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여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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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는 <지구를 지켜라!>(2003)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의 10년만의 신작이다. 그와 상관없이 대중의 관심은 화이로 출연한 여진구에게로 모아진다. 이제 고작 17살(1997년생)의 소년이지만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어린 이훤 역을 통해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과 무엇보다 잘생긴 외모로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자빈 연우(김유정)가 병을 얻어 목숨을 잃자 이훤이 오열하는 순간, <해를 품은 달>의 순간 시청률은 꼭지점을 찍었다. 그런 사실을 감안하면 여진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니 여진구가 출연한 것만으로도 <화이>는 이미 흥행을 담보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화이>는 개봉(10월 9일)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여진구가 가진 스타파워가 빛을 발한다. 그런데 <해를 품은 달>의 이훤을 기대하며 <화이>의 개봉관에 들어섰던 누나 관객들은 여진구의 새로운 면모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더랬다. <해를 품은 달>의 앳된 미소와 풋내 나는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눈에 독기를 품고 손에 차가운 권총을 든 킬러 화이의 모습이 이훤을 대신한 까닭이다.

누나들의 그런 반응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화이>는 요약하면, 아들 화이가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핵심에는 살부(殺父)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화이가 사이코패스라서 그런 게 아니다. 화이는 세 살 때 ‘낮도깨비’ 일행으로부터 납치당해 인간병기로 키워진 아이다. 낮도깨비는 극 중 범죄조직의 이름인데 화이는 그들을 아버지로 알고 범죄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전수받으며 자라왔던 것이다. 교복이 어울리는 나이이지만 학교에 가는 대신 낮도깨비 일행의 범죄를 돕는 화이는 점차 자신의 뿌리에 대해 의문을 갖고 급기야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아버지들을 한 명 한 명 죽여 나가는 것이다.

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살부는 실은 현실을 반영한 은유에 가깝다. 낮도깨비로 명명되지만 화이를 기른 극 중 다섯 명의 아버지들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소위 386세대로 추정된다. 예컨대, 아버지 중 한 명인 진성(장현성)은 팔에 심한 화상 자국을 갖고 있다. 이에 더해, 여전히 <들국화> 앨범을 애지중지하고 <최초의 아니키스트> 책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니 대학시절 충만한 저항정신을 가지고 이 땅에 민주화를 정착시키겠다며 꽤나 화염병을 던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팔에 훈장처럼 화상도 입고 세월이 지나 아버지로 성장한 것인데 지금은 범죄에 연루되어 큰돈을 버는 것을 보니 안위와 보신을 위해 현실과 손잡은 인상이 강한 것이다.

<화이>가 묘사하는 수준은 좀 극단적인 데가 있지만 기성세대가 된 그들을 바라보는 작금의 사회적 평가라는 것은 이처럼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 더군다나 이 영화에는 아버지가 된 386 세대 뿐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 격인 ‘개발의 아버지’도 등장한다. 이 두 아버지 세대가 손을 잡고 재개발 사업을 통해 배를 불린다는 설정이 <화이>에서 중요한 사건의 발단으로 등장한다. 장준환 감독은 그런 아버지들의 비극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화이와 같은 젊은 세대들은 살부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아버지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386 세대에 대한 평가도 그렇지만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역시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강해 자기주장이 약하고 나약하다는 것이 중론에 가깝다. <화이>의 전반부에 묘사되는 화이만 하더라도 석태(김윤석)의 말이라면 살인마저도 거부하지 못할 만큼 순응적인 존재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말로 젊은 세대가 나약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성세대로 불리는 아버지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게 성장 환경, 즉 사회 체제를 조성해놓고 자식들을 그에 맞추려다보니 독립된 존재로서 젊은 세대의 홀로서기는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버지를 넘어선다는 것은 곧 성인으로의 성장을 의미한다.

여진구는 <화이>의 시나리오를 받고는 이 영화가 지닌 살부 의식과 잔혹한 묘사에 상관없이 그 자신이 맡아야 될 역할이란 사실을 감지했다. 화이와는 비록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17살 동갑내기인데다가 아역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성인 연기자로 가는 발판을 그 스스로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이>는 여진구에게 있어 성장의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그 도전이 만만치 않았던 이유는 극 중 화이가 석태라는 아버지를 넘어서야 했던 것처럼 촬영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야 했던 아버지뻘의 김윤석과 배우 대 배우로 부딪혀야 했던 탓이다.

김윤석에 대해서는 워낙 카리스마가 강해 괴물 같은 연기자라는 표현을 붙이고는 한다. 그처럼 나이 먹은 배우들도 김윤석의 연기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지만 <화이>가 공개된 후 나오는 평가들은 모두 여진구에 대한 찬사일색이다. ‘괴물을 삼킨 아이’라는 영화의 부제처럼 김윤석에 맞서 어린 나이에 소화하기 힘든 역할을 그야말로 자신의 것으로 삼켜버렸다는 것이다. <화이>에서의 여진구의 연기는 김윤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름이 끼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의 연기를 두고 섣부르게 김윤석을 넘어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화이>를 통해 여진구는 적어도 아역의 수준을 뛰어넘은 성인 배우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제 그는 누나들이 열광하는 동생이 아니라 여자들이 사랑하는 상남자로 성장한 것이다.

시사저널
NO.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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