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영화의 작가 전략

veterna

최근 3년간, 한국영화가 가장 흥미로웠던 시기는 여름이었다.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가장 많이 몰리는 시즌이라서가 아니다. 재미와 더불어 비상식과 비도덕과 불공정의 가치가 주류가 된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유의미한 메시지를 품고 있어서다.

올여름 극장가의 흥행을 주도한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그렇다. <암살>은 일제강점기 중 1933년을 주요한 배경으로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한 암살단의 활약을 그렸다. <베테랑>은 돈과 권력만 믿고 악행을 거듭하는 재벌 3세에 맞선 베테랑 형사의 고군분투가 중심에 선다.

두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무겁고 심각해 직설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힘들다. 하지만 엉망진창인 현재 한국의 원흉이라는 점에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소재다. 이에 최동훈과 류승완은 우회의 전략을 취하니, 바로 할리우드식 장르다.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을 표방했던 <도둑들>(2012)에 이어 최동훈이 <암살>에서 소환한 할리우드 영화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다. 팀 체재로 임무를 수행 중 내부 분열이 발생하고 사면초가에 몰린 주인공이 이를 전화위복 삼아 멋지게 해결한다는 전개 구조는 ‘일제강점기 버전의 <미션 임파서블>’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베테랑>은, 더 정확히는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서 빛을 발했던 범죄물의 반(反)영웅 캐릭터를 떠오르게 한다. 범인만 잡는다면 법질서 따위 안중에도 없는 <프렌치 커넥션>(1971)의 도일(진 핵크만)이나 악인의 이마에 총구부터 들이미는 <더티 해리>의 해리(클린트 이스트우드)가 2015년 한국 땅에 환생한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관객이 흥미를 동할 만한 이야기 구조와 매력적인 캐릭터, 여기에 눈을 현혹할 만한 액션이 더해진 <암살>과 <베테랑>은 여름 극장가에 더할 나위 없는 오락물이다. 사실 지금 언급한 요소들은 이 두 영화에서 기능상 ‘호객행위’에 가깝다.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의 기능에 우선 충실하되 기저에서 이 사회를 향한 감독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전달되게끔 역할도 무리 없이 수행한다.

최동훈과 류승완은 흥행이 절대적인 대기업 제작사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들이다. 연출의 변에서 그와 같은 의도는 잘 드러난다. <암살>의 최동훈 왈,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지만, 시대의 비극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르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관람 후 쉽게 감정이 증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닌, 오래도록 시원한 쾌감과 통쾌함, 잔상이 남게 되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이들 영화는 기록적인 흥행에만 머물지 않고 스크린 속 이야기와 관련한 현실의 담론을 매일 같이 만들어내고 있다. <암살>의 경우, 극 중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암살>의 전지현 같은 여성 독립운동가 1,900명이 넘는다’(오마이뉴스)와 같은 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다큐멘터리 <여성독립운동사>(EBS)가 TV로 방영되는 등 여성 독립운동가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베테랑>도 이에 못지않다. 극 중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악행을 연상시키는 실제 사건에 대한 기사 ‘영화 베테랑에 영감을 주었을 실제 사건 3가지’(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보도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재벌들의 갑질이 도를 넘어 사회 문제가 되는 시점에서 ‘재벌 그룹 대마초 파문’, ‘SK 최철원 씨 맷값 폭행 사건’, ‘한화 김승연 회장 아들 대신 보복 폭행’ 등 과거의 사례가 다시금 언급되며 이에 대한 개탄의 목소리가 타임라인을 달구고 있다.

암적인 현실을 소재로 끌어와 오락물로 개비하는 방식은 지난 3년 동안 여름 시장의 한국영화에서 두드러진 점이다. 2013년의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 2014년의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와 <해무>, 2015년의 <암살>과 <베테랑>까지, 이들 영화는 사회 비판 기능을 장착한 오락물로 꽤 많은 ‘비평’ 담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금의 <암살>과 <베테랑>처럼 ‘사회’ 담론을 형성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설왕설래는 있었지만, 스크린을 넘어 우리가 발붙인 현실에 적용할 만한 논의를 사회 전반으로 이끌기에는 무리였다.

이건 작품성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의 현실성과 추상성의 차이다. 각각 SF와 재난물의 장르를 두른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는 기득권 세력이 견고하게 방패를 두른 시스템의 파괴를 권장한다. <설국열차>는 미국 백인 주도의 지배 체계를 동양인과 흑인의 결합에 따른 신인류에게로 넘기고, <더 테러 라이브>는 일용노동자의 사과 요구조차 받아주지 않는 정치세력의 구태를 향한 개혁의 메시지를 ‘테러’라는 공격적인 형태로 일갈한다.

새겨들을만한 주장이지만, 사회적으로 적용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영화적인 은유가 강한 탓이다. 부와 인종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 구조를 기차의 칸으로 적용한 <설국열차>의 설정은 공감할 만하되 부조리를 파괴하는 방식은 워낙 급진적이어서 영화적인 해결책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더 테러 라이브>도 마찬가지로 국회가 파괴되는 결말은 통쾌한 것이되 너무 호전적이라 현실적인 느낌은 부여하지 못했다.

<군도>와 <해무>는 ‘전복’이 테마였다. 1862년(철종 13년)과 1998년을 각각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군도>와 <해무>는 양반의 착취와 탐관오리의 학정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선장, 즉 지배세력의 탐욕을 당대 사회를 비극으로 이끈 원인으로 접근한다. 다시 말해, 과거를 우회해 현실을 비판하는 <군도>는 민중 봉기를, <해무>는 살부(殺父)를 통해 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설파한다.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한 태도이지만, 그처럼 실천하기에는 구체적이라기보다 개념 설명에 가까워 사회적인 논의로까지 번지지는 못했다.

<암살>과 <베테랑>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취한 소재도 그렇거니와 결말에는 질문을 던져 관객이 사고토록 하고 종국에는 현실 참여를 유도한다. <암살>의 결말은 김구의 명을 받고 암살단을 조직한 독립군과 임시정부대원이 친일파 강인국(이경영)과 조선주둔군사령관을 제거하는 부분에서 끝을 맺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최동훈은 독립군이었다가 친일파로 변절한 염석진(이정재)을 심판하는 데 20여 분의 시간을 더 할애한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염석진은 경성 거리를 걷던 중 안옥윤을 보고는 서둘러 몸을 피하던 중 후미진 골목에 들어선다. 이때 자신이 사지로 몰았던 독립군을 만나게 되고 가슴에 총을 맞은 염석진은 시내에서 별안간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벌판으로 바뀐 공간에서 숨을 거둔다. 공간을 왜곡한 의도적인 편집이다.

이 장면이 판타지로 작용하는 것은 염석진과 같은 친일파가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까닭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빌붙어, 해방 후에는 미 군정에 꼬리를 흔들어 부를 축적하고 나라의 주요 요직을 차지한 친일파와 후손의 부조리를 청산하는 것. 그러니까, 영화 속 염석진이 죽어간 허허벌판이 단순히 판타지로만 존재해서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틀어진 역사의 제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런 맥락에서 <베테랑>의 결말도 흥미롭다. 서도철 형사가 재벌 3세 조태오를 체포하는 장소는 명동 한복판이다. 자신의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죄 없는 화물차 노동자를 반(半)죽음 상태로 몰고 간 조태오는 돈과 권력으로 이를 무마하려 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동자의 억울한 심정을 풀어주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고위층의 회유와 압력을 이겨낸 서도철은 많은 시민이 보는 앞에서 조태오를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돈과 ‘빽’이 없다는 이유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 순간만큼은 통쾌함 그 자체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함에도 이 당연한 사실이 특정 계층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베테랑>의 결말은 단순히 쾌감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조태오와 같은 재벌가의 크고 작은 비리와 범죄가 감춰지고 감싸지는 상황에서 이를 심판하는 공간이 광장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장은 사방이 뻥 뚫린 공간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민주적인 사회의 모습일 터다. 류승완은 그와 같은 공간의 미학을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용되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재미와 교훈을 일거양득 하는 두 영화의 방식은 ‘전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불합리한 사회 문제를 소재로 끌어와 이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는  <암살>과 <베테랑>의 제작과 배급이 한국 영화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직계열화를 주도한 CJ와 쇼박스라는 점에서 그렇다. 최동훈과 류승완은 제작사가 원하는 흥행 가치를 만족하게 만드는 한편으로 이들 지배 계층의 가치에 반하는 메시지를 적절히 녹여 넣어 작가(Auteur)의 능력을 다시금 발휘했다.

이는 그들의 능력이면서 최동훈, 류승완과 같은 작가들이 축적한 노하우이기도 하다. 내가 최근 3년 동안 여름 시장의 한국영화가 흥미롭다고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는 거대 자본을 끌어와 흥행이라는 보수적인 숫자 놀음과 시스템 파괴라는 진보적인 가치가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군도>와 <해무>는 국내 관객에게 익숙한 사극과 시대극의 틀 속에서 민란과 살부라는 좀 더 직접적이면서 전위적인 행동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암살>과 <베테랑>은 한국 대중영화의 또 다른 장(章)을 펼쳐 보인다.

한국 대중영화의 작가 전략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공룡 제작사가 감독의 도드라진 개성을 뭉뚱그리고 다양성을 일괄적으로 표준화하는 환경 속에서 <암살>과 <베테랑>과 같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영화 팬의 입장에서 얼마 되지 않는 즐거움이다. 2016년에는 어떤 한국영화의 오락물이 흥행을 주도하면서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할까. 이와 같은 기운을 이어갈 수 있는 영화가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ARENA HOMME
2015년 9월호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