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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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영화 역사는 볼거리 발전의 역사다. 더 정확히는 특수효과의 진보가 단계를 거듭한 역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월트디즈니가 제작한 리처드 플레이셔의 <해저 2만리>(1954)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개봉 당시 그해 아카데미 특수 효과 부문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해저 2만리>는 Sci-Fi 소설의 선구자 쥘 베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때는 19세기 후반, 고래잡이 어선들이 바다로 나갔다하면 침몰하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 선원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싹트고 대형고래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원정단이 구성된다. 선원 네드(커크 더글러스)와 해양학자 아라낙스 교수(폴 루카스), 조교 콘세일(피터 로르)이 참여한 원정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충돌하면서 난파당한다. 이들 앞에 첨단의 기술로 무장한 잠수함 노틸러스호와 무시무시한 선장 니모(제임스 메이슨)가 나타난다.

리처드 플레이셔의 작품이 등장하기 전에도 <해저 2만리>는 여러 번 영화화될 만큼 인기가 높은 할리우드의 아이템이었다. 특히 바다사나이들의 ‘모험’, 바다 속 ‘환상’의 볼거리, 거기에 인간의 건전하지 못한 기술력의 사용이 가져오는 파국이라는 ‘교훈’까지, <해저 2만리>는 디즈니가 충분히 탐낼 만한 영화이었다. 다만 워낙 스케일이 큰데다가 바다가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애초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해저 2만리>를 재현하자는 의도였다.

디즈니의 아트디렉터 하퍼 고프(Harper Goff)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스케치를 해가던 중 심해의 디테일한 풍경을 살리기에 애니메이션은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다. 물이 가진 질감이라든지 조류에 따른 해저생물의 이동, 무엇보다 잠수함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실사화면이 더 어울렸던 것이다. 이에 와이드스크린 렌즈를 활용해 시범적으로 심해 장면을 촬영했고 이를 본 디즈니의 수뇌부는 그 자리에서 <해저 2만리>의 실사영화화를 결정했다.

사실 디즈니에게 <해저 2만리> 제작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와이드스크린으로 촬영한 첫 번째 장편영화였고 광활하게 등장하는 바다와 심해, 그리고 노틸러스호의 복잡한 내부 배경을 구현하기 위해 자사 뿐 아니라 유니버설과 20세기폭스의 세트장을 임대해야 했으며 자메이카와 바하마 로케이션에는 무려 400명이 넘는 기술 스태프들이 참여했을 정도로 당시로써는 대작 중에서도 대작이었다. 디즈니에 소속되어 있던 당대 최고의 아트디렉터들도 총출동했다. 날렵한 물고기 모양을 본 딴 노틸러스호의 외부 디자인은 하퍼 고프가 맡았으며 디즈니랜드 마크인 ‘잠자는 미녀의 성 Sleeping Beauty’s Castle’을 창조한 로랜드 힐(Roland Hill)이 내부 디자인을 담당했다.    

물론 지금의 특수효과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해저 2만리>의 기술력으로 창조된 해저 세계가 다소 조악해 보일 수밖에 없다. 대신 이와 같은 단점을 가리기 위해 <해저 2만리> 제작진이 선택한 장면들은 흥미롭다. 이 영화는 철저히 풀숏과 미디엄숏으로 구성된다. 광활한 바다와 해저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최적의 촬영이지만 클로즈업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술력의 한계를 카메라 기교로 극복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예컨대,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노틸러스호와 대형오징어와의 싸움에서 영화 제작진들은 특수 제작한 인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폭풍우가 부는 것으로 설정, 강한 물 튀김이 이는 장면으로 관객의 시야를 교란하기도 했다.

전인미답의 볼거리를 개척하기 위한 도전과 노력이 돋보이는 <해저 2만리>는 역설적으로 과시하지 않는 특수효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야기상으로 이 영화는 극명할 정도로 캐릭터가 갈리는 네드와 니모의 대결구도를 압축된다. 말썽꾼으로 악명 높은 네드지만 인간을 우선하는 마음을 가진 것과 달리 니모는 인간의 악행에 악행으로 응징하는 파괴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일개 개인으로서는 큰 힘을 갖지 못하지만 첨단의 장비로 무장한 노틸러스호가 니모에게 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데 그의 비극적 최후는 과연 기술이란 인간의 선한 의지를 뒷받침할 때 유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해저 2만리>에도 적용되는 교훈이라 할만하다. 특수효과 부문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팬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이야기가 가진 의미를 넘지 않는 선에서 기술력의 최대치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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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20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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