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속의 그대> 강진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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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속의 그대>는 각각 사랑하는 연인이자 친한 친구인 차경(한예리)을 사고로 잃은 혁근(이희준)과 기옥(이영진)이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죽음이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지만 영화는 역설적으로 밝고 화사하게 진행된다. 이는 영화를 연출하고 집적 시나리오를 쓴 강진아 감독이 극 중 인물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짙게 배어있는 까닭이다.

연출은 물론 각본도 직접 썼다. 개인적 사연이 바탕이 됐나?
단편 <백년해로외전>(2009)을 관객들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주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얻어걸린 느낌이었다. 영화가 가진 것보다 관객 개인이 가진 것들을 더해서 좋아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뒤에는 내가 조금 잘못된 이야기를 했다, 라는 자기 평가가 오기 시작했다. <백년해로외전>은 혼자서 이별을 감당하는 이야긴데 그러다보니 절대 답이 없는 거다. 조금 안 좋은 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가 받아들이기 싫어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혼자서 0.1%도 움직이기 힘들다면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으면 10%, 20% 변화가 있을 수 있는 건데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후회가 많이 들었다. 그렇게 찜찜함이 있던 터에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던 게 길이가 길어져서 장편이 됐다. 초고의 제목은 <깨어나는 시간>이란 가제를 붙였다. 지금 <환상속의 그대>는 판타지와 현실이 꼬여있는데 초고 때는 훨씬 더 심하게 꼬여있었다. 그걸 친한 작가 언니와 다듬어 지금의 형태가 됐다.

판타지와 현실이 난무하지만 영화는 그걸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혁근처럼 너무 힘든 일을 겪었다면 친한 사람도 다가가지 못하는 선이 있을 것 같다. 무슨 생각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니까. 그걸 즉물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떤 화학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불렀던 동명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극 중에서 주인공들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김광석, 서태지를 좋아한다. 시나리오 작업 시, 차분한 장면을 쓸 때는 김광석의 노래를,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부분을 쓸 때는 서태지 노래를 듣는다. <환상속의 그대>의 경우, 시나리오가 좀 안 풀릴 때였다. 뒷부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서태지 노래를 듣게 됐다. ‘환상속의 그대’는 원래 사랑이나 이별 얘기가 아니다. 젊은이야 나가서 행동해라, 생각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런 내용의 가사다. 그런데 <환상속의 그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영화 내용과 쏙쏙 맞춰서 들리는 거였다. ‘환상속의 그대’라는 게 영화를 너무 잘 설명하는 거다. <깨어나는 시간>보다는 낫잖나. (웃음) 개인적으로 노래방에서 ‘환상속의 그대’를 즐겨 부른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민망해서 안 부른다. 극 중에서 혁근과 차경과 기옥이 무반주로 이 노래를 부르는 건 이들이 정말 친하다는 얘기다.

그에 반해 영문 제목은 <Dear Dolphin>이다.
작가 입장에서 혁근과 기옥이 잘 살아가기를 응원해야 하잖나. 하지만 이들이 건강하기를 응원하기 위해서는 차경이가 괜찮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차경이가 고통 속이나 상실감 속에서 존재한다면 혁근이나 기옥이 온전하게 나아지는 걸 응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경이 괜찮다는 설정을 준 게 돌고래 무리와 지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었다. 현실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훨씬 따뜻하고 행복한 공간일 수 있다. 그러니까 혁근과 기옥 너희는 차경에게 신경 쓰지 말고 너희의 삶을 살아라, 라는 의도에서 돌고래를 등장시키게 됐다.  

<백년해로외전>에서는 코끼리를 등장시켰다. 돌고래와 코끼리, 덩치가 크지만 온순한 동물들인데 이들에게서 받는 특별한 인상이나 감정이 있나?
<시튼 동물기>에는 순록처럼 커다란 동물들이 무리 지어 사는 게 묘사되어 있다. 읽을 때마다 그 모습에 대한 동경들이 느껴졌다. 나는 개나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들을 잘 못 만진다. 나한테 영향을 받아서 망가지거나 부서져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친구가 애기를 낳아도 못 안겠다. 내가 이 생명체에 해를 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근데 코끼리 같은 거는 오히려 내가 쓰러지는 거지 그들이 쓰러지는 건 아니니까. 그게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는 부분이다. <환상속의 그대>의 돌고래는 순전히 사적인 이유에서 들어간 거다.

극 중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게 된 연유도 궁금하다. 특히 기옥이란 이름이 독특하다. 특히 성이 ‘원’이다보니까, 감독의 입장에서 기옥을 응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김혁근’의 경우, 넌 남자니까 울면 안 돼, 그렇게 강요를 받았을 것 같은 이름이라서 좋았다. 실은 나쁜 의미인데 그런 틀 속에서 길러질 때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을까, 이 사람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제대로 사고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의 인생이 염려스러웠다. ‘성차경’은 외할머니 이름인데 아들 낳게 해달라는 이름이다. 그래서 외할머니 본인은 되게 싫어하시는데 내가 본 할머니는 단단하고 똑똑하고 진취적이시다. 그래서 차경이란 이름을 할머니에게 허락받고 혁근과 함께 <백년해로외전>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원기옥’은 최근에 들어온 이름이다. 친한 애니메이션 작가 언니가 일본 만화 <드래곤볼>의 원기옥을 좋아한다. 원기옥을 뭉쳐야 한다, 쏴야 한다, 장난을 치다가 캐릭터 이름으로 써먹을 거라고 언니가 한 번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와는 장르가 겹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먼저 쓰겠다고 했다. (웃음)

혁근의 직업은 간호조무사다. 남성적인 이름과 달리 직업은 상대적으로 여성적인 쪽에 가깝다.  
극 중 혁근 나이 대의 간호조무사는 없다. 혁근 나이 정도 되면 간호사나 물리치료사가 된다거나 다른 파트로 빠진다. 혁근이가 계속 간호조무사로 남아있다는 건 선택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면 자기 진로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걸 유보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하거나 진취적이기보다는 그저 착하고 남을 돕는 거에 대해서 만족을 할 만큼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차경의 직업이 플로리스트인 건 영화 속에서 그녀가 정말 예쁘길 바랐다. 차경이가 생동감이 넘치지 않나.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주변에 계속 제공함으로써 살아있는 삶을 대변하는 느낌이 됐으면 했다.

그와 다르게 기옥의 이미지는 차경과는 정반대다. 예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옥이 키가 크고 차경이 작은 것처럼 외형적인 스타일이 정반대다.
<환상속의 그대>에는 차경과 기옥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없다. 진짜 우정이 깊다, 라는 설정이 있어야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 체계는 키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놀게 만든다. 다만 키 차이 나는 애들끼리 친한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으면 가능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애들은 후에 성인이 되어서 키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는 거다. 작은애랑 큰 애랑 친하게 지내면 ‘쟤네 옛날부터 친했나 보다’내지는 ‘맞는 취향이 있나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키 차이를 두고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한)예리씨가 되게 섬세하다. 얼굴 생긴 것도 그렇고 표정 변화도 다양하다. 여자인 내가 보더라도 너무 예뻐서 대화를 할 때 얼굴만 보게 된다. 나처럼 기옥도 차경을 예쁘게 봐줬으면 바랐다.

극 중 인물들의 옷 스타일이 빨강, 주황, 노란 계통으로 울긋불긋한데 그 역시 인물들이 예쁘게 보였으면 바란 연출자의 의도이었나?
<환상속의 그대>를 만들 때는 힘들어도 기분 좋아지라고 밝은 색 옷을 입었다. 나는 혁근과 기옥과 차경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어두운 면이 있는데 다 건강해지기를 바랐다. 그랬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밝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관객 분들도 그런 화사한 느낌 속에서 이 사람들의 결을 읽었으면 좋겠다. 톤이나 화면 자체까지 너무 깊이감이 느껴지면 숨을 못 쉬는 영화가 되겠다, 내러티브에 안착하기 전까지 알록달록해 보이면 이입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중요하게 내세우는 감정은 혁근과 기옥 사이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이다. 예컨대, 혁근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차경이라는 환상을 본다는 얘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 기옥은 그런 혁근을 보면서 함부로 정신 차리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연기는, 특히나 테크닉적인 면은 디렉팅을 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감독이 배우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시나리오를 설명하는 것뿐이다. 근데 대화가 조금만 깊어져도 소통이 잘 안 된다. 사람들 각자에게 네거티브한 단어와 포지티브한 단어가 디테일하게 다 다르다. 감독과 배우 사이도 그렇다. 내가 오랫동안 써왔던 단어대로 나가면 배우들이 이해를 못 한다. 그래도 계속 설명하다보면 맞는 단어들이 생긴다. 시나리오를 지도(地圖)로 해서 그 감정이 어떻게 나왔는지 설명할 때 단어를 많이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미 예리씨는 앞서 네 작업 정도를 해서 단어들이 어느 정도 맞춰져 있었다. 다만 (이)영진씨나 희준 오빠와는 단어를 맞추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배우들이 많이 답답해했다. (웃음)

차기작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나?
<환상속의 그대>에서는 내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을 쥐어짜서 만든 영화다. 그러다보니 다음 작품은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따라가는, 우습고 재밌는 영화를 하고 싶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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