 계시다. (용산에 세워지는 (이름 조차!) ‘랜드 마크’ 빌딩은 무려 665m라고 한다!) 그런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는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3. 외국의 영화감독들이 서울에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 언젠가 서울을 배경으로 Sci-Fi 영화를 찍고 싶다, 고 답한다. 서울 곳곳을 채우고 있는 초현대식 건물과 고층 빌딩의 압도적인 스펙터클에 감화 받은 탓이리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심정이 묘해진다. 서울에 친근함을 드러내려는 얘기이면서 동시에 비인간적인 도시 환경을 꼬집는 내용이 아닐까 의심되기 때문이다. 이제 Sci-Fi라 하면 거의 디스토피아와 동의어인 까닭이다. 안 그래도 요 근래 서울이 보여주는 도시의 속성은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도시가 보여주는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는 옛 도읍의 정취, 도시 미화라는 미명 하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서민들, 인간의 감정체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도시 설계. 그래서 난 몇 년 뒤 강남의 잠실에 세워질 제2롯데월드의 건물을 상상하면 <블레이드 러너>의 피라미드 형 타이렐 건물이 오버랩 된다. 112층 꼭대기에서 최상급의 햇살을 만끽하며 우리의 회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하늘을 찌르는 자신의 권력욕에 달콤해하실까. 더욱 견고해진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 높고 압도적인 제3롯데월드를 구상하는 건 아니실까. 확실한 건 제2롯데월드가 국민의 안전은 물론 누군가의 생존권을 짓밟고 그 위에 건설됐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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