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하려면 디즈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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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유독 한국 박스오피스의 1위는 ‘새로운’ 소재와 장르와 이야기 전개를 갖춘 영화들의 차지가 되었다. <데드풀>과 <주토피아>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곡성>과 <아가씨>의 한국영화까지, 그의 연장 선상에서 <베테랑> 이후 오랜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은 총 제작비 115억 원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정체성을 갖고도 장르물 중에서도 가장 마니악한 좀비물이라는 모험적인 시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이제 관객은 아무리 빅네임을 가진 배우가 출연하더라도 중반부 웃음, 후반부 신파로 승부를 보려는 한국형 가족드라마나 과도한 살인이 난무하는 스릴러에 조건 없는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새로움으로 유혹하지 않는 한 부러 푯값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최근 관객들의 냉정한 소비 패턴이다.

새로움, 사실 말은 쉽지만, 구현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누구나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는 있어도 인정까지 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 어떻게 해야 새로움으로 관객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았다면 지금 이 지면에 영업(?) 비밀을 밝히는 대신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물론 내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만큼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가깝고 그 언저리에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식의 비밀을 파헤치는 건 어렵더라도 관객들이 유독 열광한 기존의 결과물을 통해 일관되게 목격되는 어떤 방향성을 캐치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럼 이렇게 질문해 볼까. 지금 전 세계의 영화 제작사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하는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나? 슈퍼히어로물의 흥행을 독점하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 영화 개봉과 함께 흥행은 물론 세계 경제를 흔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카스 필름? 창의(創意)라는 단어와 동격의 대접을 받는 픽사 스튜디오?

답은 이미 하나로 모였다. 바로 디즈니. 디즈니가 이들 영화사를 사들인 건 유명하다. 2006년 픽사를 인수한 데 이어 마블엔터테인먼트와는 지난 2009년 5,000여개에 달하는 마블 캐릭터 소유권을 인수했다. 2012년에는 루카스 필름, 그러니까, <스타워즈>의 판권을 구입했다.

혹자는 디즈니의 공격적인 행보를 두고 ‘디즈니의 시대’라고 명명을 했을 만큼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의 활약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지난겨울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개봉 첫날부터 기존의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011)이 가지고 있던 개봉일 최고 수입 기록을 가볍게 넘어설 만큼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쓸었다. 국내 극장가에 역주행 흥행 신화를 썼던 <주토피아>는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중 역대 흥행 5위를, 전 세계적으로는 10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돌파하며 올해 개봉작 중 역시나 디즈니 산하의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바로 아래 자리인 2위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종합하자면, 디즈니는 2015년 메이저 스튜디오 북미 시장 점유율 순위에서 <쥬라기 월드>를 킬러 콘텐츠로 앞세워 16.5%를 차지한 유니버설에 이어 14.9%로 2위를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 디즈니의 순위? 연초부터 <주토피아>로 대박을 치고 <정글북>으로 다시 한 번 기세를 올린 후 <도리를 찾아서>로 정점을 찍은 디즈니는 상반기 누적 박스오피스 18억 달러를 달성했다. 연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스튜디오의 수익은 18~20억 달러 선에서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디즈니는 상반기 수익만으로 2016년 박스오피스 결산 1위 기록을 이미 예약한 것과 다름없다.

잠깐,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디즈니의 박스오피스 독주는 단순히 디즈니가 인수한 루카스 필름과 마블과 픽사 스튜디오의 활약에만 있지 않다. 디즈니는 이들 스튜디오의 작품 외에도 자체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올해 개봉한 작품은 <주토피아>와 <정글북>이다.

두 작품은 영락없는 디즈니 버전이면서 한편으로 이전과는 달라진 지점이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디즈니의 진화한 양상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콘텐츠다. 가족을 이루는 신구 세대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주토피아>와 <정글북>은 디즈니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한, <정글북>은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한때 디즈니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든 적이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인 <주토피아>와 장르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이 주는 메시지는 이전처럼 단순히 가족애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가족애의 메시지를 주로 전달했기 때문에 디즈니는 종종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토피아>는 그런 세간의 선입견을 보기 좋게 배반한 작품이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주토피아라는 이상향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광경이 의미하는 바는 예사롭지 않다. 인간 세계를 겨냥해 다수자와 소수자가 서로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사이좋게 살았으면 하는 메시지가 우회적으로 담겨 있다.

첨단의 컴퓨터 기술력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에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은 방식의 <주토피아>는 디즈니보다 픽사의 작품 세계와 더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디즈니는 2006년 픽사를 인수하기 훨씬 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며 가족애를 전면에 내세웠던 디즈니는 픽사가 <토이 스토리>(1995)를 발표하며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신천지를 개척하면서 한물간 취급을 받았다. 디즈니로서는 당장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변화에 대한 요구는 사실 그 전부터 있었다. 1984년 당시 디즈니를 이끌던 이는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이었다. 마이클 아이즈너는 가족 관객 중심의 디즈니의 영향력을 성인 관객으로까지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터치스톤 필름과 미라맥스를 사들이면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지만, 주변의 반발을 사면서 오히려 디즈니의 위기를 불렀다. 고집이 셌던 마이클 아이즈너가 주변의 의견을 듣기보다 자신의 비전을 강요하면서 주변 인재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마이클 아이즈너야말로 변화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수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마이클 아이즈너에 이어 2006년 새롭게 회장 자리에 오른 로버트 아이거는 현재까지 디즈니를 이끌고 있다. 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픽사와 마블과 루카스 필름의 인수는 모두 그의 재임 시절 이루어졌다. 특히 회장 취임과 함께 로버트 아이거는 픽사의 인수를 주도했다. 디즈니가 고전하는 동안 생겼던 마이너스 수익률을 픽사의 작품을 통해 플러스로 전환하겠다는 안일한 발상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었다.

로버트 아이거는 픽사 고유의 창작권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되 충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들의 캐릭터 창조력과 이를 이야기에 녹이는 화법에 주목, 디즈니 작품에 이식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렛잇꼬’ 열풍을 몰고 온 <겨울왕국>(2013)과 <주토피아>이다. 픽사가 2013년 이후 발표한 <몬스터 대학교>(2013) <인사이드 아웃>(2015) <도리를 찾아서>(2016) 등과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아니 흥행 면에서 오히려 더욱 파괴력을 지닌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픽사의 합병으로 얻은 이득이 단순히 흥행의 측면에만 한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디즈니가 다시금 전성기를 맞게 된 배경에는 제작사의 고유한 브랜드를 존중하고 이에서 얻은 이야기와 캐릭터와 기술력 활용에 대한 노하우를 디즈니 작품의 창작과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픽사에게서 뿐만 아니라 마블과 루카스 필름과의 관계에서도 디즈니가 유지하는 것으로 이는 올해 또 하나의 ‘히트다 히트’ 상품 <정글북>에서도 확인된다.

실사 영화에, 애니메이션에, 잊었다 하면 다시금 콘텐츠화되는 <정글북>의 영화화로 디즈니가 주목한 것은 ‘CG의 실사화’였다. <정글북>에는 70종이 넘는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100% CG로 이뤄낸 결과물이다. 마블이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를 다루는 것처럼, 루카스 필름이 <스타워즈>라는 가상의 우주 세계를 창조한 것처럼 정글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주목한 디즈니는 여기에 CG 느낌이 전혀 없는 CG 동물들을 창조해 넣어 새로운 볼거리를 구현했다. 그리고 디즈니가 2016년 상반기 흥행 수익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상에 전혀 존재한 적 없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은 이미 존재하는 콘텐츠들을 가지고 이를 재조합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하는 시대다. 예컨대, <부산행>은 좀비라는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한국의 토양 위에 이식되면서 새로운 볼거리로 기능했다. <곡성>은 스릴러라는 기본 바탕 위에 오컬트와 좀비물을 섞으면서 전례 없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데드풀>은 지금 한창 사랑받는 슈퍼히어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정의 실현보다 사익 추구에 혈안인 성격으로 색다른 이야기를 견인했다.

새로움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알아보는 눈과 이를 꾸준히 지켜보는 인내심과 간섭 대신 지원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디즈니는 이를 통해 전 세계 극장가의 박스오피스를 쥐락펴락하는 제작사로 우뚝 섰다. 디즈니 말고도 새로움으로 주목받는 곳은 많으나 디즈니처럼 여러 자회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 부문에 걸쳐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흥행하려면 디즈니처럼? 아니 혁신하려면 디즈니처럼!

 

ARENA HOMME
2016년 9월호

2 thoughts on “혁신하려면 디즈니처럼”

  1. 특히 스타워즈팬인 저를 포함해 팬들이 (오리지널)3부작에 왜 열광하고 프리퀄3부작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디즈니와 jj의 존중하는 태도가 인상깊었습니다
    카일로렌을 단순한 악역이아닌 미성숙한 존재(가면을 벗었다 꼈다 하는 행위가 특히나 미성숙한 존재임을 잘들어냈던것 같아요)

    제임스카메론 감독님 말씀처럼 몇몇 분들에게는 새로운 희망 복고풍일지 몰라도
    8편을 기다리게 된다는 이야기하는걸 보면
    디즈니 또는 쌍제이의 영악하면서도 훌륭한 전략이 통한것같습니다^^
    배트맨 비긴즈 다음 다크나이트
    새로운 희망 다음 제국의 역습처럼 스타워즈를 속편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고싶은것같습니다
    현명한 디즈니네요^^

    1. 예, 디즈니가 시리즈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모범답안을 보는 것 같아요. 맞아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보면서 원작의 팬과 새로운 팬까지 모두 잡는 디즈니, 그러니까 루카스 필름에 대한 존중을 보면서 이런 게 정말 진정한 의미의 협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타워즈] 8편 전에 먼저 [로그원]이 있으니까요. ㅎㅎ 그것만으로도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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