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이벤트>(Un heureux even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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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짧고 책임은 길다’

<해피 이벤트>는 1시간 50분 정도 되는 영화인데요. 영화가 시작하면 바바라와 니콜라의 사랑을 보여줘요. 이들이 처음 비디오 가게에서 만나 DVD를 교환할 때 처음 등장한 작품이 왕가위의 <화양연화>였는데요.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의미하는데요. 근데 인생의 화려한 시절이란 게 굉장히 짧잖아요. 특히 섹스 같은 경우, 쾌락은 짧은 데 반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부모로서의 책임은 길어지는데요. 그래서 바바라와 니콜라의 화양연화, 즉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절에 대한 묘사는 제가 시간을 재 봤더니 딱 5분이더라고요. 니콜라가 “아이를 갖고 싶어”라고 하자 바바라가 이에 응하고 그때부터 영화는 바바라의 임신과 육아를 보여주죠. 이제 여자이자 철학도였던 바바라의 인생은 없어지게 되는 셈인데요. 그래서 바바라는 이렇게 얘기하죠. “진짜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고 말이죠.

등장하는 영화의 의미

니콜라는 DVD 대여점 직원이죠. 바바라와 니콜라가 처음 눈이 맞는 곳이 이 DVD 대여점입니다. 이들은 DVD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나누는데요. 첫 번째 작품이 <화양연화>죠. 말씀드렸던대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 그러니까 바바라 입장에서는 니콜라에게 나와 함께 인생의 화려한 시절을 보내자고 신호를 보낸 거죠. 그래도 니콜라에게 어떤 반응이 없자, 구스 반 산트의 <투 다이 포 To Die for>를 건네죠. 영화를 보면 자막으로 ‘뭐든지 해줄게’라고 해석이 되어 있는데요. 바바라가 니콜라에게 빨리 사귀자고 마치 돌직구처럼 던지는 거죠.

<투 다이 포>는 현대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의 한계를 말한다는 점에서 <해피 이벤트>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거든요. 여기서 니콜 키드먼은 앵커우먼이 되겠다는 야심으로 지방 방송국의 사무원으로 취직해 기상캐스터로까지 승진을 하게 돼요. TV에 출연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수잔은 자신의 승진에 걸림돌이 되는 남편을 청부살인하게 되는데요. 물론 <해피 이벤트>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여자로, 그것도 지방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걸 보여줘요.

그 뒤에도 <남과 여> <뒤로가는 연인들> <위대한 환상> <캐치 미 이프 유캔> 같은 영화들이 바바라와 니콜라의 밀당을 보여주는 매개로 이용이 되는데요. 근데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이 하나가 있어요. 뜨거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결말은 비극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화양연화>와 <투 다이 포>는 설명한 그대로이고요. <남과 여>의 경우, 1966넌 클로드 를르슈 감독이 연출한 작품인데. 이 영화에 출연했던 남자 배우 장 루이 트리티낭은 <아무르>의 남자 주인공이기도 했죠.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배우자가 있는 남녀끼리 사랑을 나누는데 결론은 그런 비극을 겪은 후에 인생은 좀 더 단단해진다는 걸 보여주는데요. <해피 이벤트>의 DVD를 통한 바바라와 니콜라이의 밀당은 겉으론 굉장히 로맨틱하지만 속으론 그런 인생의 본질을 숨기고 있습니다.

영화, 소설 등 잦은 문화의 인용이 의미하는 바

근데 <해피 이벤트>에는 영화 외에도 수많은 문화의 인용이 등장을 해요. 바바라의 논문 책임 교수는 임신한 후 변한 바바라에 대해 카프카의 <변신>을 언급하면서 그레고리 잠자처럼 변했다고 얘기를 하죠. 거기다가 바바라가 자신의 임신을 알리기 위해 카페에서 니콜라와 만날 때 프로이트 이론을 끌어와 가방은 질을 상징한다고 말하기도 하죠. 그뿐인가요, <백 투더 퓨처> 얘기도 나오고 만날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자 바바라는 니콜라에게 <사랑의 블랙홀> 같다면 화를 내기도 하죠.

문화에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문화에 투자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겠죠.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렇게 문화에 투자할 시간이 없어요. 문화를 많이 안다는 건 육아에서 자유롭다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예컨대, 니콜라를 보세요. 바바라가 논문을 쓰거나, 레아를 보고 있을 때 오락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이 돼요. 사실 바바라도 문화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죠. 니콜라와 DVD로 밀당을 벌일 때 그런 모습이 목격이 되죠. 그러니까 이 영화는 문화에 대한 접근과 비접근을 통해 비어른과 어른의 모습을 구분하는 것으로 보여요. 그것이 또한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겠죠.  

‘이해를 원하지만 결국 이해해야 하는 것’

<해피 이벤트>는 바바라의 내레이션을 통해 여자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데요. 그 때문인지, 극 중 바바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받기를 원해요. 바바라는 자신이 어릴 때 엄마가 했던 행위들, 가령 외모를 위해 입에 보철기를 끼우고 안경을 끼게 한 것에 대해 여전히 불만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임신한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하고요. 남편에게는 뜨거운 잠자리를 원하지만, 그럼으로써 엄마가 아니라 여자라는 걸 확인받고 싶지만 니콜라는 아이가 보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하고요. 의사 선생님에게도 그렇습니다. 아들인지, 딸인지 알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 선생님이 여자라고 미리 말하니까 “난 자궁이 아니라 인간이라고”라고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이죠. 결국 내레이션을 통해 “나도 한때는 로맨틱했다.” “나도 한때는 철학자였다.” “나도 한때는 섬세하고 순수했다” 라고 한탄을 하죠.

바바라는 엄마가 되었지만 여자를 잃었다는 생각에 우울해요. 그래서 자꾸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으려고 하고 그것이 잘 안되면 짜증을 내는 거죠. 게다가 니콜라는 그런 자신을 잘 이해해주지도 않으니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바바라에게 용기를 주는 몇 마디가 있어요. “엄마가 되면 다들 해낼 겁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노력은 여자들이 하지.” 그러면서 바바라는 이해를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이 이해하는 쪽을 택합니다. 엄마란 게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위대한 건, 그 어떤 고난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해낸다는 것일 텐데요. 그러다보니까 엄마가 못마땅하던 바바라는 그제야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해요. 결국 이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일까요. 흔히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고 하잖아요. 전 젊을 때는 이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요.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해요.

바바라와 엄마의 관계

바바라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질문은 바바라의 아빠는 왜 부재할까요? 와 연결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바바라에게는 아빠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사진으로만 등장할 뿐 실제 모습이 등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가 이혼하기 전에 어떻게 생활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바로 바바라와 니콜라 부부의 모습이 바바라 부부의 모습이었던 거죠.

그런 힌트는 여러 곳에 있습니다. 바바라와 니콜라는 딸을 낳죠. 레아입니다. 바바라의 엄마는 두 딸을 낳았죠. 바바라는 둘째 딸인데 바바라의 엄마는 첫째 딸을 낳고 바바라처럼 임신과 육아를 한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꼈을 거예요. 왜 아니겠어요. 영화에서도 보여주지만 바바라의 엄마는 아마도 히피였던 것으로 보여요. 담배를 피웠다고 하죠, 지금도 피고 있고요. 모유를 하지 않았죠. 대신 우유를 마셨어요. 육아보다 여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이고요. 그리고 마약을 하고 운전을 하다가 단속에 걸렸다는 얘기도 나오죠.

철학자이고 논문을 준비하는 바바라가 현대 여성의 전형인 것처럼 바바라의 엄마도 1970년대에는 그 당시 현대 여성의 전형이었을 거예요. 그랬으니 전통적인 개념의 엄마 역할을 바라는 사회적 시선과 얼마나 부당하게 싸웠을까요. 바바라의 엄마가 그러죠. 그때는 아빠와 무척 사랑했다고요. 바바라와 니콜라가 임신과 육아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것처럼 바바라의 엄마와 아빠도 그런 갈등을 겪었고 결국 헤어지게 된 것이겠죠. 아마도 바바라와 바바라의 엄마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바바라의 엄마는 이혼을 했고, 바바라는 니콜라와 화해를 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일 거예요.

남자들은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나?

바바라와 바바라의 엄마가 화해를 하고 바바라가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며 도와주지 않는 니콜라에 대해서 흉을 보자 엄마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남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그것만 알면 어려울 게 없지.” 남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이야기였는데요. 엄마가 그렇게 얘기한 건 아마 자신의 경험상 남편과 이혼을 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확신할 수 있었을 거예요. 니콜라도 크게 다를 바는 없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세탁기 수리공을 불렀다고 바바라에게 화를 내는 것도, 바바라는 레아를 기르느라 1년 가까이 외출도 못했는데 자신을 친구를 불러 나가 놀려고 하니까요.

예, 맞아요. 남자들은 사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죠. 그렇다고 <해피 이벤트>가 남자들에 대해서 완전히 부정적인 건 아니에요. 바바라의 부모가 이혼한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해드렸죠. 그리고 바바라와 니콜라의 모습이 바바라 부모의 모습일 거라는 얘기도요. 하지만 바바라와 니콜라는 바바라의 부모처럼 이혼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영화가 남자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조금은 그래도 변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 텐데요. 바바라는 바바라의 엄마가 겪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아요. 니콜라와 별거를 하다가 니콜라는 만나죠. 그때 바바라는 니콜라에게 이렇게 묻죠. 저 유모차는 어떻게 펴서 가져왔어? 그러자 니콜라는 답해요. 지나가는 부부가 도와줘서 펴게 됐지.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하는 말 “셋이 하니까 다 되더라고.”

이는 바바라와 니콜라, 레아의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아이를 기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거예요. 말씀드린 것처럼 쾌락을 짧지만 책임은 영원하니까요. 이들 앞에 여전히 힘든 일이 많이 생기겠죠.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요. 하지만 노래 가사로도 나오죠. 너는 혼자가 아니야. 바바라는 혼자가 아니죠. 완벽하지는 않지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니콜라가 있고요, 너무나 사랑스러운 레아가 있죠. 그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여요. 엄마는 바바라에게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죠. 혼자만 고민하지 말고 가족과 함께 나누라는 얘기입니다. 삶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겠죠. 그런 것이 전수되면서 작금의 엄마들은 그 자신들의 엄마보다는 일과 육아에 있어서 좀 더 나아진 면이 있겠죠. 그래서 이 영화는 여자들의 일과 임신과 육아가 <해피 이벤트>, 즉 ‘행복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무비꼴라쥬 시네마톡
(20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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