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의 서막>의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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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중간에는 인간 측의 알렉산더와 유인원 측의 모리스가 한 권의 책으로 교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유인원의 리더 시저로부터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댐 시설 수리를 허가받은 인간 무리 중 한 명인 알렉산더는 우두머리 격인 말콤의 아들이다. 뮤어 숲 한쪽에 텐트를 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알렉산더가 책을 읽고 있으면 모리스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알렉산더가 모리스에게 책 한 권을 건네주니 다름 아닌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찰스 번즈가 지은 그래픽 노블로,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의 커뮤니티가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들의 분열에는 성관계를 통해 전염되는, ‘벌레병’이라 불리는 일종의 바이러스가 작용한다. 그와 같은 감염 증세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비롯되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서 인간이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른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맷 리브스 감독이 <블랙홀>을 등장시킨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는 1968년 버전의 <혹성탈출> 이전으로 돌아간 <혹성탈출>의 새로운 삼부작이 인류 멸망을 전제하고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삼부작은 인류가 어떻게 멸망하고 유인원의 지배를 받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인 셈인데, 그 이유를 갈등과 반목의 역사에서 찾는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시저를 비롯하여 말콤, 알렉산더, 드레퓌스 등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빌려 이들의 배경을 이야기에 반영한다. 특히 이들은 세계사의 페이지 중 가장 굵직한 갈등의 사건에 연루되었던 장본인들이다. 시저는 절친 브루터스로부터 암살당할 뻔했고 말콤은 흑인 인권 보장을 두고 방법론 때문에 마틴 루터 킹과 갈등했으며 드레퓌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고는 프랑스를 양분시켰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페르시아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그랬다.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를 유지하기보다는 갈등을 조장하고 전쟁을 벌이는 식으로 힘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인류의 멸망을 이와 같은 전쟁의 역사에서 찾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인간, 유인원 할 것 없이 갈등과 반목의 ‘블랙홀’에 빠져 서로에게뿐 아니라 같은 편(?)에게도 총칼을 겨누는 양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알렉산더가 모리스에게 전해준 <블랙홀>은 일견 화해의 의미 같지만, 종국에는 모두의 파멸을 예고하는 비극의 암시물인 것이다.      

맥스무비
‘미장센 추리 극장’
(201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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