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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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감독 김곡, 김선(이하 ‘곡사’)은 독립 영화계에서 이미 유명 인사다. <고갈>(2008)이 그해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자가당착>(2008) <bomb! bomb! bomb!>(2006) <뇌절개술>(2005) <빛과 계급>(2004)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그 범위가 독립 영화 쪽에 한정될지언정) 화제의 중심에 섰고 이를 통해 주요한 상을 수상했으며 그렇게 유명세를 탔다.

곡사의 작품은 영화가 가진 본령, 즉 이미지로 이야기를 사유하는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고갈>(심지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개봉 당시 등급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을 예로 든다면, 공장 지대 근처에서 활동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낯선 남자를 상대로 매춘도 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도 나누고 그러다가 다시 남자에게로 돌아오는 내용이 전부다. 실은 <고갈>에서 이야기는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제되지 않은 캠코더 영상과 같은 현혹의 이미지로 관객의 눈과 감정을 극중 여자 주인공의 처지처럼 말 그대로의 ‘고갈’ 상태로 내몬다. 

그들 자신이 비타협영화집단이라고 명명한 ‘곡사’도 그런 연유에서 붙여졌다(고 짐작된다.) 사전적 의미의 곡사(曲事)는 바르지 못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 법을 어기는 일 이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같은 맥락에서 김곡과 김선 형제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을 곡사라는 이름에 담았을 테다. 그런 이들이 독립 영화가 아닌 메이저 상업 영화를, 그것도 여름 한 철 장사의 대명사로 인식된 공포 영화를, 그 누구도 아닌 걸 그룹 ‘티아라’의 함은정과 함께 찍을 거라고 했을 때 곡사를 아는 사람들은 어떤 영화가 나올지 쉽게 감을 잡지 못했다. 대신, 그들의 경력을 감안하건데 적어도 클리셰로 점철된 뻔한 수준의 공포 영화는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이하 ‘<화이트>’)는 곡사가 가진 네임밸류에서 가장 떨어지는 작품이다. 내용은 이렇다. 4인조로 구성된 핑크돌즈는 인기가 별로 없는 걸 그룹이다. 멤버끼리 사이도 좋지 못해 리더 은주(함은정)는 백댄서 출신이라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은주가 기획사 건물에서 15년 전 발생한 화재로 몰살 당한 옛 걸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하는 것. 돈이 되겠다고 생각한 기획사 사장은 뮤직비디오의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삼는다. 예상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핑크돌즈는 인기 걸 그룹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인기를 얻는 순간부터 멤버들에게 차례차례 알 수 없는 죽음의 저주가 닥친다.

곡사는 그들이 ‘춤추는 마리오네트’라고 칭한 아이돌의 이면을 반영하기 위해 실제 걸 그룹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철저한 조사를 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화이트>는 공포 영화라는 장르로 파헤치는 걸 그룹의 실체다. 겉으론 네온 사인처럼 화려하고 연예 산업의 최일선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걸 그룹의 실상이란 연예 ‘찌라시’만 달라붙을 진흙탕 루머 수준이다. 기획사 사장은 은주에게 노골적으로 ‘스폰서’를 뛸 것을 강요하고, 멤버들은 성형 중독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라면 동료 하나쯤은 매장 시킬 수 있는 성격 파탄에, 우리가 걸 그룹을 상상할 때 가장 질 나쁜 멤버들을 모두 모아 놓은 그림이다.

춤추고 노래하도록 길러진 마리오네트로써 <화이트>가 반영하는 걸 그룹의 모습은 이 세계의 가십에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 갖는 이들이라면 전혀 새로운 정보는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만 뒤져도 쉽게 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에 불과하다. 이를 일러 우리는 영화적으로 ‘클리셰’라고 부른다. 현대 공포 영화에서 클리셰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장르로써 이는 적절하게 조절될 필요가 있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유행했던 <링>(1998)의 사다코가 지금에 의미를 갖기 힘든 노릇 아닌가. 근데 <화이트>에는 실제로 사다코 유령이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곡사의 이전 작품들을 상기한다면, 클리셰의 남발은 ‘비타협’을 전면에 내세운 그들의 영화적 철학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물론 그것이 <화이트>를 위해 조사했다는 내용의 파격과 신선함의 층위에 일치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사실 이 영화가 다루는 걸 그룹의 이미지와 소재는 이미 여러 매체를 거친 뒤다. 그리하여 <화이트>에 남는 것은 유행처럼 돌고 도는 걸 그룹에 대한 소비 그 자체다. 점멸하는 귀신 이미지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울 장면처럼 곡사의 장기가 발휘되는 지점이 존재하지만 익숙한 설정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다. <화이트>는 굳이 곡사가 아닌 그 누군가가 만들어도 될법한 수준의 영화다. 보편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메이저 영화와 타협하되 곡사의 장기를 살릴 만한 프로젝트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두 번째 메이저 영화가 그런 작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kbs저널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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