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전>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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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2006년 10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시작으로 최근에 출간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까지, 이 시리즈가 한국 장르문학 시장에 남긴 반향은 크고 넓다. 한국 장르문학의 토대가 희박한 상황에서 ‘공포’라는 주제로 10편의 작품을 모아 단편선을 낸 경우는 없었고, 또한 ‘최초’라는 시도의 과감함에 그치지 않고 양질의 작품을 통해 한국 공포문학의 가능성을 널리 알렸으며, 이후 장르 관련 단편선의 붐을 이끌고 영화 판권 계약을 통해 영화계의 관심을 이끄는 등 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는 장르문화 시장의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귀신전> <이프> 등으로 유명한 작가 이종호는 공포문학 창작 집단 매드클럽(
http://themadclub.net)을 이끌고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탄생시킨 장본인 중의 한 명이다. 4편의 단편선을 통해 40편의 작품을 소개하고 20여 명의 장르작가를 배출한 상황에서 중간점검 차원으로라도 그간의 성과도 알아보고 이 시리즈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종호와의 인터뷰는 8월 24일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이뤄졌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로 시작된 이번 인터뷰는 국내 장르문학과 국내 영화계 문제, 그리고 이종호 개인 작품에 대한 향후 계획 등을 반환점삼아 결국 한국 장르문화 전체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인터뷰 요청 당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와 관련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라도 나오겠다며 승낙했다.
이종호(이하 ‘이’) 결국 날 위해서다. 몇 년 동안 공포소설을 쓰다보니까 혼자서는 아무리 해도 정말 쉽지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2년에 한 번씩, 3년에 한 번씩 장편을 발표해봤자 독자들이 재밌게 봤다고 해도 입소문 나기 전에 사그라지고 신작 나오면 전의 작품 다 잊어버리고 연속성 같은 게 없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공포 장르는 책이 재미있다고만 해서 보지를 않더라. 공포 싫어하는 사람들은 재미가 있더라도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래서 장르의 독자군이 형성 안 되면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묻힐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군을 만들고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그래서 독자층이 꾸준히 늘어나는 붐을 만들지 않으면 나도 못살고 공포문학도 못 살겠다 싶었던 거다.

공포가 유독 그렇다.
SF도 그렇긴 한데 공포에 대해서만큼은 ‘난 아예 싫어’ 그런 분들이 많다.

그런 편견의 반작용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 시리즈의 출발 아닌가?
데뷔작 <흉가>를 출간하기 위해 세 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세군데서 모두 연락이 왔다. 그중 ‘황금가지’가 있었는데 다른 출판사와 하게 됐다. 그때 황금가지의 김준혁 (現)편집장이 다음 작품은 꼭 자기네 회사에서 출간하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하면서 공포 문학 단편선 얘기가 나왔다. 내가 작가를 모으겠다, 1년 후가 될지, 2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해보자. 그러고 나서 작가 10명을 모으고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편이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지금은 마니아층이지만 뚜렷한 독자층이 있는 것에 반해 당시로서는 꽤 모험적인 시도였다.
그 당시에는 생뚱맞았다. 한국에 공포문학이 있나, 독자가 있나, 그냥 무더운 날씨에 공포특급 정도를 바랄 때였으니까. 장편도 그랬는데 하물며 문학적인 단편집을 낸다고 하는데 다른 데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편이 나오고 여러 모로 반향이 컸다.
작년에 장르 관련 단편집 붐이 일었다. 그 전엔 공포문학 단편 외에는 없었는데 황금가지에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냈고 ‘시작’에서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을 발표했다.  


다양한 장르를 강조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의 표지는 유난히 눈에 띈다. 굻고 동글동글한 선으로 고양이 얼굴 캐리커처를 박아 넣은 표지는 공포 단편선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리만치 발랄하고 경쾌하다. 어둠침침하고 경직됐던 전편들의 표지와 비교해도 확 달라진 면모다. 이런 시도의 기저에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작가들과 출판사의 의지가 담겨 있다. 작품 구성에 있어 장르를 공포에만 한정하지 않고 SF부터 미스터리까지 다양하게 가져갔으며 현실 반영은 물론 장르의 트렌드를 고려한 소재 선택과 작풍도 이전과는 변화한 부분이다. 이 시리즈가 4편까지 오면서 어느 하나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명백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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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이제 일종의 브랜드가 됐다. 근데 세 번째 단편선 제목이 <나의 식인 룸메이트>이었던 것에 반해서 이번엔 다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로 돌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식인 룸메이트>처럼 융통성 있는 제목이 좋은데. (웃음)
<나의 식인 룸메이트>가 나온 이후에 출판사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편은 언제 나오냐는 문의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웃음) 그렇다면 제목을 매년 번갈아가면서 하자, 그런 취지로 이번에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는 의미에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로 했다.

독자들 반응은 어떤가?
1편이 좋다는 독자와 4편이 좋다는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1편을 좋아하는 독자는 4편이 너무 심심하다, 4편을 좋아하는 독자는 1편이 너무 잔인하고 극단적이다. 사실 1권이 좋다는 독자가 훨씬 적다.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장르문학이 일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다보니까 독자층이 순문학에 편중됐다. 독자들이 책을 즐긴다기보다 의미를 찾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현재 장르문학이 약진을 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서점에서는 60~70%의 독자들이 자극적이지 않은 순문학소설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4편에는 SF라고 해도 무방한 작품도 있고 꼭 공포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더라. 
그렇다. 장은호의 <첫 출근>과 최민호의 <더블>은 어떻게 보면 공포 코드가 약할 수 있다. 공포 문학 단편선 안에 있으니까 공포라고 보지 SF 단편선에 있었으면 SF다. 하지만 두 작품이 SF라고 해서 누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굉장히 좋다. 그렇게 이번에는 다양성을 목적으로 했다. 공포가 저변에 깔리되 장르의 느낌을 줘서 다양성 있는 작품으로 구성했다. 사실 열 편 모두 정통 공포이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읽다가 지칠 것 같다. (웃음) 

<나의 식인 룸메이트>에도 그런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 가령, 황희의 <얼음폭풍>은 자연재해물의 성격이 강했다.
4편은 처음부터 그런 요소를 많이 생각했다. 1편에서는 작가들에게 독자들이 보면 치를 떨 만큼 몰입할 수 있는 확실한 공포를 제공하자고 요구했다. 근데 4편은 공포소설을 쓴다기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하자,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공포가 가지는 장점이 자극성과 어느 정도의 극적인 갈등이 다른 장르보다 강하니까 공포적인 감정을 저변에 깔되 재미있는 얘기를 쓰자, 강조했다. 그 결과, 지금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게 됐다. 

사실 공포니 스릴러니 SF니 모두 장르문학의 편의상 구분일 뿐이지 장르는 융통성이 강하다.
그렇다. 지금도 매드클럽 작가들을 보면 SF 좋아하는 작가, 미스터리 좋아하는 작가가 다 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을 썼던 한국 미스터리 창작 집단과 연대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크로스오버가 되면서 장르 전체의 파이를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독자층도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4편의 표지는 저렇게 발랄하게 가고. (웃음)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더라.

예전 시리즈의 표지가 강하고 무서운 호러 일변도였다면 이번엔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 편할 것 같다.
장르적인 느낌을 최대한 다양하게 가져가는 게 목표인 것처럼 표지도 강한 작품은 강하게, 소프트한 작품은 소프트하게 가져가는 게 목표다. 공포 장르문학 팬들은 특정이 있다. 취향이 너무 다양하다. 그래서 출판사 쪽에서도 머리가 아프다고 얘기하는 게 단 한 번도 출판사에서 제일 재밌다고 한 작품에 대해 독자들이 재밌다고 한 적이 없고, 작가들 사이에서 재밌다고 한 작품에 대해서도 독자가 재밌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까 다양한 게 가장 안전한 장치가 되더라.

다양성도 그렇지만 4편은 시의적절한 소재가 많더라. 인터넷 악성 댓글에 따른 자살문제를 다룬 김유라의 <배심원>이나 신종플루 때문에 더 각광받고 있는 좀비물인 권정은의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도 그렇고.
이번에 많은 독자들도 현실의 트렌드 반영이 좋았다고 하는데 그걸 의식적으로 넣으라고 얘기를 한 건 아니다. 아무래도 소재를 찾을 때 늘 뉴스라든가 신문기사를 많이 보고 찾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영이 된 것 같다. 공포물처럼 사회 현상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장르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굳이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그렇게 나온다.

지금 같은 시기에 소재 걱정은 없겠다.
정말 요즘은 불안의 시대인 것 같다. 신종플루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 세대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우울하고 정부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포에 더 둔감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1편의 경우, 신체훼손 묘사 때문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19세 미만 구독불가 도서’로 판정받아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2편 이후에는 잠잠하다. 그렇다고 이후 단편선에 신체훼손 묘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1편에 그런 일이 발생한 후에 작가들이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개인의 작품이면 모르겠는데 단편선이다보니까 자기 때문에 ‘19금’을 받았다는 부담감을 굉장히 크게 갖더라. 자기 검열하지 말고 써라, 그러면 내가 출판사와 알아서 조정을 하겠다고 했는데도 처음부터 소재 자체를 그런 쪽으로 잡지를 않았다. 1편에서 <들개>를 썼던 우명희 작가의 경우, 여성인데 ‘이 작가는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는 유의 안 좋은 댓글과 주변에서 ’너 왜 그런 글을 썼니‘하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나중에 우작가와 얘기하는데 자기는 이제부터 심리공포 쪽으로 쓰고 싶다며 작풍을 바꿨다고 하더라. 자기가 아무리 좋아도 싫어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검열이 되고 말았다.
그때 워낙 분노했던 게,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위원이 밝히길, 작품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 게 아니라 시체 유기와 같은 특정 장면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하니까. 이건 손발을 아예 묶어버린 건데 지금도 안타까운 게 <들개>처럼 강렬한 작품들이 앞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1편부터 계속 읽어온 독자의 입장에서, 4편의 아쉬움은 작가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두세 작품을 제외하면 한 작가가 모두 썼다고 느껴질 정도로 문장이 주는 맛이 없다.
문장은 최대한 담백하게 간결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작가들에게도 그렇게 요구를 했다. 왜냐면, 문장에 대한 트레이닝이 많이 된 작가라면 괜찮은데 그게 안 된 상태에서 문장에 너무 신경 쓰다보면 글이 너무 관념적으로 빠진다. 자꾸 심리적인 묘사를 집어넣어서 사건이 죽고 늘어지고 이런 현상이 초반에 굉장히 있어서 사건을 최우선으로 하자, 최대한 간결하게 하자 그렇게 의도를 해왔다. 이제는 사건만 가지고, 소재만 가지고 다양화시킨 단계까지는 왔고 이제 다음 단계로 가야 할 시점이다.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또한 단편선의 수준이 한 단계 더 상승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게 바로 문장에 대한 개성이다. 나도 사실은 최근에 고민을 가장 많이 한 게 그 부분이다.

네 편의 시리즈가 나온 만큼 단편을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이건 매드클럽의 큰 프로젝트인데 황금가지에서 내년에 공포 문학 중편 컬렉션을 낸다. 매드클럽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중편소설 단행본 열권이 세트로 동시에 출간이 된다. 이미 2년 전에 기획이 돼서 계약서도 썼고 작가들도 준비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다.
그렇다. 단편을 쓰던 작가들이 장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중편을 쓰면 안정적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출판사 쪽에서는 기자간담회까지도 생각을 하더라. 여름철 가장 큰 프로젝트로 마케팅도 하고 비용도 쏟아 부을 수 있으니까. 책값도 한 권당 5천원 생각하고 있으니까 세트로 해봐야 4~5만 원 정도고. 국내 장르문학이 한 번에 열권이 나오는 게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작품을 영화로 볼 수 있는 날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가 얻은 다양한 성과만큼이나 주어진 과제 역시 만만찮다. 특히 독자층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소위 순문학이라고 부르는 작품의 독자에 비해 현저히 작은 숫자다. 이 시리즈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영화 제작과 흥행 성공은 장르문학의 독자수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안 그래도,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편이 나온 즉시 여러 작품이 영화판권 계약이 이뤄지기도 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남다른 영화계 입장에서 이 시리즈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화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는다. 무슨 문제 때문일까?

1년 전에 김준혁 편집장과 전화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반응에 대해, 대중적인 호응이라기보다는 특정 독자층의 호응이라고 얘기를 하더라. 지금은 어떤가?
이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데 공포 문학 단편선 신작이 나오면 팔리는 수만큼 전편이 같이 팔린다. 좋게 보면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어서 전편을 챙겨보는 거고, 단점은 그만큼 신간이 폭발력을 받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1편의 경우, 6쇄를 찍었으니까 단편선으로 꽤 많이 팔린 건데 잊을 만하면 1쇄 또 찍었다고 연락이 온다. 그렇게 신작 단편선이 나오면 전 시리즈가 함께 팔리는 게 반복이 된다. 넓게 보면 1편이 계속 팔린다는 게 저변이 그만큼 넓어지고 있다는 거고 브랜드 네임도 알려진 거니까 우선적으로는 반갑다.

그 정도면 대중적인 호응에 가까워 진 거 아닌가?
김준혁 편집장 말로는 이렇게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는 책이 없다면서 베스트셀러도 이 정도로 관심을 받는 경우가 없다더라. 얼마 전에 MBC의 <문화산책>이란 프로그램에서 매드클럽 작가 모아놓고 촬영도 했다. 물론 그런 관심에 비해서 판매량이 기대만큼 팍팍 늘지는 않았다. 기존의 우리나라 공포문학 독자들의 80~90%는 무서운 얘기, 괴담을 좋아하는 것에 반해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외국의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공포문학 독자들을 새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작품 수준도 계속 높여야 하고 그쪽 독자들이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을 기웃거리면서 망설이는 편견을 넘어서기 위한 과정도 필요하다. 내편에 중편선을 기획한 것도 이를 넘어서기 위한 의도가 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의 영화 판권 계약은 어느 정도나 이뤄졌나?
아직까지 4편에는 영화판권 맺은 작품이 없다. 3편까지는 있었는데 그에 비춰 그만큼 공포시장이 어렵다는 얘기다. 장편의 경우는 책이 나오기도 전에 영화사에서 ‘이야기 없냐?’하면서 연락이 왔었다. 요즘엔 그런 연락이 쑥 들어갔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편까지는 영화 판권 계약한 작품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화된 작품은 없다.
그렇다, 없다. 다만 여러 케이블TV와는 호러드라마 얘기가 1년 전부터 오가고 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작품을 가지고 매주 한 편씩 50분짜리 정통 호러드라마를 만드는 거다. 어떤 케이블TV는 ‘공포 문학 단편선’이라는 타이틀로 준비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황금가지에서도 영상화 작업을 중요시해서 여러 업체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영화계 상황을 보면, 하도 공포영화가 죽을 쑤니까 투자사 쪽에서는 공포라고 하면 아예 관심도 안 보인다. 그래서 공포문학을 원작으로 해도 스릴러나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춰 시나리오를 다시 구성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화판은 휩쓸리는 경향이 심해서 국내 공포문학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 하나만 터져주면 좋은데 아직까지는 여의치가 않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작품들이 영화화 안 되는 이유는 뭔가?
실제로 내가 영화사 만나서 진행한 것도 4군데나 되는데 단편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항상 마지막에 엎어졌다. 아무래도 단편을 가지고 장편을 넘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 그래서 황금가지도 그렇고 영화사도 모두 중편을 선호한다.

충무로에는 단편소설을 장편영화 시나리오로 확장할 수 있는 시나리오 작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동의한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영화화가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시나리오 작가에 문제가 많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어느 한 작품도 내용도 재미있고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로 옮기기 편한 작품인데 공포물에 이렇게 감각이 없을까 할 정도로 못 썼다.

장르출판사들의 바램 중에 하나가 국내 장르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더라. 그렇게 바람을 타면 국내 장르소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맞는 얘기다. 최근에 매드클럽 작가들과 소설이든 영화든 공포가 나아갈 바가 무엇인지 그런 얘기 많이 한다. 최근에 <불신지옥>을 재밌게 봤다. 낮 시간에 가서 봤는데 상영관은 작은 데로 배정이 돼있고 관객은 별로 없고 네티즌 평점도 낮고. 가슴이 답답했던 게 이렇게 잘 만든 영화가 관객 호응을 못 받고 있다니. 투자사에서는 항상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인데 공포영화는 엔터테인먼트를 배제하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나는 예전에 그 말에 반대했다. 잘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잘 만들되 관객이 호응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그 전까지 감독도 그렇고 작가들도 그렇고 공포 장르를 너무 무겁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영화관 주 관객층이 10대, 20대인데 그들은 <불신지옥>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보러 가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 더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 그들은 가볍게 비명을 지르고 즐기고 싶은 거다. 그런 영화들은 전문가들은 좋아할지 모르지만 관객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못 만든 <고死:피의 중간고사>가 관객의 호응을 받았던 건 왜인가. 계속 사건이 터지고 시끌벅적했기 때문이다. 이제 영화든 소설이든 어느 정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요소를 넣고 그런 소재를 찾아야 공포 장르도 저변이 넓어질 수 있는 거다.

대형작가의 출현도 장르시장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고 보는 관계자들이 많다.
대형작가가 나타나면 그만큼 비슷한 소재의 인접한 책을 찾아보게 된다. 굉장히 재미있는 게 매드클럽 작가 중 한 명이 신작을 내면 전체 매드클럽 작가들의 책 판매량이 전부다 올라간다. 그래서 농담으로 우리가 책을 한권이라도 더 내는 게 모두를 먹여 살리는 길이다 그렇게 얘기한다. (웃음) 그런 효과다. 영화가 성공하면 원작 소설의 폭발력이 생기는 것도 독자도 그렇지만 제작사들이 부러 그런 장르의 책을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 공포영화처럼 급조된 기획이 사라질 수 있다. 아직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작품이 영화화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늦어지고 있는 게 장점일 수도 있는 것이 하나가 터지면 그만한 퀼리티의 작품이 쌓여있기 때문에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우리끼리 위안을 하고 있다. (웃음)


작가 이종호의 개인작품에 대하여

이종호 작가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4>를 준비하고 선을 보이는 와중에 역시 시리즈로 연재중인 <귀신전>의 3편과 4편을 차례로 발표했다. <귀신전>은 귀신과의 전쟁을 벌이는 퇴마사들의 이야기로, 장르 특유의 공포는 물론 대중적인 오락성까지 갖췄다고 하여 ‘공포테인먼트’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내년 3월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작품 역시 3편 발매와 함께 영화 판권 계약을 맺어 영화화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종호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상태다. 어떻게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지, 어디까지 진행됐으며, 영화는 언제 볼 수 있는지 등등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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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은 몇 편 완간이 목표인가?
짧으면 7권, 길면 9권을 최종으로 생각하고 있다. 3개월에 한 권씩 출간이 되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빨리 쓸 줄은 몰랐다. 일단 출판사에서 계속 전화가 온다. (웃음) 처음엔 싫었는데 지금은 자극이 돼서 게으름 덜 피우고 쓰게 되더라. 내년 3~4월 정도를 완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4권까지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지금은 에피소드 위주로 나가지만 후반부부터는 약간 종말문학 비슷한 쪽으로 갈 거다. 말하자면 1,2권은 떡밥이고 (웃음) 3,4권부터는 굵은 하나의 이야기로 나갈 거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 편인가?
읽은 독자들은 재미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생각만큼 책이 안 나간다. 읽은 독자들 자체가 많지 않고 <퇴마록>이 성공하고 나서 그런 종류의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는데 거기에 너무 많이 실망을 해서 <귀신전>에 대해서도 아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귀신전>은 일종의 모험 아니었나? 공포와 무협을 결합한 장르 크로스인데다가 이렇게 긴 장편을 쓴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전까지 정통 공포소설을 썼는데 이런 가벼운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퇴마록>의 아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전문가나 독자들의 반응은 좋았다. 내가 참 싫어하는 모 일간지가 있는데 그쪽 문학부 차장이 있다. 장르문학을 안 보니까 출판사에 대놓고 보내지 말라고 하는 기자다. 그 기자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귀신전>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는 거다. 순문학 작가 기사밖에 안 써주는 기자인데 재미있게 봤다니까 의외였다. 인터뷰도 길게 하고 기사도 꽤 크게 내줬다. 그 기자 얘기로는 판타지와 현실의 세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엮인 장르를 국내에서는 못 봤다더라. 그렇게 전문가들은 재밌게 봤는데 아직은 독자층에 한계가 있어서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런 욕심을 낸 적이 없는데 지금을 공을 들여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웃음)

원래 <귀신전>은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MBC에서 문의가 계속 왔었는데 그쪽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극중 주문 같은 것들이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방송심의상 어려울 수 있다고 하더라. 오히려 요즘은 잔혹한 장면은 용서가 되는데 그런 쪽은 예민한 게 종교단체에서 굉장히 압력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 시나리오까지 쓰게 됐나?
3권까지 영화화 판권을 계약했다. 시나리오가 나왔는데 그걸 보고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뤘다. 나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인데 그 틀을 그대로 가져가고 캐스팅을 위해서 캐릭터를 막 바꿔놓았다. 게다가 소설과 영화는 장면 구성이 완전히 다른데 소설의 지문을 그대로 옮겨놓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쓰고 있다. 극중 에피소드는 가져오지만 다른 이야기로 새롭게 다시 짜서 현재 3분의 2정도 써 놨다. 

원래 시나리오는 안 쓰지 않았나, 관여도 안 했고.
가능하면 안 쓰려고 했던 게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소설로 돌아오는 감각이 오래 걸리더라. 그래서 원작자는 안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다. <분신사바> 당시 안병기 감독하고 부딪혔던 게 나는 19금으로 가야한다고 굉장히 주장했었다. <모녀귀>라는 작품이 원작인데 에로틱한 공포가 주된 분위기였다. 딸보다 엄마의 에로티시즘으로 인해서 유발되는 공포가 강했는데 안병기 감독은 워낙 잘 나가던 때라 자신만 믿어라, 공포영화는 15세 관람가 아니면 안 된다고 엄마 얘기를 다 뺐다. 그러다보니 아귀가 안 맞고 균형도 깨지는 문제점이 생겼다. 그래서 원작자라고 거리를 두는 게 능사가 아니구나. 그래서 <귀신전>은 내가 시나리오를 써서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럼 영화로 가장 빨리 보게 될 작품은 무엇인가?
만약 진행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귀신전>은 내년에 영화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어떤가?
내년 여름에 ‘한국 공포 문학 중편선’을 내려면 <귀신전>을 쓰는 틈틈이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파우스트에 <그녀 집으로 오세요>라는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는데 완결을 짓지 못해 그걸 수정을 해서 다시 쓰려고 한다. 이 작품은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수록된 신진오 작가의 <상자>를 중편으로 발전시킨 거다. 신진오 작가에게 아이디어 사용료 2백만 원을 지불하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상자에 넣으면 살아난다는 설정만 쓰고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설정만 사용했으면 그렇게 비싸게 안줘도 됐는데 말이야. (웃음)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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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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