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의 동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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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아(박유천), 네가 나온 <해무>라는 영화 잘 보았어. 벌써 16년 전 일이네. 1998년 2월이 배경인 영화이더라. 그 당시라면 나도 잘 기억하고 있어. 바로 그때 대학을 졸업했거든. 너 1974년생 범띠지? 뱃일 나갔다가 조선족 밀항을 도우면서 만난 홍매(한예리)한테 그렇게 얘기했잖아. 그래서 더 반갑더라고. 나도 그 해에 태어났거든.

그 당시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 IMF 때문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던 때였잖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힘들어하던 때였지만 대학 졸업하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던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시기였지. 회사에서 한창 일 잘하던 능력자들도 명예퇴직 당하는 판이었는데 신입사원을 받을 회사들이 어디 있었겠어. 나만 해도 결국에는 번번한 회사에 이력서를 내기는커녕 신촌의 어느 호프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로 사회에 발을 디뎠으니까.

그에 비하면 너는 나보다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막내이긴 하지만 전진호의 어엿한 뱃사람이었잖아. 돈도 꽤 받지 않았나? 물론 밀항을 돕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야. 내가 너무 말이 심했나? 미안, 그 일 때문에 너는 큰 충격을 받았지. 지금은 그 기억에서 벗어났는지 모르겠네. 하긴 잊기 힘든 기억일 거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승자독식의 적자생존을 보면 IMF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해서 그때 이후 더 나아졌다고 보기는 힘들잖아. 아니 더 악화한 게 사실이지. 경제적으로는 호황일지 몰라도 돈 가진 사람들 얘기지, 도덕적으로 한국은 지금 완전히 붕괴 상태잖아.

그래서 영화 속 배의 이름이 ‘전진호’였던 걸까. 우리 사회의 특징이 그렇잖아. 오로지 발전이라는 핑계로 무슨 사고라도 터질라치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죽으라고 앞만 보고 ‘전진’해 왔잖아. 네가 전진호에서 겪은 사건을 보고나니까 1998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지속하여 온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 아차, 너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일 텐데, 그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네.

미안하지만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야 할 것 같아. 우린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 나 역시 되돌아보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스스로 그간의 지나온 잘못의 세월에 망각이라는 ‘해무’를 쳐둔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해무를 걷어내고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이야. 과거는 이미 지나고 없어진 무엇이 아니라 평행할 것만 같던 현재와 소실점으로 만나는 우리의 미래인 거잖아. <해무>라는 영화가, 아니 사연이 일련의 사건 사고로 집단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에 빠진 우리 국민들에게 지금 이 시기에 전해진 건 시대의 요구라는 게 내 입장이야. 그런 점에서 나와 동갑인 동식이 너도 충분히 이해해줄 거라고 믿어.

오해하는 건 아니지? 동식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야. 너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였잖아. 밀항하는 조선족 운반책에 뛰어든 게 감척 대상에 포함된 전진호의 마지막 출항을 앞두고 동료 선원들에게 큰돈을 챙겨주려 했던 선장의 배려인 건 알겠어. 하지만 선원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건 잘못한 일이지. 그렇다고 선배 선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뱃일이 익숙하지 않은 네가 선장의 명에 반발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야.

선장이 해경 감시 피하겠다고 생선 썩은 내 진동하는 냉동 창고에 조선족들 숨겼다가 했던 얘기가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아. 어느 조선족이 비싼 돈 내고 전진호에 탄 건데 좀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일갈했지. “이 배에서는 내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느그들 아버지여”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잖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힘 좀 있는 사람들은 신분이 아래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나서는 꼴을 못 견뎌 했던 것 같아. 더 정확히는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판단하면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지.  

왜 아니겠어. 딸내미 호감 시켜주겠다고 코리안 드림을 품고 전진호로 밀항하려는 연변 출신의 학교 선생님도 선장 눈에는 어쩌다 그물에 걸려든 월척 같은 존재였겠지. 그런 사람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며 인권에 대한 인식 같은 게 어디 있었겠어. 조선족 동포? 그저 쉽게 부려 먹을 만한 아랫것들이고 큰돈을 물어다 줄 먹잇감 수단이지 않았겠어. 이들이 냉동 창고 안에서 가스를 마시고 쓰러지자 자기 책임 면하려고 잔인한 수를 쓰는 거 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수십 명의 시체를 유기하잖아. 참으로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더라고. 너는 거기서 악마를 보았지?

우리에게 더 큰 불행은 어느 순간부터 철주 같은 인물이 정말로 한국호의 선장이고 판사고 아버지가 됐다는 점일 거야. 나는 그 씨앗이 1998년 IMF로부터 잉태되었다는 걸 <해무>가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았어. 초고속 성장과 경제 호황이라는 해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한국사회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던 거지. 영화가 전진호의 여섯 명의 선원들이 밀항자들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동식이 너의 눈높이에서 경험담처럼 진행하는 건 그런 이유가 결정적이었을 거야.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당시의 우리는 일종의 제삼자이고 그러므로 전진호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관찰자이자 목격자였던 셈이잖아.  

우리 아버지들은 국가를 살리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동료들을 사지로 내몰아가면서까지 자기 한 몸 건사하느라고 정신없었지. 삼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 철주 같은 선장에게 동조하지를 않나 조선족과 같은 소수자를 차별하고 무참히 짓밟기를 부끄럽게 여기지를 않았어. 배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상대적인 약자들을 되려 배 밖으로 밀어냈어. 동식이 너나 나와 같은 사회 초년병들이 더 좋은 사회, 더 발전한 국가, 거기서 얻게 되는 개인적 만족감과 같은 이상을 품고 사회에 발을 디딘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였던 거지.

물론 모든 아버지와 삼촌이 철주 같은 인간말종은 아니었어. 전진호에서 동식이 너를 가장 많이 아끼고 보살펴줬던 기관장 완호(문성근) 아재는 어렵게 밀항한 동포들을 선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미쳐버리고 말았잖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 완호 아재를 사지로 몰았던 거지. 그런 아재가 문제가 될 것 같자 철주 선장은 조선족에게 그랬듯 그에게도 무참하게 흉기를 휘둘렀지. 동식이 너는 그 광경을 숨어서 그대로 지켜봤어. 경악하는 홍매의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녀의 입을 막고서 말이야. 그때 네가 마음속으로 품은 건 무엇이었을까?  

그 일이 있었던 직후 가진 홍매와의 섹스는 네가 품게 된 마음속의 어떤 의지의 표명 같은 것이었지. 인간이길 거부한 이들의 먹고 먹히는 정글이 된 전진호에서 너는 어떻게 해서라도 홍매와의 ‘사랑’을 지키고 싶었겠지. 그리고 정말 철주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끝내 홍매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잖아. 하지만 너에게 돌아온 건 침몰한 전진호와 무엇보다 너를 떠난 홍매였지. 그때부터 우리 사회는 돈과 사회적인 성공의 수면 밑으로 격한 물거품을 뿜어내면서 모든 가치가 빠른 속도로 침몰하기 시작했어.

사실 너나 나나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키고 싶었던 가치는 딱 하나뿐이었는데. 사랑 말이야.  그래서 6년 후인 2004년의 너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의 에필로그가 내게는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 너는 여전히 애인 없이 혼자 지내는 것 같더라.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재개발되는 아파트의 공사판을 전전하고 있는 너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어. 대학까지 나왔으면 그보다는 더 나은 미래일 줄 알았는데 정말 1998년 IMF 이후로 너무 많은 게 변하고 말았어.

그동안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삼촌은, 이웃은, 떠난 애인은 인간적인 감정일랑, 타인에 대한 예읠랑, 사회적인 상식일랑 모두 나 몰라라 자기 혼자만, 우리 가족만은 어떻게든 잘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왔던 것 같아. 그렇게 배신당한 후 지금에야 그때를 돌아보니 과연 사랑이 무엇이었나 하는 의심도 들어. 나는 돈과 성공의 가치에만 올인 하려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금까지 외롭게 살아온 것 같아. 고립된 섬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할까.

어떻게 동식이 너는 지금 가정을 이루고 있니? 사랑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니? 나는 어떻게든 사랑을 믿어보려고 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고.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나도 너처럼 탐욕에 절은 철주 선장 같은 기성세대를 경멸하며 다르게 살 거라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생생해. 아버지나 삼촌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변화를 바라는 내 목소리를 내본 적이 없고 그러다 보니 입시다, 취업이다, 극한의 생존 경쟁에 내몰린 지금의 청춘들에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했어.

너 2004년에 공사판 일 마치고 식사하러 간 분식집에서 홍매를 만난 적 있지. 영화는 정체를 확실히 밝히지는 않지만 놀란 너의 표정은 그녀가 홍매라는 걸 알려주더라. 게다가 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었으니 네가 받은 충격은 정말 컸을 거야. 그 아이, 아마도 너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거겠지. 그렇다면 지금 2014년 현재에 그 아이는 16살의 고등학생이 되었겠네. 몇 년 후면 곧 사회에 발을 디뎌야 할 텐데 홍매의 딸, 아니 너의 핏줄이기도 한 그 아이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사실 너와 나와 홍매와 같은 1970년대 생들은 아버지 세대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고 이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거잖아. 그래서 개인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거지. 우리의 선배들인 386세대들은 빌어먹을 세상 바꾸겠다고 거리로 나섰지만 지금은 어때, 이들 역시 그들이 바꾸고자 했던 돈과 성공의 가치에 파묻힌 기성세대가 되고 말았잖아. 그러니까 우리 역시 가만히 있게 되면 여전히 철주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저당 잡힐 거야. 그렇다면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걸까.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우리 역시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닐까. 동식아 이 편지를 받게 되면 ‘꼭’ 응답해주길 바라.

아레나 옴므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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