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 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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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언론시사회에 맞춰 홍상수 감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직접 만나 이야기하기보다는 서면으로 진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의 시나리오는 촬영 당일 아침 배우들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면으로 홍상수 감독의 답변을 받고 보니 마치 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처럼 갓 쓰인 시나리오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홍상수 감독과 작업한 배우 정은채의 기분도 이와 같았을까?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하 ‘<해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영화를 찍을 장소를 정하려고 서촌과 남한산성을 가봤고 뭔가 끌리는 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은채라는 배우를 만나서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굉장히 설명적입니다. 해원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굉장히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전제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그렇게 설명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느낌이 맞는다 싶었습니다.

해원(정은채), 성준(이선균)이란 이름이 나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살면서 혜원이란 이름을 많이 들었을 텐데, ‘혜’ 대신 강한 느낌을 주는 ‘해’를 써보았더니 좋았습니다. 성준은 제 친척 이름인데, 그분 생각이 나서 쓴 건 아닌 거 같고, 이선균을 생각하고, 해원이란 인물과의 관계를 막연히 떠올리면서 정해진 거일 겁니다.

감독님께서는 영화를 연출할 때 종종 장소를 먼저 결정한 후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해원>의 경우도 어땠나요?
그랬습니다.

<해원>의 주요한 공간은 ‘서촌’과 ‘남한산성’입니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장소를 정해서 가보고 그 곳에서 받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영화를 찍는 편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서촌과 남한산성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서촌은 얇은 지역이고 대로로부터 산 쪽으로 몰려있는 듯하고, 갑자기 1970~80년대 맛을 주는 거리가 여기서 활발히 움직이고 살아있는 느낌. 또한 작지만 단순한 구조물 때문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사직단과 사직단을 품고 있는 오래된 공원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전쟁을 대비해서 사람들이 이만큼을 할 수 있었구나, 라고 감탄하게 하는 곳. 걷기에 높이나 경사가 편한 산 오름.

이 영화는 주인공 남녀가 서촌에서 남한산성으로 이동하는 형식이 되풀이됩니다. 감독님께서는 촬영 당일 시나리오를 쓰시는 걸로 유명한데요. 형식의 경우도 즉흥에서 아이디어를 얻나요?
과거에는 큰 틀이나 형식은 정해지고 들어갔는데, <옥희의 영화>(2010)부터는 그런 것들도 찍어가면서 완성됩니다. 다른 과정이 다른 결과물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한 거가 더 큽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형식은 해원이 쓰는 ‘일기’와 그녀가 꾸는 ‘꿈’입니다. 일기와 꿈은 굉장히 다른 성격의 것입니다. 일기는 일종의 기록이자 행위의 주체의 의도가 개입하는 것에 반해 꿈은 의도에 상관없이 이뤄집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의도한 바는 무엇인가요?
하나는 사실적인 틀이고, 하나는 자유로운 틀인데 둘이 서로 섞여져 있습니다. 그 둘이 이런 식으로 섞여지는 게 중요했던 거 같습니다.

해원 역을 맡은 배우 정은채는 감독님 영화에 처음 출연합니다. 그녀에게 어떤 느낌을 받아 캐스팅을 했나요?
처음 만나서 잠깐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냥 이 사람이면 영화를 만들 만큼의 호기심이 계속 일어나겠다 싶었습니다. 구체적인 이 사람에 대한 느낌은 뒤에 더 만나고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것들이고요. 그런 것들이 해원이란 인물을 만드는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감독님의 초기작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남성의 욕망에 충실했다면 점차 여성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쪽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정은채와 같은 20대 배우가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해원>에서처럼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간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를 감독님 영화의 변화로 보아도 무방할까요?
저는 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조금씩 계속 다른 걸 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극 중 해원에게는 특유의 옷차림이 있습니다. 재킷에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차림인데요. 셔츠 색깔만이 눈에 띄게 변화합니다. 특히나 빨간색이 돋보이던데요. 그런 옷차림은 감독님의 요구였나요? 아니면 배우 본인이 이야기에 맞춰 그와 같은 의상을 준비한 것인가요?
그냥 그게 어울려서, 그러면서도 예뻐서 정했을 겁니다.

특별출연한 제인 버킨과의 인연도 소개해주세요. 그녀는 영화 초반 서촌을 구경하는 관광객으로 등장합니다.  
그전에 모르는 사이였는데, 그분이 콘서트로 서울에 온다고, 그때 절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촬영 시작 직전이었고, 그런 얘기를 했더니, 촬영현장에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원하면 카메오로도 나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호의나 열린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그날이 첫 촬영 날이었는데 만난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배우 김자옥과 류덕환도 감독님 영화에는 처음 등장하는데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요?
김자옥씨는 윤여정씨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서 몇 시간 얘기를 했는데, 그분의 천진함과 솔직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좀 맘이 벅찰 정도였습니다. 류덕환씨는 예지원씨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공연에 갔을 때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감이 가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자고 했습니다.    
 
감독님의 작품에서 남자 배우는 김상경, 유준상, 이선균 배우 등이 비교적 고정적인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여자 배우들은 다양해 보입니다. 심지어 외국인도 있었죠. (웃음) 연애나 사랑에 있어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반응이 더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닌 거 같습니다.

<해원>에는 흥미롭게도 세대별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배우 류덕환부터 이선균과 류준상, 김의성, 그리고 기주봉까지. 이들은 세대가 올라갈수록 좀 더 차분하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감독님의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 구성인데요. 시간이라는 역사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나요? 
그런 생각으로 한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된 겁니다.

남한산성에 올라간 해원과 성준, 중식(유준상)과 연주(예지원) 커플은 “이 성을 어떻게 쌓았을까?”라는 요지의 대화를 나눕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에게 영화 만들기란 한 작품, 한 작품 벽돌처럼 쌓아 성(城)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하하>(2010)의 중식과 연주 커플이 <해원>에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보았습니다. 감독님의 작품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할까요?
그런 대사가 나온 건 아마 제가 가진 그 산성에 대한 느낌 때문이었을 겁니다. 멍하게 계속 물어보는 단순한 질문이죠. 그 대상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에 대해서 그냥 계속 물어보고 되뇌고 싶은 맘이고, 대답이 안 나와도 나름 쾌감이 있고 좋습니다. (유준상과 예지원이 각각) 중식과 연주로 다시 나오게 되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해원>의 촬영은 김형구, 박홍열 두 분의 촬영감독님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두 분은 계속해서 감독님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영화에 함께 참여한 건 이례적입니다.  
두 사람이 시간이 맞으면 저랑 하는데, 둘 다 시간이 돼서 같이 한 겁니다.

현재 감독님께서는 정재영, 예지원 배우와 함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정유미, 이선균, 김상중, 정재영, 이민우, 예지원씨가 나옵니다. 제목은 <우리 선희>로 정했습니다. 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때 얘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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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해원> 홍상수 감독”

  1. 감독님 육성이 느껴지는 인터뷰네요. ‘그런 생각으로 한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된 겁니다.’ 요 말은 종종 써먹고 싶어요 ㅋㅋㅋ

    1. 예, 그렇죠. ^^ 홍상수 감독님 인터뷰는 어느 매체 건 답변보다 질문이 더 길뿐더러 감독님 답변의 대부분도 “우연입니다”이더라고요. 영화평은 꿈보다 해몽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감독님들도 그걸 더 원해서 사실 인터뷰가 무슨 필요인가 해요. 내가 본 게 이게 맞죠? 이런 질문 웃기잖아요. 그냥 자기 본대로 보면 되는 거니까 말이죠. ^^

    1. 예, 처음에 답변 받고 이걸 어떻게 그대로 싣지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 근데 읽다보면서 굉장히 홍상수 감독님스럽다고 감탄하기도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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