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속의 그대>(Dear Dolp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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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감독의 <환상속의 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동명의 히트 곡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라는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극 중 주인공들이 함께 부르기도 할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서태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제목이나 노래 가사처럼 <환상속의 그대>는 연인의 갑작스런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인공이 환영을 헤매다 빠져나오는 사연을 다룬다.

혁근(이희준)과 차경(한예리)은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기옥(이영진)은 차경과 절친 사이다. 차경은 기옥의 집에 놀러갔다가 자전거를 빌려 혁근에게 돌아오던 중 브레이크가 고장 나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그 후 1년. 혁근에게 호감을 가졌던 기옥은 이제 차경의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났으려니 하는 생각에 서서히 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혁근은 겉으로만 멀쩡할 뿐 차경을 떠나보내지 못해 환상 속에서 그녀를 보고, 심지어 대화도 나눌 정도다.

마음을 비우고 새로 채운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가장 친했던 친구가 죽었다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고통이 어디 이루 말할 수 있으랴. 영화는 차경을 잊지 못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혁근과 그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는 기옥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충돌을 통해 마음속의 미련을 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아있는 이들이 품고 있는 미묘한 감정의 형태, 즉 혁근은 그 자신이 차경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걸 타인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기옥이라고 다를까. 기옥은 차경의 기일 1주기를 맞아 채 정리되지 못한 감정으로 혁근과 나눈 섹스가 충동적인 것이었는지, 사랑의 행위였는지 그에게 확인받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그럼으로써 이 둘은 자신(들)의 환상 속에 죽은 차경을 불러들이게 되는데 그것이 서로에게는 마음의 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강진아 감독은 ‘돌고래’라는 의외의 존재를 통해 이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 감정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강진아 감독은 전작 <백년해로외전>(2009)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코끼리를 등장시킨 전례가 있다. 코끼리와 돌고래가 실제로 상처를 치유하는 기능을 가진 동물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덩치가 주는 포근함, 물속에서 생활하기에 느껴지는 생명력이 차경에 대한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러다보니 <환상속의 그대>는 죽음이라는 다소 불편한 소재가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전체적인 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인물 간의 갈등이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갖는 악감정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무너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기에 오히려 관객들이 이들에게 갖는 감정은 긍정성이다. 그것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차경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 즉 혁근과 기옥이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 상대방의 감정을 100% 이해한다는 건 허구다. 다만 <환상속의 그대>는 영화라는 초월의 매체를 통해 혁근의 머릿속에 들어가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는지를 스크린에 구현함으로써 최대한 이해하려고 든다. 이 영화 속 현실과 판타지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 강진아 감독은 이렇듯 영화적인 방식을 통해 인물들을 바라본다. <환상속의 그대>는 영화가 어떻게 인물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통찰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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