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Nobody’s Daughter Ha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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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하 ‘<해원>’)은 홍상수 감독의 열네 번째 영화다. 전작과 비교해 눈에 띄는 변화라면, 20대 여자가 처음으로 극을 주도한다는 점일 테다. 게다가 ‘누구의 딸도 아닌’, 그러니까 남자의 욕망에 이끌리기보다 좀 더 자신에게 충실한 여자라는 전제가 제목에서부터 명시되고 있음은 예사롭지 않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해원(정은채). 엄마(김자옥)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자 마음 한쪽이 텅 빈 것만 같다. 오랜만에 자신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 성준(이선균)을 불러내 헛헛한 심정을 해소하려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실은 성준과 사제 관계를 넘어선 비밀스러운 연애를 유지해오던 터, 하필 길가에서 같은 학과 학생들을 만나면서 두 사람 사이가 알려진다. 성준은 이참에 어딘가로 도망가자고 제안하지만 해원은 별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행동한다.

<다른 나라에서>(2012)의 모항, <북촌방향>(2011)의 북촌, <하하하>(2010)의 통영 등 홍상수의 영화에서 극 중 특정 장소는 해당 영화를 안내하는 일종의 표지판 같은 역할을 한다. <해원>에서는 ‘서촌’과 ‘남한산성’이다. 해원은 서촌을 세 번 배회하며 비슷한 패턴으로 카페손님(류덕환), 성준, 미국대학 교수(김의성)와 차례로 만나고, 남한산성에는 성준과 한 번, 중식(유준상)과 연주(예지원) 커플과 또 한 번 오른다. 공교롭게도 그 때마다 남한산성 등산객(기주봉)을 만난다.

서촌과 남한산성, 이 두 점을 연결하는 선은 무엇일까. 해원과 성준, 중식과 연주 커플은 남한산성에 오를 때면 빈말처럼 “이 산성을 어떻게 쌓았을까?”, “당시 인부들이 벽돌을 날라다 차곡차곡 쌓았겠지”라는 요지의 대화를 나눈다. 이를 통해 영화가 의도하는 바는 특정 공간에 쌓이는 시간이라는 역사성이다. 홍상수 감독은 남녀 간의 관계도 그와 같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연애 중일 때는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 같지만 죽고 나면 남는 건 시간이라는 무형의 퇴적물뿐인데 그것이 바로 연애 관계에서 보이는 남녀의 패턴이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해원이 만나는 남자들은 세대를 대표한다. 청춘인 듯한 카페 손님, 사회생활에 한창인 성준과 중식, 중년의 대학교수와 이제는 은퇴한 듯 보이는 등산객까지, 남자라는 ‘시간’이 해원 곁으로 흘러가지만 이들은 하나 같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혹은 그녀의 관심이 반갑기만 하다. 그에 비해 해원을 비롯한 여자들의 행동과 감정은 다양하다. 해원과 엄마 사이에는 모녀간의 정, 이별의 아쉬움 등이 오가고, 해원이 우연히 만나는 외국인 서촌 관광객(제인 버킨 특별출연)과의 사이에는 스타와 팬의 관계가 형성되며 연대감이 조성된다.

사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남녀 간의 차이, 이를 드러내기 위한 동일한 상황의 변주 등은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홍상수 영화의 클리세 같은 것이다. 대신 <해원>에서 두드러지는 건 바로 역사라는 시간성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원주(정유미)가 쓰는 소설이 극 중 이야기가 됐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해원이 쓰는 일기가 곧 그렇게 된다. 일기는 특정 시간을 전제한 채 써내려가는 개인의 역사다. 그래서 서촌에서의 해원의 배회는 선처럼 분산되지만 그 시간이 남한산성이라는 목적지에 점이 되어 쌓이는 구조로 수렴되는 것이다.

<해원>의 의미가 좀 더 각별하다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구조가 흡사 홍상수의 영화 세계와 닮아있는 까닭이다. 홍상수의 영화는 개별 작품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기보다는 서로 연결되고 영향 받으며 필모그래프를 쌓아간다. <해원>의 경우, 극 중 등장하는 중식과 연주가 그러한데 이들은 불륜 관계로 7년째 만나고 있는 <하하하>에서의 바로 그 커플이다. 다시 말해, 유기체처럼 자가 번식하는 홍상수의 영화는 여전히 성을 쌓아가는 중이다. 그러니 그의 작품에서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당연하다. <해원>의 해원 캐릭터는 그런 변화를 반영하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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