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Hwhy)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다름 아닌 살부(殺父)다. 그러니까, <화이>는 화이가 자신의 혈연적인 아버지뿐 아니라 상징적인 아버지까지, 자신과 관계된 모든 아버지’들’을 죽이는 영화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여진구 버전의 <아저씨>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폭력을 자극적인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장준환 감독의 야심은 더 내밀하고 깊은 곳을 향한다. 이는 최근 한국의 모 영화가 운명에 무릎 끓는 개인을 다루면서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들의 비극을 묘사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왜 한국영화 속 개인은 항상 운명에 백기투항하고 아들 세대들은 아버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젊은 세대를 볼모 삼아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가 아닐까. 그런 맥락에서 <화이>의 극 중 아버지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전위에 나섰다가 지금은 안위와 보신을 위해 그 자신들의 윗세대, 즉 개발의 아버지들과 결탁한 386 세대를 연상시킨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화이는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와 개발의 아버지 모두를 살해하며 기성세대에 저당 잡힌 자식 세대의 독립성, 즉 아버지를 넘어선 성장을 획득하는 것이다.

<화이>는 근래 등장한 한국 영화 중 가장 발칙할 뿐 아니라 불경한(?) 태도로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한다. 극 중 화이가 기존의 뿌리를 부정하고 자신이 주체가 된 성장의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화이> 또한 한국영화라는 토양에 새로운 뿌리를 접붙이기 한다. 덜컹거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화이의 인간병기(?)로의 전환이 갑작스럽고 극 중 등장인물들을 모두 다루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러닝타임 등) 보수적인 시선, 뻔한 전개 방식 등의 매너리즘에 먹히지 않으면서 ‘괴물을 삼킨 아이’라는 부제에 어울릴 만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맥스무비
(2013.10.11)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