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탕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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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영화제의 최고 스타를 꼽자면 단연 탕웨이였다. 김태용 감독과의 결혼 이후 첫 공식 석상이기도 했던 부산영화제에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불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영화 관련, 각종 지면에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샤오홍으로 분하다

그녀가 올해 부산영화제를 찾은 이유는 신작 <황금시대>가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심플라이프>(2012)의 허안화 감독이 연출한 <황금시대>에서 탕웨이는 서른한 살에 요절한 중국의 1930년대 여류 작가 샤오홍으로 분했다.

사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난 샤오홍은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지만 글쓰기로 이를 이겨낸 작가였다. <황금시대>는 생전에 샤오홍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진술로 샤오홍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얼마나 대단한 작가였는지가 입체적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생사의 강>(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을 읽은 지인은 이렇게 평가한다. “가난과 굶주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몸서리쳐지게 쓴 글은 처음 봤어요.”

경우는 다르지만, 탕웨이 또한 <황금시대>의 샤오홍을 연기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렸다. 샤오홍이라는 인물이 중화권에서 유명할지 모르지만, 서구 관객에게는 낯선 인물이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대극의 특성상 투자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탕웨이는 샤오홍을 연기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직감했다. 긴 시간을 기다린 것은 물론, 아예 ‘노 개런티’로 이 영화에 참여했다. 자신과 닮은 점이 많아 샤오홍에 애착이 갔기 때문이다.

샤오홍이 할아버지로부터 문학에 대해 배웠던 것처럼 탕웨이는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예술가의 피를 물려받았다. 샤오홍이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것처럼 탕웨이 역시 배우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연기 생활에 매진했다. 1979년생인 탕웨이가 <색, 계>(2007)로 유명해진 건 그녀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다. 연기자 데뷔(드라마 <경화연자>(2004))도 늦었지만 <색, 계>로 스타 반열에 오른 것도 동갑내기 장쯔이가 2000년 <와호장룡>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 비하면 느지막이 이뤄졌던 셈이다.

그래서 장쯔이가 겉으로는 강한 척 속으로는 약한 내유외강 형의 철부지 역할을 주로 맡았다면 탕웨이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외유내강인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색, 계>에서 그녀가 연기한 막 부인은 원래 연기를 전공하는 순진한 대학생이었지만 짝사랑하던 선배가 친일파 암살 계획을 세우자 이에 동참하는 역할이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해내고 마는 것. <색, 계>뿐 아니라 김태용 감독과 함께했던 <만추>(2011)의 애나도 아는 오빠를 사랑하는 평범한 여자였지만 결혼 후 불화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후 복역하는 인물이었다.
 
탕웨이가 관객에게 주는 인상 역시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꽤 순진하게 보이는 인상과 더불어 촬영장에서는 스태프에게 먼저 장난을 치는 등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이지만 <색, 계>의 출연으로 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극 중 친일파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일 뿐 아니라 이를 위해 노출을 마다치 않는 연기로 한동안 중국 당국으로부터 중국에서 제작되는 모든 작품의 출연을 정지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대신 그녀는 <만추>와 같은 한중 합작 영화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갔다. 이를 배우로서 더 단단해지는 계기로 삼으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

그 과정은 <황금시대>의 샤오홍이 겪은 여정과 얼마간 닮아있다. 집에서 쫓겨났지만, 좌절을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이름을 날린 후에도 성공에 안주하기는커녕 일본의 침략으로 잿더미가 된 중국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글로 중국인의 단합을 호소했다. 부산영화제의 국내 공식 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탕웨이는 샤오홍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녀는 나약한 동시에 거칠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한없이 예민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중략) 이처럼 상충되는 요소들이 그녀 안에 들어있었던 것 같다.” 이는 샤오홍뿐 아니라 탕웨이에게 해당하는 평가이기도 하다.  

연기생활 10년을 맞이하다

<황금시대>를 연출한 허안화 감독은 그 자신이 여자인 만큼 여성의 삶, 특히 여성에게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는 여인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황금시대>도 그런 맥락에서 허안화 감독은 샤오홍에 대해 “시대를 잘못 만난 현대여성”이라고 표현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가족을 포기하고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대신 자신의 맘에 들었던 남자를 선택했던 샤오홍의 삶은 지금 이 시대의 여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허안화 감독의 견해다.

샤오홍이 들어갈 자리에 탕웨이를 대입하면 어떨까. 물론 비약이 따르는 대입이다. 중국 원저우 출신의 그녀가 조국을 버리고 한국의 영화감독에게 시집온 건 아니니까. 하지만 배우와 감독의 결혼에서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배우 쪽이다. 하물며 탕웨이 같은 스타가 타국 출신의 감독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건 팬들에게는 늘 극적인 드라마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가는 현대 여성의 초상이 샤오홍과 겹쳤기 때문에 허안화 감독은 탕웨이를 0순위로 캐스팅했다.

흥미로운 건 촬영현장에서 탕웨이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보다 감독의 지시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타입의 배우라는 점이다. 단국대 영화콘텐츠 전문대학원 ‘영화연기 현장학습’ 특강에서 탕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100% 감독에게 의존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나는 중간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샤오홍은 자신의 힘으로 삶을 일구어 갔지만, 남자 친구에게 너무 의존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삶이 어려울 때 꼭 샤오홍의 곁에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샤오홍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 <황금시대>를 만들면서 허안화 감독이 샤오홍과 친분을 맺었던 실제 인물로 분한 배우들의 서술로 이야기를 끌고 간 건 바로 이런 의도였다. 1911년에 태어나 1942년에 폐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에 샤오홍이 지금도 주목받는 것일 테다. 실제로 영화는 그녀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다루지만 그중 작가 생활 10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고 보니 탕웨이가 연기자로 데뷔한 지도 올해로 딱 10년이다. 샤오홍은 작가 생활 10년 동안 100편의 글을 남겼지만, 탕웨이는 영화 11편을 비롯해 20편이 조금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그럼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색, 계>의 막부인, <만추>의 애나, 그리고 <황금시대>의 샤오홍까지 순한 외모만 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강렬한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낸 까닭이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과 인물 때문에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진다고 느낀다”는 탕웨이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황금시대’라고 말한다. 지난 9월 <황금시대>가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마련된 기자회견 자리에서 탕웨이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는 기자들은 그녀의 기분에 대해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탕웨이가 답변한 내용이다. “전혀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부모님이 건강하고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돈 걱정도 없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어 너무 행복하다.” 탕웨이의 황금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  

시사저널
(201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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