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모터스>와 영화(매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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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리 모터스>를 기자시사회에 앞서 미리 보게 되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동시대 영화 특별전’에서 프리미어 상영(3/16)으로 보게 된 것이었죠. <사이트 앤 사운드> <카이에 뒤 시네마> <필름 코멘트> <빌리지 보이스> 등 서구의 영화 전문지로부터 2012년의 베스트로 뽑혔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 영화였어요. 드니 라방이 연기한 오스카가 11명의 인물로 분해 변장을 하고요, 그에 맞춰 영화는 SF, 가족드라마, 괴수물, 갱스터, 뮤지컬, 로맨스 등 장르의 경계를 유영하듯 넘나듭니다. 영화사 초기의 활동사진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니 <홀리 모터스>는 영화의 역사에 대한 작품 혹은 장르 변천의 역사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오프닝에서 레오스 카락스 감독 본인이 말 그대로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영화라는 매체를 빌어 타인의 인생을 여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관객의 이해가 아니라 사실은 해석을 요구하는 작품인 거죠.

그런데 영화의 정조는 꽤 쓸쓸해요. 레오스 카락스의 영화들이 대개는 그러했지요. 그런데 <홀리 모터스>는 카락스의 전작들과 비교해 그 쓸쓸함의 정조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져요. 레오스 카락스가 이런 얘기를 했다죠.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결국은 사라질 존재들이다.”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요. 이는 물리적인 죽음보다는 현대의 영화 관객들이 품고 있는 어떤 태도에 대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요.

<홀리 모터스>의 첫 장면부터 극장 안의 관객을 비춰요. 그것이 꼭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을 비춘 거울 이미지처럼 보이는데요. 관객들 얼굴 하나하나에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마치 유령이 연상되더라고요. 아마 그것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바라보는 현대 관객의 모습일 텐데요. 최근 레오스 카락스가 국내에 내한했을 때 영화 상영 후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의 내용을 다룬 어느 영화 매체의 기사를 보게 됐어요. 감독은 장면 설명을 요구하는 관객들의 질문에 대해 “왜, 왜, 왜, 왜냐고?”라는 표현으로 오히려 반문을 했죠.

그 심정 충분히 이해 가더라고요. 요즘 관객들은 영화를 ‘왜?’의 대상으로 보지 ‘어떻게?’로 접근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요. 다시 말해, 영화를 보며 적극적으로 이해를 하려거나 해석하지 않고 그 이유를 물어볼 뿐이죠. 누군가가 그랬죠, 지금은 해석이 아니라 해설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홀리 모터스>는 바로 그런 현대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감독이 바라보는 영화의 씁쓸한 풍경인 거죠.

레오스 카락스가 <홀리 모터스>로 바라보는 영화는 이제 슬픈 마음으로 추억해야 하는 매체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낭만적으로 기억하는 영화의 풍경은 죽은 개념이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할아버지로 분한 오스카는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을 만나요. 그들은 이제 막 해체가 되어 없어질 백화점 (영화는 이미지의 백화점이죠.) 건물 안에서 쓸쓸하게 과거를 대화로 회상해요. 그런 후 여인은 옥상에서 자살을 합니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 즉 영화(의 풍경)은 그렇게 생을 마감한 거죠. 그렇게 유령이 되어버린 영화를 바라보고 있으니 <홀리 모터스>가 쓸쓸할 수밖에요.

2. 이를 좀 더 확장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영화 주간지 중 하나였던 <무비위크>가 3월 22일자를 마지막으로 <M>에 합병이 됩니다. 사실상의 폐간인 거죠. 저는 <스크린>을 시작으로 <FILM2.0>, (객원이긴 하지만) <무비위크>까지 3개의 영화 잡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는데요. 모두 사라졌거나 사라질 예정입니다. 폐간호 영화잡지를 무려 3개나 갖게 되겠네요. 뭐, 저뿐이겠어요. 지난주 <무비위크>의 합병 얘기를 듣고는 기자들끼리 “왜 내가 가는 곳은 항상 이렇지”라는 자조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대로 종이잡지의 몰락 때문이기도, 비평이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해서이기도, 인터뷰 정도를 제외하면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사들 때문이기도 하죠. 영화잡지 기자 생활을 경험한 저로서는 좀 억울한 측면도 있어요. 언급한 이유들이 벌어지는 그 과정에서 과연 ‘소통’이 존재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에요.

가령, 지금 비평이 힘을 못 쓰는 이유는 독자들의 불신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인데요. 주변에서 비평 글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물론 그보다 쉬운 비평들도 있어요. 근데 쉬운 비평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의 글들과 수준이 다를 게 뭐냐며 폄하하는 시선도 굉장히 많아요. 이해가 안 되면 어렵다고, 이해가 되면 쉽다고 쉽게 규정되는 것이 비평이 처한 작금의 상황인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답니다.  

개인적으로 비평은 어렵다, 쉽다, 의 측면에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글을 평가하는 ‘소통’이 어렵다, 쉽다로만 오갔기 때문에 비평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한 유의미한 답변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고 봐요. (물론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비평도 많았죠. 그러니 비평의 몰락이 전적으로 독자들의 책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레오스 카락스가 <홀리 모터스>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비평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왜?’가 아닌 ‘어떻게?’의 자세가 필요한 거죠. 다만 비평 대신 스타들의 가십이나 사진들에 일방적으로 관심이 쏠린 건 ‘어떻게?’의 태도가 사라졌다는 방증이기도합니다.  

이는 영화잡지들의 성격이 어정쩡해진 이유이기도 해요. 비평 전문지도 있고, 산업지도 존재하며, 철저히 엔터테인먼트적인 성격을 가진 영화 잡지도 있다면 굉장히 이상적인 환경이겠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상적인 영화잡지의 환경은 요원해만 보입니다. 비평은 어렵고, 일반 기사는 쉽고, 이렇게 무 썰듯 구분되는 게 영화 담론을 둘러싼 소통의 현주소니까요. 그러다보니 어려운 비평도 아니고, 쉬운 기사도 아닌 그 중간 성격을 지향하는 글들만 남게 된 셈이죠. 그것이 영화를 다루는 매체들의 성격이 비슷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애매모호해진 이유일 거예요.

<홀리 모터스>를 보면서 영화 잡지의 운명이 수시로 겹쳐졌어요. 사실 영화 잡지들도 극 중 오스카처럼 꽤 많은 변화를 겪어왔죠. <로드쇼> <키노> <NeGa> <씨네21> <프리미어> <시네버스> 등. 이제 영화 잡지 시장은 <씨네21>만으로 유지되겠지만 이번 <무비위크>의 폐간을 계기로 영화잡지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상황이 완전히 최악으로만은 흐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비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기(轉機)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이 과거의 환경을 답습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에요. 레오스 카락스가 영화를 둘러싼 현대의 환경을 쓸쓸히 바라보지만 좀 더 나은 환경에 대한 욕망이 역설적으로 <폴라X>  이후 13년 만에 <홀리 모터스>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영화 매체를 둘러싼 지금의 환경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모터’를 달기를 희망해봅니다. ‘왜’보다는 ‘어떻게’의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ps1. 이제야 <홀리 모터스>가 국내에서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걸 알았네요. ^^; 예, 장시간의 성기노출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거야말로 영화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폐해가 아니겠어요. 영화를 ‘왜?’로만 봤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영등위가 몸소 실천해 보여주시네요.

ps2. “레오스 카락스가 국내 내한시 인터뷰 중 신경질을 내며 “왜, 왜, 왜” 왜냐고 묻느냐며”라고 쓴 부분이 팩트가 잘못되어 수정했습니다. 제가 분위기를 오독하고 말았네요. 관계자분께 정중히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4 thoughts on “<홀리 모터스>와 영화(매체)의 죽음?”

  1. 리뷰 잘 읽었어요. 그런데 ” 최근 레오스 카락스가 국내에 내한했을 때 어느 영화 매체와 나눈 인터뷰를 보게 됐어요. 감독은 기자가 질문을 할 때마다 “왜? 왜? 왜?” 왜 자꾸 왜냐고 묻느냐며 신경질적인 답변을 했죠.” 부분은 조금 잘못되어서요. 내한시 인터뷰는안했었고, 그 질문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 자꾸 그 장면을 설명해 달라는관객들의 질문에서, 감독님은 영화로 가장 잘 소통하기에 영화를만들었는데, 다시 영화를 말로 답해달하면 어찌하는가.. 라는 대답이었어요. 신경질적이지도 않았고요.ㅎ

    1. 안녕하세요 holy님 ^^ 예, 글로만 읽다보니까 제가 분위기를 오독하고 말았네요. 게다가 기사 중에 “인터뷰”라는 표현이 있어서 인터뷰 기사인줄로 오해했네요. 죄송해요. ^^;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말씀주신대로 수정하였습니다.

  2. 전 영화라는 매체에 빠진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첫장면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어요. 항상 이해하려고 했지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거 같네요. 리뷰 감사합니다~

    1. 저 역시도 [홀리 모터스]의 첫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 전 기본적으로 감독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 든 관객이 알아서 보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 쪽인데요. 그래도 어떨 때는 감독이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 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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