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Hand in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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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합니다>(2010)는 ‘노인의 사랑’에 집중함으로써 젊은 관객 위주의 콘텐츠가 절대적인 한국영화계의 빈틈을 공략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최종태 감독의 <해로>는 그 기세를 이어받은 작품으로 황혼의 사랑을 그린 또 한 편의 ‘어른 영화’라 할만하다. 다만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어른들의 사랑이 폭넓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로맨틱 코미디의 변형태로 기능했다면 <해로>는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에 가깝다.

민호(주현)와 희정(예수정)은 40년 넘게 결혼생활을 이어온 부부다. 아들을 프랑스로 유학 보내고 단 둘이 오붓하게, 하지만 정 하나만을 가지고 관성적으로 부부생활을 이어가던 이들에게 경천동지할 일이 닥친다. 가벼운 뇌졸중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민호에 이어 희정이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것. 그동안 희정에게 소홀했던 것이 미안해진 민호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기에 이른다. 병이 찾아오면서 서로가 더욱 절실해진 이들은 부부간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되고 예정된 죽음이 가까워오자 한낱 한시에 함께 죽자는 약속을 한다.

<해로>가 원작삼은 핀란드 소설가 타우노 일리루시의 <Hand in Hand>(국내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발행됐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노부부가 홀로 생에 남는 것이 싫어 함께 죽음을 선택한다는 결말로 인해 유럽과 미국에서 굉장한 이슈를 불러왔다. 다만 그 쟁점이 논쟁적이면서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동반자살의 전제가 서로에 대한 절실한 사랑인 까닭이다. 이승에서 얻은 인연을 저승으로까지 이어가고자 하는 생사를 초월한 사랑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최종태 감독은 이를 그대로 스크린에 가져오되 생과 사가 전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긴밀하게 이어진 것임을 상영 내내 강조한다. 민호와 희정 부부가 별 탈 없는 생활을 이어가는 극 초반에는 폐차 직전의 자동차 두 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몽타주하며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하는가 하면, 동반자살을 앞두고 민호가 생명력 넘치는 꽃들로 집안을 장식한 미장센에서는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와 같은 연출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이 영화의 핵심적인 세계관이 짙게 배어있다.

실제로 죽음의 그림자가 덮치기 이전 노부부의 삶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서로에 대한 무료한 감정 때문에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자 이들은 서로에게 더욱 애착을 느끼면서 오래된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남다른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든 사랑과 설렘, 그중에는 죽음의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자유의지도 포함된다. 배우자의 고통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초월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민호화 희정 부부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다.

<해로>는 제목처럼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며 함께 늙고 죽는다는 것에 대한 영화다. 죽음의 시기를 선택하고 죽음을 초월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들의 사랑이 특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영화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바로 삶의 찬미. 죽음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삶이 소중해지는 경험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민호가 병상의 희정을 향해 “우리에게 지금 시간 많아”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현재의 삶이 더욱 소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가르쳐주는 지혜다. <해로>는 사랑이 무엇인지, 평생을 함께한다는 가치가 무엇인지, 결과적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죽음을 통해 포장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 시선으로 어른의 면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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