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은 영화의 추석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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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극장가는 여름 시즌에 이은 또 하나의 대목이라 할만하다. 전통적으로 이 시즌은 가족 관객을 겨냥한 영화가 강세를 보여 왔다. 올해 역시도 <가문의 영광 4 : 가문의 수난>(9/8 개봉)과 같은 코미디와 <챔프>(9/8)로 대변되는 휴먼드라마가 추석 특수를 잔뜩 노리고 있다. 한편으로 이 기간은 매일 같이 쏟아지던 여름 블록버스터의 등살에 못 이겨 잠시 포복하고 있던 작은 영화들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각종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작은 영화들이 대거 소개되는 까닭에 뻔한 공식의 추석영화들에 마뜩찮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태세다.

제주토박이 오멸 감독이 제주의 숨은 명소를 배경 삼은 <뽕똘>(8/25)은 이른바 토착영화다. 낚싯바늘이 물속에 가라앉도록 낚시 끝에 매다는 돌멩이를 뜻하는 ‘뽕똘’은 제주도 방언으로 몸집이 작지만 야무진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뽕똘인데 영화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제작비는커녕 카메라 장비도 없는데다가 여행객을 덜컥 주인공으로 캐스팅할 정도다. 결국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는 영화 현장을 코믹하게 다루지만 뽕똘은 오멸 감독의 정체성이 반영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 영화의 제작비는 500만원, 데뷔작 <어이그 저 귓것>(8/25)도 800만원으로 만들었던 감독은 뽕똘의 정도는 아니지만 무모할 만큼의 열정으로 자신의 한계를 돌파했다. 그리고 작지만 야무진 이 영화에 전주영화제는 한국장편경쟁 대상 부문에서 특별언급하며 가능성을 인정했다.  

전규환 감독의 <댄스 타운>(9/1)은 ‘타운 삼부작’의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도시의 외로움이 부각된 <모차르트 타운>(2008)과 도시의 상처를 그린 <애니멀 타운>(2009)에 이은 <댄스 타운>은 도시의 그리움을 콘셉트 삼는다. 탈북여성의 사연이 중심에 놓이지만 감독은 차별당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남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나이브한 시선을 배제한다. 대신 자본주의 향락과 그에 따른 고통을 모두 경험하는 그녀에게서 남한이나 북한이나 당면한 삶에 맞서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북에서는 남을 욕망하고, 남에서는 북을 그리워하는 삶의 역설. 탈북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삶의 주체로 바라본 이 영화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건 해외영화제였다. 스페인 그라나다와 미국 댈러스 영화제의 대상을 비롯한 각종 수상 소식은 흡사 상반기에 <무산일기>가 보여줬던 성과의 재현을 예고하는 듯하다.

함경록 감독의 <숨>(9/1)과 윤태식 감독의 <바다>(9/1)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지만 여배우의 특출한 연기가 유독 두드러진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숨>의 박지원과 <바다>의 고수희가 바로 그들. <숨>은 복지시설에서 자란 장애인이 임신을 하게 된 후 뱃속의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드라마다. 핵심은 소박한 삶의 행복조차 목숨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장애인들의 눈물겨운 삶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의 리얼리티가 절대적이다. 박지원은 실제 장애인이다. 원래 그녀는 <숨>에서 주인공 역할의 배우를 지도할 연기선생님으로 이 영화와 연을 맺게 됐다. 하지만 함경록 감독은 직접 출연해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줄 것을 요구했고 “우물 밖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캐스팅을 받아들인 그녀는 <숨>을 통해 실제 장애인이 아닌 여배우 박지원으로 거듭났다.

반면 <바다>의 고수희는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의 배우다.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우지끈 박살내버리던 배두나 친구,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식판에 섞은 관장약을 먹고 목숨을 잃은 여죄수 등 개성 있는 캐릭터를 도맡았던 그녀는 <바다>에서도 헤비급 복서라는 기상천외한 역할로 출연한다. 다만 이 영화가 그녀에게 좀 더 특별한 이유는 배우 경력 중 처음으로 주인공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한 변화는 겉으로 드러난 외형이 캐릭터의 전부였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내면에 담긴 감정마저도 꺼낸다는 점이다. <바다>는 절망에 빠진 두 여자와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년의 여행을 그린 로드무비인데 고수희는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고수희의 팬들이라면 그녀의 입체적인 면모를 목격할 수 있는 최초의 영화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북촌방향>(9/8)을 연출한 홍상수 감독은 이름값으로 치자면 블록버스터 급이다. 최근에는 이자벨 위페르와의 차기작 작업으로도 화제를 모았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1억을 전후한 제작비와 짧은 제작기간을 고수하며 작은 영화를 지향한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는 스타급 배우들이 즐비하다. <북촌방향>에는 유준상, 김상중, 송선미, 김보경, 김의석, 고현정이 출연한다. 기가 막힌 것은 그런 스타들이 홍상수 영화에서는 망가지기를 꺼려하지 않는다는 거다. 출연료도 주지 않는데 말이다. <북촌방향>은 전직 영화감독이 북촌에서 영화평론가를 만나, 전직배우를 만나, 영화과 교수를 만나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여배우들은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남자배우들은 평소의 진중함을 버리고 술 취한 모습을 보여준다. 스타의 화려한 껍데기를 무장해제 시킨 후 노골적으로 흐트러짐을 전시하는 홍상수 영화에 반한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는 <북촌방향>을 한국영화 최초로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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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re
201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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