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火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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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화장>은 김훈 작가의 소설 중 처음으로 영화화되는 작품이다. 김훈 작가의 첫 번째 단편소설이기도 한 <화장>을 연출한 이는 임권택 감독이다. 임권택 감독에게 <화장>은 그의 102번째 작품이다. 각각 문단과 영화계에서 존경받는 이들이 만난 작품인 <화장>은 쉬이 말하고 보이기 힘든 소재를 단순화하여 묘사하지만, 깊이 있는 시선으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화장(化粧)과 화장(火葬) 사이

오상무(안성기)의 아내(김호정)는 4년의 투병 끝에 숨졌다. 사인은 재발한 뇌종양. 오상무는 몸과 마음을 바쳐 병든 아내를 돌보았지만, 병시중과 고단한 업무에 지쳐 그의 마음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정신적 고통으로 조각난 마음의 빈틈으로 욕망이 스며든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젊은 여직원 추은주(김규리)다. 병들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아내와 다르게 젊고 아름다운 육체로 빛을 발하는 추은주는 단번에 오상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암에 걸려 죽은 아내라는 현실과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는 추은주라는 욕망 사이에서 오상무는 심한 갈등을 겪는다.

작품의 제목은 시체를 불에 살라 장사를 지내는 ‘화장’(火葬)을 의미한다. 동시에 오상무와 추은주가 화장품 회사에 근무한다는 설정상 얼굴에 바르고 곱게 꾸미는 ‘화장’(化粧)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삶이란 게 늘 화장과 화장 사이일 테다. 생(生)과 사(死)가 연결되어야 삶이 완성되지만, 우리는 언제나 빛과 같은 삶을 동경하고 욕망한다. 이성으로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어둠을 외면하고 싶은 게 우리 인간의 이중성이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바로 번민이다.  

영화는 추은주와 아내 사이 마음의 지옥에 갇힌 오상무의 시선을 달리해 보여줌으로써 삶과 욕망의 두 얼굴을 대비한다. 오상무에게 아내의 화장(火葬)이 몸으로 부딪히는 현실이라면 추은주의 화장(化粧)은 추상화된 개념에 가깝다. 일례로, 치료로는 암을 회복할 수 없어 별장을 찾은 아내와 오상무는 생애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가진다. 아내는 삭발한 머리와 수술 자국을 감추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이불 속에 병든 육체를 가린 채 오상무와 섹스를 나눈다. 그때 오상무의 머릿 속에는 아내 대신 추은주가 자리하는데 명화 속 여인처럼 전라 차림으로 싱싱한 육체를 전시한다.  

오상무에게 4년을 병간호한 아내는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이다. 뇌종양으로 온몸의 기능이 거의 마비상태인 아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질비질 똥을 흘리고는 수치심에 눈물을 흘린다. 남편인 오상무는 그것이 지난 4년간의 일상이었다는 듯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아내의 항문 주위를 깨끗이 닦아낸다. 전혀 가리지 않는 영화의 적나라한 묘사 속에서 관객은 오상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른다. 아무리 백년해로를 맺은 부부라고 한들 망가지고 죽어가는 육체 대신 지금 막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싱싱한 육체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을 말이다.

마음은 추은주에게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이를 발현해야 할 오상무의 행동은 머뭇거림의 극치다. 죽어가는 아내를 놔두고 젊은 여자를 탐하다니 결혼한 딸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세상의 시선이 두렵다. 또한, 남자로서 비뇨기과의 도움을 받아야만 방광에 가득 찬 오줌을 배설할 수 있는 늙은 몸뚱이로 젊은 여인의 육체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그저 추은주를 대상화된 존재로 거리를 둔 채 바라보거나 머릿속 상상의 이미지로 은밀한 욕망을 대리할 뿐. 오상무는 지금 내면에서 벌어지는 번민의 여행을 거듭하며 어떻게 하면 가벼워질 수 있을까, 깨달음을 갈구 중이다.

감독 임권택과 작가 김훈 사이

안 그래도 오상무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에도 다가오는 여름 회사의 사운이 걸린 신상 화장품의 선전 문구를 두고 고민 중이다. ‘내면 여행’과 ‘가벼워진다’ 중 오상무가 하나를 선택해야만 예산을 집행하고 광고를 진행할 수 있다. 물론 아내와 추은주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상무의 심리를 은유하기 위한 의도적 설정이다. 몸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화장>이라는 작품의 껍질 같은 기능을 한다면 이를 깨고 들어갔을 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건 윤리와 욕망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여전히 방황하는 오상무의 심리다.

이처럼 마음과 육신을 오상무의 병든 아내와 추은주로 대비해 형식으로 치환하는 방식은 영화와 소설 공히 다르지 않다. 여기에 이 작품의 핵심이 있는 까닭이다. 흥미로운 건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의 임권택 감독과 김훈 작가의 묘사법이다. 쉽게 말하면 영화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차이일 텐데 더 자세히는 두 어른이 견지해온 매체에 대한 각각의 철학이 작품의 주제를 공유하고도 미묘하게 다른 접근을 만들어낸다. 임권택 감독이 오상무의 갈등을 구도의 길로 묘사한다면, 김훈 작가는 보편의 감정으로 끌고 간다.

흔히 김훈 작가의 문장을 두고 ‘단단하다’고 평가한다. 그 근거는 작품의 배경에 대한 철저한 취재다. 기자 출신답게 김훈의 소설에는 우리네 삶에 대한 극적 과장, 즉 일말의 수식이 감지되지 않는다. 웬만해서 페이지의 한 줄을 넘지 않는 짧은 문장은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과 판단을 철저히 차단한다. 예컨대, 오상무의 아내가 숨을 거뒀을 때의 묘사가 그렇다. ‘심전도 계기판의 눈금이 0으로 떨어지자 램프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면서 삐삐 소리를 냈다. 환자가 이미 숨이 끊어져서 아무런 처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삐삐 소리는 날카롭고도 다급했다.’  

그래서 김훈이 소설로 다루는 내용은 어느 개인의 특별한 사연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감정임을 문장 자체로 설득한다. 임권택 감독이 소설 <화장>을 영화로 각색하면서 의사 출신이자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폭로했던 <하얀정글>(2011)의 송윤희 감독을 작가로 섭외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의 윤리 또한 김훈의 소설관과 다르지 않다. “나는 환상이 있는 인생을 산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뼈아프게 느끼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그래서 삶 자체를 가지고 영화적 환상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대신 임권택의 영화는 ‘삶이란 고통’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것을 한국인 특유의 한(恨)의 정서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오상무도 일종의 한을 갖고 있다. 아내의 병간호와 죽음이 그렇거니와 그 세월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젊은 여인을 욕망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과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 또한 요원치 않다. 추은주를 욕망하는 오상무의 현재는 아내의 뇌종양이라는 과거와 혹은 아내의 죽음이라는 현재와 젊은 부하 여직원에게 마음을 뺏겼던 과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임권택의 영화도, 김훈의 소설도 일단 아내의 죽음을 각각 오프닝과 첫 문장에 내세운 후 오상무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서술법을 택한 것이리라. 역시나 과거와 현재 사이에 갇혀 고통받는 오상무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쌓은 마음의 업보에서 벗어나는 것. 소설은 추은주의 사직과 아내가 남기고 간 개를 안락사시키면서 오상무가 자연스럽게 마음의 짐으로부터 가벼워지는 결말로 나아간다. 계절이 바뀌듯이 인간의 삶 또한 번내와 극복을 순환한다는 의미일 터다.  

임권택 감독에게 그 배경은 ‘길’이다. 영화 <화장>에는 오상무가 거니는 길의 이미지가 주요하게 두 번 등장한다. 아내와 추은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밤의 유흥가 거리를 헤맬 때, 아내가 죽고 추은주는 중국으로 떠나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났을 때 훤한 낮의 거리 장면이 그렇다. 임권택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떠돌아다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구도자처럼 거니는 주인공들이 비로소 깨닫는 것은 생과 사를, 낮과 밤을 잇는 길이 결국 삶이라는 진리다. 화장(化粧)과 화장(火葬) 사이, 임권택과 김훈 사이, 거기에 어른들이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있다.  

딴지일보
(201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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