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춘물에 열광하다

wangdaeruk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와 아일랜드 영화 <싱 스트리트>가 각각 31만과 36만 관객(6월 1일 현재)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865만을, <곡성>이 575만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게’ 30만 조금 모은 걸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관객 수로만 따지면 그럴지 몰라도 이들 영화를 직접 비교하는 건 부당하다. 대형 제작사와 배급사를 등에 업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곡성>과 <엑스맨: 아포칼립스> 등이 한국 전체 스크린 수의 절반을 훌쩍 넘게 확보한 상황에서 <나의 소녀시대> <싱 스트리트>는 고작 5분의 1 수준으로 기록한 흥행이기 때문이다.

타국의 청춘물에 열광하는 이유

<나의 소녀시대>와 <싱 스트리트>는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청춘물이다. <나의 소녀시대>는 1994년을 배경으로 유덕화의 아내가 되는 것이 꿈인 소녀 린전신(송운화)과 학교 ‘짱’ 쉬타이위(왕대륙)의 풋풋한 사랑을 다룬다. 1980년대가 무대인 <싱 스트리트>는 규율이 엄격한 학교에 다니던 코너(퍼디아 월시-필로)가 첫눈에 반한 라피나(루시 보인턴)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밴드를 결성하는 이야기다.

이들 영화가 한국 젊은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얻은 배경의 연장선에 놓인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30대 이상의 향수를 자극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공감을 얻은 것.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심정을 대변할 마땅한 콘텐츠가 없어 불만인 지금의 청춘에는 생소한 낭만의 정서를 제공한다. <나의 소녀시대>와 <싱 스트리트>는 먼저 극 중 시대를 볼거리 삼은 전략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대만판 ‘응사’라고 할 만한 <나의 소녀시대>는 극 중 린전신이 유덕화를 짝사랑한다는 설정에 착안해 금성무, 곽부성, 주성치 등과 같은 당시 인기 절정의 배우와 <슬램덩크> <북두의 권> <드래곤 볼>과 같은 만화를 슬쩍슬쩍 노출하며 1990년대에 대한 추억의 정서를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싱 스트리트>는 1980년대의 주옥같은 브리티시 팝을 소환한다. 코너는 라피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아-하’의 <테이크 온 미 Take on Me>를 부르고 가족들과 함께 TV 앞에 모여 막 출범한 MTV 채널로 듀란듀란의 <리오 Rio> 뮤직비디오를 감상한다.

영화와 음악은 과거를 누리는 가장 좋은 매개체다. 특히 이것이 풋풋했던 첫사랑의 기억과 짝을 이루면 힘든 현실을 견디는 효과 좋은 진통제가 되기도 한다. <나의 소녀시대>의 린전신은 사실 쉬타이위보다는 그와 한때 친했던 오우양(이옥새)에 더 관심이 많다. 쉬타이위도 마찬가지. 린전신과 같은 반인 타오민민(간정예)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린전신과 쉬타이위는 서로 좋아하는 이와 맺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러면서 관심 있는 문화를 공유하게 되고 린전신과 쉬타이위는 유덕화를 중간 다리 삼아 애초 의도와 달리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싱 스트리트>의 경우, 라피나를 향한 코너의 마음은 일방적인 데가 있다. 라피나의 마음은 사실 딴 데 가 있다. 모델이 되고픈 마음에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 런던을 바라보고 있다. 이를 간파한 코너가 자신이 결성한 밴드 ‘싱 스트리트’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니 여기 출연해 인지도를 얻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며 라피나를 끌어들여 깊은 관계로 나아간다. 요컨대, <응팔>에서 폭발적으로 증명된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특정 문화와 사랑이 결합한 청춘물은 어느 정도의 완성도만 담보되면 국적에 상관없이 큰 인기를 얻는다.

한국영화에는 부재한 청춘물

그렇다고 <나의 소녀시대>와 <싱 스트리트>를 <응답하라> 시리즈의 아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은 나름 청춘 영화에 강세를 보이는 국가이다. <싱 스트리트>는 <원스>(2007) <비긴 어게인>(2013)으로 음악영화의 독보적인 흥행력을 쌓아가고 있는 존 카니의 신작이다. 이들 영화는 나름의 작품성과 개성을 가지고 한국 영화에는 부재한 청춘물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대만 영화 시장은 청춘물이 장악하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를 띤다. 여기서 대만 영화 시장의 불균형을 언급할 생각은 없고 다만, 그러다 보니 젊은 층에 호감을 사는 청춘영화가 꾸준히 등장하는 추세다. 이미 국내에 재개봉 하며 주걸륜의 존재감을 알렸던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계륜미의 매력이 돋보였던 <여친남친>(2013), 극장 개봉 없이 VOD 시장으로 직행한 <5월 1일>(2016) 등이 국내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다.

언급한 영화들은 <나의 소녀시대>처럼 현재는 성인이 된 이들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 시절에 대해 회상하는 비슷한 전개를 보이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피아노 배틀’, 비지스의 음악 ‘First of May’에서 모티브를 얻은 <5월 1일> 등 독특한 설정으로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나의 소녀시대>만의 차별점? 유덕화가 극 중에 언급되는 것 이상의 역할을 맡는다는 정도만 알려드리겠다.

<싱 스트리트>에서 코너가 부르는 노래는 라피나를 유혹하는 수단이면서 이들을 억압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다. 특히 코너가 부르는 1980년대 브리티시 팝은 뮤직비디오 시대의 출범에 맞춰 강렬한 외양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코너는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색깔의 옷을 걸치며 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학교장의 비위를 거슬린다. ‘남자가 계집애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는 학교장에 대한 코너와 라피나의 ‘원색 原色‘적인 저항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보수주의자들을 향한 유쾌한 항의의 성격을 드러내며 <싱 스트리트>를 음악영화 이상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나의 소녀시대>와 <싱 스트리트>가 과거를 거치지만, 퇴행이라기보다 현실의 반영으로 느껴지는 건 현실이 여전히 각박할지라도 잊힌 사랑을 소환해 살아갈 힘을 얻는 이야기로 맺음 되는 까닭이다. 이렇듯 청춘의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든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청춘의 사연은 한국영화에만 부재한 게 현실이다. 충무로의 게으른 제작자들은 우리 청춘들이 대입을 준비하느라, 취업에 목을 매느라 영화화할 만한 특별한 사연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다 헛소리다. 젊은이들은 힘든 알바 속에서 시간을 쪼개 뜨거운 사랑도 하고 현실이 청춘을 속일지라도 힙합과 같은 그들만의 문화로 저항하고 반항하며 특유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1980년대, 1990년대의 청춘과는 다른 2016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사연은 곳곳에 쌓여 있다. 다만 포착하지 못할 뿐이다. 한국영화의 청춘물 부재 상황에서 <나의 소녀시대>는 국내 개봉 대만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싱 스트리트>는 개봉 이후 줄곧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며 국내 젊은 관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시사저널
(2016.6.4)

4 thoughts on “한국, 청춘물에 열광하다”

  1. 기자님 말씀대로 한국도 대만처럼 순수하고 풋풋한 청춘영화가 많이나오면 좋을것같아요! 개인적으로 대만 청춘영화 너무 좋아하는데.. 나의 소녀시대는 상영관과 시간이 얼마없어 보는데 애먹었던 기억이나네요! 그래도 왕대륙씨가 내한하셨으니! 이제 상영관이 조금 더 늘면 좋을 것 같아요ㅎㅎ

    1. 예, 대만에서 청춘영화 좋은 거 많죠. 왕대륙은 정말 인기 많더라고요. 웃을 때 찢어질 것 같은 입이 정말 만화 같더라고요. 아마 < 나의 소녀시대> 인기가 많으니 개봉관도 늘지 않을까요 ^^

  2.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광고모델 에이전시 레디엔터테인먼트(www.readymodel.com)에서 캐스팅 업무를 맡고 있는 박현미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현재 진행하는 광고 건으로 연락을 드리고 싶은데 개인적인 연락처를 몰라서 기자님 블로그에 댓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공개된 댓글이라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직접 연락을 드리고 싶은데 연락 가능한 방법을 알려주시면 저희 쪽에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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