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 최종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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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태 감독의 <해로>는 40년 넘게 남편과 아내로 연을 맺어온 민호(주현)와 희정(예수정) 부부가 죽음마저 함께 함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다. 죽음이 중심에 서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비극적은 기운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긍정하는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극 중 노부부처럼 이 영화와 질긴 인연을 이어온 최종태 감독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해로>에 대해 들어보았다.

<플라이 대디>(2006) 이후 무려 6년만의 신작이다. 
개인적으로 <플라이 대디>로 인한 타격이 컸다. 아직도 이 영화에 대한 악성댓글이 블로그에 남아 있다. 상처가 된다. 본의 아니게 스타 때문에 영화가 만들어진 것처럼 포장이 됐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도 사라지고 영화도 사라지고 스타만 남은 영화가 너무 힘들었다. <해로>에 끌렸던 건 다시 ‘입봉’하는 마음으로 아예 내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노인 이야기에 도전해보자.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해로>와는 질긴 인연으로 묶였다.

<해로>는 어떻게 영화로 만들게 됐나?
데뷔하기 전부터 집 앞 도서관에 자주 다녔다. 그때 북유럽 코너를 마스터하다가 <해로>의 원작소설 <Hand in Hand>(국내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동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절판됐다.)을 푹 빠져서 읽게 됐다.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이야기의 여운이 제법 셌다. 원작을 그대로 옮긴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주인공의 나이를 낮춘 버전도 써보다가 우연찮게 <플라이 대디>에 먼저 들어가게 됐다. 이후 이런 저런 영화를 준비하다가 도서관에서 원작소설을 접한 후 10년 만에 결국 <해로>를 완성하게 됐다.

원작이 핀란드 소설인 만큼 판권을 구하기가 영미나 일본의 소설보다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국내에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물론이고 에이전시도 망한 상태였다. 애초에 판권 주체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판권 협상자가 미국 사람이었는데 부인이 미국 전화번호부를 다 뒤져서 찾았다. 그렇게 판권 협상을 진행 중에 <해로>의 제작이 백지화가 됐다. 일본 쪽도 알아보고 국내 쪽도 다시 살펴보다가 4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근데 기존에 접촉하던 판권 협상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어 오래 전에 돌아간 원작자의 부인과 접촉을 시도했다. 원작자가 죽으면 저작권 권리가 부인에게 가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락을 해보니 원작자의 부인마저 사망한 상태더라. 어렵게 제작비를 구해놓고도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고맙게도 핀란드 대사관의 여직원이 원작자의 유서까지 뒤져서 (무려!) 조카 7명에게 명의가 넘어간 사실을 밝혀냈다. 뿔뿔이 흩어진 7명에게 모두 동의를 얻어 드디어 제작에 들어가게 된 거다.  

제목처럼 이 영화와 ‘해로’할 운명이었나 보다. (웃음)
나도 그렇지만 주변의 스태프들도 이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중 한 스태프는 10년 넘게 영화를 했는데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시사회에 모신 적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더욱 <해로>가 자랑스럽게 부모님을 모시고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죽음이 중심에 서는 작품이지만 극 중 분위기가 비극적이거나 어둡지 않다. 
<플라이 대디>를 하기 전에 공황장애를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굉장히 두려웠다. 그때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했다. 원작소설을 보면 극 중 할아버지가 죽음에 대해 계속 사색을 한다. 그 때문에 소설에 많이 끌렸다. 이 할아버지는 죽음과 대결하는 거다. 이건 사랑으로 포장이 되지만 사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서 함께 죽는 게 아니라 부부의 행복을 방해하는 저 죽음이란 놈하고 결투를 벌이는 거다. 죽음 이 녀석, 네가 원하는 것처럼 비극적으로 죽지 않을 거다. 영화에서처럼 건강하고 맑은 정신에 행복한 상태로 죽는 거다. 이성적인 선택에서 나온 죽음인데 할아버지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젊은 사람은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는 살아있는 현재에만 몰두할 줄 알지 죽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각 나라마다 존엄사 기준이 천차만별이지만 한국은 걸음마 단계다. 특히 한국은 너무 산 사람 위주로 모든 것이 되어 있어서 죽음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 그러니까 영화의 초반에도 나오지만 죽음 또한 탄생만큼 경이로운 것인데 죽음은 삶에서 제외된다.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가 너무 힘들다. 본인의 의사는 전혀 확인하지도 않고 억지로라도 생명을 최대한 늘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죽을 거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문화가 절실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족이 최소화되면서 죽음과 나만 남게 된다. 그래서 <해로>가 세대 간의 공유도 되고 이슈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해로>는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젊은 층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 하고 있는 사람들, 다들 지금이야 둘도 없이 좋지만 모두 내일을 불안해하고 이 사랑이 영원할까 의심한다. 멜로라고 하면 대개 판타지로 보는데 <해로>야말로 정말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현실에서 그렇게 끝을 맺는 판타지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젊은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고 그런다. 나는 사실 그럴 거라고 예측했다. <해로>를 함께 만들었던 젊은 스태프들이 집에 가서 그들의 남편, 부인에게 당신도 극 중 노부부처럼 함께 죽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더라. (웃음) <해로>는 현재의 자신에 대해 질문을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무엇보다 민호와 희정 부부가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이 영화의 관건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주안을 둔 부분이다. 희정에게 함께 죽자는 민호의 설득이 관객들에게 설득되어야만 했다. 그게 안되면 희정의 선택이 관객들에게 이해 불가하게 된다. 그래서 그 설득을 가져가기가 힘들었다. 지금 버전의 영화에는 인터뷰가 빠져있는데 원래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들 부부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가 있었다. 시나리오 상에서는 인터뷰의 분량이 꽤 큰 편이었다. 막상 영화에 붙여 놓으니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관객에 대한 지나친 배려일 수도 있어 지금 버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해로>가 관객을 설득한 데에는 노부부를 연기한 주현과 예수정 배우의 연기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주현과 예수정이라는 배우의 만남이 행운이었다. 다들 의심을 했다. TV탤런트 출신의 주현과 연극계의 대모 예수정은 연기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 이게 영화적으로 참 묘한 시너지가 되었다. 따로 보면 참 안 맞아 보이는데 극 중 완전 판이한 성격의 부부인 것처럼 붙여 놓으면 얘기가 되는 거다. 처음엔 그 앙상블이 어떨까 신경이 쓰였지만 이 베테랑 연기자들이 액션 사이만 떨어지면 연기 스타일과는 상관없이 기가 막히게 몰입하며 잘 해주었다.

감독님(1965년 생)은 극 중 노부부보다는 어리기 때문에 오히려 주현과 예수정 배우의 의견이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주현 선생님을 만나 술을 마셨다. 선생님께서 초반에 민호와 희정 부부가 더 티격태격했으면 후반의 감정이 더 살아났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진작 좀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라고 눈을 흘겼다. (웃음) 사실 판권 때문에 영화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러 시간을 맞이 갖지를 못했다. <해로>를 만들면서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하게 됐는데 내가 그만큼 살아보지도 못했고 결혼 생활도 16년 밖에 안 됐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잘 모른다. 그나마 나에게는 원작이 있었다. 그 정서를 비교적 가까이 인지한 사람이 쓴 글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세대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다녔다면 너무 빠져들어 자칫 이야기의 중심을 잃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다. 이 정도의 영화로 만족한다.

사진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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