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장준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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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감상을 방해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화이를 연기한 여진구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여진구가 가진 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이미지를 최대치로 끌어낸 공로자는 다름 아닌 장준환 감독이다. <지구를 지켜라!>(2003)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겉에 보이는 이야기 뒤에 숨은 이면의 메시지를 끌어내는 데 있어 장준환 감독은 여전히 뛰어난 면모를 과시한다. 약자를 억압하고 괴롭히는 지주를 외계인에 비유했던 <지구를 지켜라!>처럼 <화이>에서는 살부(殺父), 즉 아버지라는 운명을 뛰어넘어야 하는 아들 세대의 이야기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상징적으로) 죽이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들이 아버지(들)을 막 죽여요. 전 그게 통쾌하더라고요. (웃음) 정말로 아버지를 죽여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넘어서야 할 일종의 운명 같은 존재잖아요. 그런데 한국영화에서는 늘 운명에 순응하고 좌절하는 젊은 세대들만 보여줬어요. 전 그게 불만이었는데 <화이>는 그런 점에서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매료됐기다보다는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었어요. 작품 안에서 이야기로서의 완성도와 진심이 없으면 굉장히 위험한 얘기가 될 거라고 봤어요. 화이(여진구)가 교복을 입고 나와서 아빠들을 죽이는 ‘쎈’ 이야기를 단순히 이야깃거리로 삼아서는 안 되는 거였죠. 그래서 제가 각색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화이>가 이야기로서 완전히 설 수 있게 만드는 거였어요. 석태(김윤석)는 화이에게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라는 부분에 많이 매달렸어요.

진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화이의 다섯 아버지들은 감독님 나이 대와 비슷한 386세대예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투사들이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안위와 보신을 위해 그들의 아버지 격인 ‘개발의 아버지들’과 손을 잡았죠. 말하자면 괴물’에’ 삼킨 아이들인 셈이죠. 하지만 화이는 그런 386세대 아버지의 비극을 답습하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차마 밖으로 꺼내놓기 어려운 괴물을 마음속에 한 마리씩 키우면서 산다고 생각해요. <화이>는 그런 괴물을 직접 대면하고 들여다보자, 라는 얘기예요. 저는 이 영화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부분을 건드리면서도 굉장히 지역적이길 원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된 한국의 386세대들이 파주의 시골 화훼단지에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게 저는 되게 재밌는 포인트라고 봤어요. 그 때문에 굉장히 양가적인 욕심이 많이 들었죠. 일단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액션 스릴러 성장영화로 다가가는 게 중요했고요. 관객들에게 뭔가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 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하고 바랐어요. 가벼우면서도 동시에 깊고 넓은, 이런 식으로 양가적인 것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욕심을 냈어요.  
 
그 양가성의 핵심은 순수한 소년이 아버지를 죽인다, 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화이>는 잔인한 묘사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최대한 줄인 거예요. 소년이 괴물이 되기를 강요받고 결국 괴물로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2단 짜리 뜀틀을 뛰어넘는 수준의 장면을 보여주고서 나 괴물 됐어요, 이러면 진짜 웃기잖아요. (웃음) 가시덤불을 넘고 살이 찢기면서 피를 흘리는 정도의 통과의례가 이야기상 필요했던 거죠. 무섭게 잔인하게 보이더라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야 관객들이 화이의 성장과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영화 잔인하고 피 튀기니까 멋있지, 그런 자극적인 작품이 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감히 말하자면, 저는 이 영화가 완전해지기를 원했죠.

저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게 그와 같은 ‘독한 의지’라고 봤어요. 극 중 화이처럼 아버지를 넘어서라는 차원에서 말이죠. 지금 젊은 세대들이 입시와 취업 문제로 고통 받는 원인 중 하나는 그들의 아버지와 그 윗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발버둥친 결과잖아요. 그런데 화이는 아버지들이 만들어놓은 폭력적인 양육의 틀을 넘어서려 하고 결국엔 이겨내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위로하기보다 상처를 입을지언정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고 봤어요.  
저도 그렇지만 화이의 아버지 세대들은 한참 성공신화가 등장하던 개발 신화의 끝에서 주위를 밟고 올라서면 너도 훌륭하게 될 수 있어, 자식한테 내가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자식이 그렇게 크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던 시대를 산 사람들예요. 질문이 의도한 것처럼 그런 식의 느낌이 은연중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모든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나를 넘어서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잖아요. 석태도 그런 감정인 것 같아요. 내가 내 안의 괴물을 끄집어내서 괴물이 된 것처럼 화이 너도 네 안의 괴물을 부수고 나와라 하는 감정 말이죠. 다만 석태 마음의 밑바닥을 바라보면 화이를 향해 천사도, 괴물도 아닌 신비한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놓여있지 않았을까 해요.    

화이가 석태를 향해 총을 쏘는 마지막 순간에서의 석태의 마음이 그랬겠죠. ‘네가 감히 나한테 총을 쏴’ 그러는 동시에 ‘이제야 네가 나를 넘어서는구나’ 하는 양가적 감정 말이죠.  
그전에 석태가 화이를 향해 나를 죽이라고 소리 지르잖아요. 그건 한국의 아버지들하고 많이 통하는 거 같아요. 나를 밟고 넘어서, 그리고 어떻게 됐든 나보다 더 나은 존재야 돼야해. 다만 석태의 입장에서 아이러니한 건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화이가 자신을 넘어서는 걸 본 순간 헤어져야 한다는 거죠. 행복하면서 슬프고, 무엇보다 앞으로 화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감정상으로 굉장히 복잡했을 거예요.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이에요.
그렇죠. 화이와 석태가 농원의 집 장면에서 얼굴을 맞대는 마지막 순간의 촬영은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어요. 개인적으로 그 순간이 굉장히 보고 싶었어요. 시나리오에 묘사되기를, 석태가 총을 겨누다 내리고 씨익 웃는다, 그러면 화이의 입에도 미소가 번진다. 둘의 모습이 왠지 닮아있다. 제가 각색하면서 만든 장면인데 이 두터운 감정을, 영화적인 한 순간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죠.

감독님도 성장과정에서 아버지를 넘어서야겠다는 감정을 가진 적이 있겠죠?
없지 않았죠.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엄마와 더 친했어요. 굳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아버지를 적대시하는 감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권위적이거나 그런 분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부드러운 분이셨죠. 주위에서든, 제 친구들을 통해서든 무섭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들은 많이 봤어요. 심정적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사춘기 때 많이 겪지만 아버지를 넘어서야 하는 그런 통과의례의 단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화이에게는 좀 빨리 온 편이죠?
강요당한 거죠. 중요한 건 석태를 포함해서 화이의 아버지들은 그 시기가 오리라는 걸 다 예감하고 있었어요. 특히 진성 같은 경우는 석태와 화이의 관계가 갈수록 불안해지니까 해외로 보내려 하잖아요. 석태를 향한 극 중 대사 중에 이런 게 나오지만 “나이 먹어서 맛탱이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예전의 석태와는 약간씩 달라지는 느낌. 물론 본인도 그걸 느끼는 거겠죠. 나는 늙어 가는데 아이는 커가고,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죠.

근데 저는 석태 같은 사람이 아버지면, 제가 나이를 먹어도, 아버지가 점점 늙어가도 계속해서 무섭고 두려울 것만 같아요. (웃음) 극 중에서 석태를 묘사하는 장면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그건 사람의 눈이 아니야”  
석태 역할에 제일 먼저 생각난 배우는 김윤석 선배였어요. 리더의 느낌, 무엇보다 아버지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천하장사 마돈나>(2006)의 마초적인 아버지 캐릭터 때문에 그런가. 한국의 아버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김윤석 선배에게 제일 먼저 갔어요. 근데 너무 힘들 것 같다면서 약간 빼시더라고. 근데 저는 하실 줄 알았어요. (웃음) 제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런 식의 캐릭터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아요. 파워풀하면서 복합적이고, 또 다층적이면서 자기 안에 화두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악의 끝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를 얼마나 자주 만나겠어요.

그만큼 석태는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인데 서로 어떻게 잡아갔나요?
그리스 비극에 흔히 나오는 부자(父子) 관계의 비극성. 그리고 일본 소설, 제목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어요. 아버지의 원수가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요. 대신 그 사람에게 굴복해서 그 밑으로 들어가는데 나중에 비겁하게 등에서 칼을 꽂죠. 그때 죽어가던 원수가 주인공에게 “나를 그렇게 죽일 걸 후회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요. 그 얘길 듣고 주인공은 미쳐가는 거죠. 이와 같은 묘사는 석태가 임형택(이경영)과의 사이에서 어떤 문제적 인간이 되는 순간에 관한 것 같아요. 그렇게 김윤석 선배와 저는 석태와 그 주변과의 관계에 대한 베이스가 잘 통했어요. 근데 막상 어떻게, 어느 정도로 표현할까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죠. 사람의 눈이 아닌 인물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미친놈처럼 보여준다고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주는 건 아니니까요.

여진구 배우 같은 경우는 어땠나요, 시나리오를 보고는 선뜻 화이 역할을 맡겠다고 하던가요?
굉장히 하고 싶어 했어요.

보기보다 당차네요. 아무리 본인과 동갑인 17살의 인물을 연기한다지만 화이와 같은 복합적인 성격과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죠.
영화들어가기 전에 화이가 어떤 아이일까를 유추하고 느껴보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같이 일기도 쓰고 그랬는데 예를 들면, 영주 엄마 발가락은 왜 잘려 있을까, 그날 화이가 보지 않았을까, 같이 상상해보자. 버스 첫 차가 다니는 새벽 시간에 엄마와 화이가 아버지들로부터 도망을 가요. 차가 떠나려는 걸 겨우 막아서 간신히 버스에 타게 되죠. 그때 석태 차가 버스 앞에 확 끼어들어요. 그렇게 차를 멈춘 후 석태가 버스에 올라타서는 “여보 왜 그래? 말로 해” 이에 엄마는 “이 사람 우리 남편 아니에요” 그러면 석태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는 버스에서 강제로 끌어내리죠. 그걸 보면서 화이는 버스기사에게 “아저씨 살려주세요” 호소를 해요. 이에 아랑곳없이 버스를 떠나보낸 석태는 엄마의 발가락을 자르면서 이렇게 얘기하죠. “화이야 잘 봐. 네가 여기서 도망가려고 하면 이렇게 된다” 그런 식으로 (여)진구 군이 화이를 체화하도록 했어요. 그렇게 화이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가진 사연도 다르고 성격도 같지 않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신하균)나 화이는 한국영화사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캐릭터예요. 불경하게(?) 자신의 상관이나 아버지와 기성세대에게 도전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요.
<지구를 지켜라!>는 콘티북하고 촬영본이 거의 똑같았거든요. 근데 <화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배우들이 처한 그 순간의 눈빛 호흡을 담아내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살부 의식을 담고 있으니까 끔찍하잖아요. 그래서 바스트 숏을 기본으로 했는데 선택의 의도는 카메라가 제일 잘 담을 수 있는 거를 찾아보겠다 이거거든요.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성격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연출법은 <지구를 지켜라!> 때와 달라진 거 같아요.    

그렇긴 해도 장르적인 접근으로 관객의 이해를 돕는 연출은 변하지 않았어요.  
근데 <지구를 지켜라!>는 장르적인 접근이 많았죠. 장르를 비틀고 뛰어넘어 다니고 장난기가 많았다고 할까요. 전 영화적인 놀이로 생각하고 만들면서 관객들도 그런 태도로 즐겨주길 바랐었죠. 장르적인 얘기를 한 건 장르적으로 충실하다 그런 의미예요. 저는 <화이>를 만들면서 고전, 클래식, 정공법, 신화 등과 같은 단어와 느낌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저에게 <화이>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온전하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걸 이상한 수를 써서 현란하게 보이려고 한다면 이 영화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가 가지는 무서움이 있기 때문에 돈 좀 벌어보겠다고 자극적으로 제시하는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 진짜 괴물스러운 영화가 될 거라고 봤어요. <화이> 언론 시사회 후에 반응을 보면 <지구를 지켜라!>나 다른 내 단편에서 보이는 영화적인 놀이 혹은 엉뚱함 이런 게 잘 안 보여서 불만이다, 만듦새가 촌스럽다는 평가가 있더라고요. 저는 클래식한 스타일을 찾아가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서 자동차 추격전을 보여주더라도 화려한 대신 정통으로 정확하게 찍는데 더 공을 들였거든요. 그게 <화이>이 갖는 영화의 성격 상 더 맞았기 때문이에요. 근데 그에 대해서 촌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저는 더 촌스럽게 느껴지는데요. (웃음)

맥스무비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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