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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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울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프랭클린 J.샤프너의 <혹성탈출>(1968)은 지구 멸망 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8월 18일 국내 개봉하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지구가 왜 멸망해 원숭이들의 행성이 되었는지를 밝히는 프리퀄에 해당한다.) 테일러 박사는 날로 삭막해지는 지구를 떠나 우주여행을 하던 중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다. 동료와 함께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던 중 테일러는 원숭이 무리를 만난다. 말도 할 줄 알고 지능도 갖춘 이들은 원시인처럼 사는 인간들을 지배하며 행성의 주인으로 군림한다. 이들은 테일러 일행을 보자마자 잔혹한 방법으로 포획하고 감옥에 가둔 후 목숨을 위협한다.

<혹성탈출>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주목을 끄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한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원숭이 족의 묘사는 아카데미 의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완벽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인간과 원숭이의 주종관계(?)를 역전시켜 놓은 설정을 통해 인간의 호전성과 어리석음을 비판한 뼈있는 태도에 있다. 사실 <혹성탈출>은 원작에서 배경만을 옮겨왔을 뿐이지 내용은 영 딴판에 속한다. 소설은 테일러 일행이 원숭이 행성에서 유명해지고 희극적인 인생을 사는 것과 달리 영화는 철저히 비극적인 형태를 취한다. 서로가 우수한 종이라며 테일러와 설전을 펼치는 원숭이 장로의 말을 빌리자면, 타인의 영역을 독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인간들에 반해 자신들은 문명을 파괴하는 전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과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영화가 이야기를 달리하게 된 데에는 현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혹성탈출>이 개봉한 1968년은 상반된 이념간의 대립에 따른 냉전의 비극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특히 세계의 경찰관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은 세계 평화라는 명분하에 무고한 젊은이들을 참혹한 베트남의 전장으로 밀어 넣으며 의미 없는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런 기성세대에 대항한 젊은이들의 저항과 반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곧바로 영화로 전이 되어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표현 수위의 영화들이 기성세대를 조롱하며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이름으로 새로운 조류를 이끌었다.  

<혹성탈출>은 그와 같은 분위기에서 기획된 영화이었다. 영화 초반 테일러의 동료 다지가 불시착한 행성의 땅 위에 작은 성조기를 꽂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테일러는 매우 실소한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우주로까지 확장시키는 팍스아메리카니즘의 어리석음이란! 또한 테일러를 대하는 원숭이들 간에 노장파와 소장파가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여 대립하는 이유는 당연히 미국의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간의 반목을 그대로 반영한 설정임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혹성탈출>의 중요한 의의는 지구 멸망이라는 극단성에 기대어 어리석은 전쟁의 역사를 반복해온 인간을 비웃은 결말부에 있다.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던 테일러가 “우주의 무한함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란 얼마나 미비한 존재인가” 하고 읊는 대사가 있다. 그런 별 볼일 없는 미물이 전쟁을 일으켜 우주의 한 요소를 파괴하려 든다니 그게 얼마나 웃긴 노릇이냐는 거다. (촬영 역시 인간의 하찮음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 속에 점처럼 자리 잡은 등장인물 숏을 수시로 비춘다.) 샤프너는 <혹성탈출>의 스크립트를 준비하면서 총 3가지의 결말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원작자 샤프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주의 질서를 모욕한 전쟁광 인간을 통렬하게 비판한 지금의 결말에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렇게 문제적 시대는 문제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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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
(2011.7.2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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