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Haeun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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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쓰나미였을까?’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를 보는 내내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발생할지 모를 쓰나미의 경고 차원이었다면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면 디테일이 살아있지 않았으며, 한국영화의 발전한 CG 기술을 자랑할 목적이었다면 할리우드의 재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윤제균 감독은 제작비 160억 원에 달하는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해운대>는 쓰나미가 몰려온다는 가정 하에 해운대에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상황을 다뤘다. 하지만 쓰나미가 등장하는 것은 이야기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을 훌쩍 넘어서다. 그때까지 영화는 극중 인물들 각자의 말 못할 사연을 전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랑하는 사이지만 마음을 확인 못 해 서로의 주변만 맴도는 만식(설경구), 연희(하지원) 커플과 이를 방해하는 동춘(김인권), 쓰나미에 대한 위험을 줄기차게 경고하는 국제해양연구소 김휘 박사(박중훈)와 그런 전(前)남편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기만 하는 유진(엄정화) 커플, 그리고 사랑 앞에 순진한 해양요원 형식(이민기)과 적극적인 서울여자 희미(강예원) 커플까지. <해운대>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처럼 ‘쓰나미도 휩쓸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부각하는데 집중한다. 

<해운대>는 그렇게 독창적인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거대한 쓰나미가 해운대 주변의 빌딩숲을 덮치는 장면이나 김휘 박사와 같은 존재는 이미 <투모로우>가 선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와 차별한다며 내세운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는 윤제균 감독의 전작인 <1번가의 기적>에서 이미 보여줬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1번가의 기적> 이야기에 <투모로우>의 CG를 결합한 <해운대>는 ‘재현을 전시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재현과 전시는 <해운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다. <퍼펙트 스톰>과 <투모로우>에서 물 CG를 담당했던 한스 울릭을 CG 슈퍼바이저로 기용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재탕이라 해도 무방한 ‘재현’의 느낌이고, 한국형 재난영화를 만들겠다며 기염을 토한 사람 사는 이야기는 층층이 캐릭터의 구축을 통해 사연을 만든다기보다는 쓰나미에 고통 받는 극중 인물의 극한 감정을 ‘전시’하느라 바쁘다. 특히 개봉 전 우려됐던 CG의 수준은 못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한국의 모팩에서 작업한 쓰나미에 휩쓸린 유조선이 광안대교에 매달린 장면은 <해운대>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오히려 캐릭터의 감정을 도구화해 볼거리로 만드는 인위적인 이야기는 ‘재난’에 가까울 정도였다.

예컨대, 동춘이 광안대교로 떨어지는 컨테이너에 위협을 당하는 순간, 카메라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인물의 급박함이 아닌, 개인기에 가까운 연기로 웃음을 주는 배우 김인권의 표정에 주목한다. 즉, <해운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블록버스터의 볼거리를 위해 도구로 화한 특별한 감정이지 쓰나미를 맞이한 보통 사람의 보편적인 감정이 아닌 것이다. 유독 타인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는 캐릭터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빈번히 등장하는 것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해운대>뿐 아니라 윤제균 감독의 영화에서 인물의 감정구축은 매번 겉핥기에 그쳤고 조작됐으며 결국 포장됐다. <1번가의 기적>만 하더라도 달동네 사람들의 애환은 희망이란 이름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했지만 그 결과, 비극은 휘발되고 달콤한 판타지만 부각됐다. 이는 한편으론 시각적 스펙터클을 노골화하는 블록버스터의 속성이기도 하다. 윤제균 감독은 <씨네21> 713호에 기고한 제작일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난영화이며 전 국민과 전 영화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영화라고 생각해왔다. 세계 시장 그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해운대> 연출에 임한 자세를 역설했다. <해운대>는 결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난영화가 아닐뿐더러 한국 영화인들의 자존심을 걸기에 윤제균 감독이 완성한 야심의 결과물은 그 깊이가 너무 얕다. <해운대>는 그저 윤제균 감독이 만들 만한 얄팍한 블록버스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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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28)

4 thoughts on “<해운대>(Haeundae)”

    1. 오~ 껄님하 제 블로그에 글을 남겨주시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능 ㅜㅜ 잘 지내시죠? 밥벌이하느라 여념이 없어서 매문용만 썼다능. 이제 매문용 아닌 글도 써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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