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직면하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한국적인 것’의 정체다. 흔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전통문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가 남자의 장구 장단에 맞춰 춘향가를 부른다든가, 선이 고운 여인이 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는 신윤복의 풍속화 같은 풍경일 테다.
이는 ‘한국문화’와는 좀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지금 젊은 친구들이 열광하는 K팝과 한국 드라마처럼 한류를 이끄는 문화가 소위 한국문화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민이 발생한다. 한류와 같은 한국문화는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년 또는 소녀들이 그룹을 이뤄 각자 파트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함께 춤을 추는 K팝은 한국 고유의 것은 아니다. K팝이 성행하기 전에 이미 일본에서, 미국에서 선보였던 문화다. K팝은 이를 받아들여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후크’라고 불리는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강화한 결과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가. 자극적인 소재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의 시청자를 매료시킨 특징이 있다.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삶으로 드러나는 가족애와 마음에 품었던 연인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지고지순한 사랑과 같은 이제는 잊힌 가치가 되어버린 순수를 소재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는 것.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의 ‘소프 오페라 Soap Opera’와 맞닿는다.
소프 오페라는 일정 시간대에 장기적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전, 라디오 연속극을 말한다. 주로 비누 회사의 후원을 받았던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초기의 소프 오페라는 집 안에 있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흔히 ‘신파’라고 부르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내용이 많았다. 비누 회사는 이에 착안, 자사의 비누를 사용해 얼굴을 묻은 눈물 자국을 닦으라는 의미에서 소프 오페라에 광고를 넣고 제작비를 대기 시작했다.
그런 배경과 상관없이 한국 드라마, K팝의 성공과 함께 한류가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지면서 해외 사람들에게 한국문화라 함은 곧 한국적인 것과 동일하게 인식됐다. 이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거로 알고 있다. K팝은 상업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오래 기억될 음악보다는 단기간 내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음악 만들기에만 열중한다. 그 결과로 다양성은 사라지고 걸그룹, 보이그룹의 음악만이 성행하는 게 현재 한국 음악계의 현주소다.
한국 드라마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TV에서는 매일 같이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드라마를 방영한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고 제작 인력 역시 부족하다 보니 고만고만한 작품이 허다하다. 그 와중에 성공한 드라마가 나오면 이를 따라 하는 작품이 순식간에 채널 대부분을 도배하는 식이다. 그중 소수의 히트작이 한국 드라마의 대표격으로 전 세계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는, 한류로 상징되는 한국문화란 우리 고유의 것을 지키고 계승하여 발전시켰다기보다는 기존의 유행하는 것을 들여와 한국 시장에 맞게 변형해 계량화한 것에 가깝다. 어찌 보면 이것은 한국문화의 생존 전략에 가깝다. 서두에 말한 한국적인 것이라 함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존재감이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한국말에 일본어가 강제적으로 섞여 들어오고 미군의 한국 주둔에 따른 미국 문화의 유입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한국은 여러 문화가 혼재하는 상황으로 발달해왔다.
한국은 예로부터 지형의 특성상 고유한 문화를 지키기가 힘든 구조로 되어 있다. 작은 반도 국가로 위로는 중국이, 아래로는 일본이, 냉전 시대에는 열강들이 한국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힘을 과시한 결과다. 결국, 문화란 그 나라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내포한 정신적인 DNA와 다를 바가 없다. 문화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어서 외부의 조건에 따라 늘 진화하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를 인정하면 한국적인 것의 정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수준에 이른다. 한국적인 것의 정체를 꼭 한국 고유의 문화에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를 한국 고유문화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한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기본에 해당한다. 한국 고유의 것을 지키는 한편으로 너무 한국적인 문화에만 함몰해 한국문화의 다양성을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에서도 한국적인 것의 정체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간 적이 있었다.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2002)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을 때다. 임권택 감독은 2년 전에는 <춘향전>(2000)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한국영화의 쾌거를 헤드라인에 내 건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칸에서의 수상이 예술성을 인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필묵화, 판소리 등 전통을 소재 삼는 임권택 감독 영화의 특성을 들며 세계 속에 한국을 어필하는 문화를 꼭 옛것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축제 분위기에 초를 치는 이야기 하지 말라며 불만을 드러낸 이들도 있었지만, 꽤 유의미한 논란이었다. <취화선>의 수상 전까지 칸영화제로 대표되는 서구의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그 자체였다. 그런 인식과는 다르게 당시의 한국영화계는 할리우드와 일본 문화의 세례를 받은 젊은 감독들이 충무로의 전면에 나서며 한국식 장르물이 꽃을 피어나가던 때였다. 그 대표주자가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이었다.
이들 감독의 각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이상 2003)은 스릴러를 기반으로 한 장르영화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올드보이>는 이유도 모른 채 사설 감옥에 15년 동안 감금당했던 오대수(최민식)와 이 계획을 주도했던 이우진(유지태) 간의 추격전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기에 박찬욱 감독 특유의 금기를 깨는 미학이 가미되니, <올드보이>는 한국식 장르로 주목 받으며 전 세계 영화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었다.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마를 쫓는 형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살인이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하는 범죄물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장르다. <살인의 추억>은 이를 한국의 농촌 마을로 배경을 옮겨 손발이 맞지 않는 전 근대적인 공권력을 비판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범인이 잡히지 않는 사상 초유의 결말로 장르의 새로운 진화를 이끌었다.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 등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소개되고 큰 상(2003년 <올드보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한국영화를 두고 기존의 장르를 새롭게 해석하고 확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 되었다.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등 미국과 일본과 홍콩의 장르물을 한국의 토양 위에 이식한 작품들이 대중과 평단의 고른 만족도를 얻어내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은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 평가받던 때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어느 시기의 작품이 더 좋고 나쁨을 떠나 이는 한국영화사(史)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임권택 감독이 영화계에 처음 발을 디뎠던 1950년대는 지금처럼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각종 대중문화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때였다. 영화에 대한 장래희망 따위(?) 없었던 임권택 감독은 먹고 사는 방편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네 삶과 문화를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으로 필모그래프를 쌓아왔다. 그와 다르게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같은 감독들은 청년 시절부터 아메리칸 뉴 시네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도발적인 장르물들, 프랑스의 뉴웨이브 작품, 홍콩의 무협 액션 영화 등 해외 걸작들을 수시로 접하고 체화하면서 한국영화의 질적 발전을 주도했다.
그중 한 명의 감독이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을 연출한 박흥식 감독이다. 박흥식 감독은 <협녀>를 연출한 배경에 대해 “중국소설 <사조영웅전>을 읽고 소설에 등장하는 여검객에게 매료되어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안 그래도 <협녀>의 제목 역시 이안 감독이 <와호장룡>(2000)을 연출할 당시 참조한 것으로 알려진 호금전의 <협녀>(1971)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조선 시대와 달리 사료가 많지 않은 고려를 배경으로 검객들이 강호를 훨훨 날아다니는 그야말로 허구의 장면을 연출한 이유 말이다. 한국영화가 무협을 본격적으로 다룬 경우는 흔치 않다. 신현준, 김희선이 주연을 맡았던 <비천무>(2000) 이후 <협녀>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협녀>는 90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며 참패했다.
흥행 결과는 차치하고 <협녀>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국적인 것의 정체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어서다. 박흥식 감독이 연출의 변에서 밝힌 바대로 <협녀>의 뿌리는 중국의 무협에서 출발한다. 박흥식 감독은 이를 가져와 여기에 출생의 비밀과 연루된 한국식 가족 비극 서사를 접붙임하며 한국형 무협을 시도했다.
중화권의 무협물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어정쩡한 만듦새로, 한국 배경의, 한국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다소 황당한 서사로 <협녀>는 십자포화에 가까운 혹평을 들어야 했다. 시행착오라고 해도 될까. 박흥식 감독 외에도 호금전, 장철 감독 등이 활약한 홍콩 쇼브라더스의 무협영화에 애정을 가진 감독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 한국형 무협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혹자는 중국 무협이라는 이유로 <협녀>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비판이지만, 경직된 사고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국영화는 언제부턴가 타국의 장르를 가져와 한국식의 변형을 가해 발전을 도모해왔다. 그것이 한국의 오리지널리티다.
아레나의 지난 6월호에서 ‘세계의 집, 영화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했던 이상용 영화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스타일이 나와요. 감독이 어디에 거주하는 사람인가가 사실은 그 영화에서 드러나야 하는 거고요”
이것이 바로 감독(과 작가)의 목소리이면서 정체성일 것이다. 한국문화, 즉 한국적인 것의 정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속한 문화권은 한국으로만 한정해 설명할 수 없다. 중국과 일본과 미국의 영향력 속에 한국문화는 형성되어 왔고 여전히 그 자장 안에서 일종의 합종연횡을 통해 한국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문화는 흥미롭다. 단순히 향유하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정치, 경제, 사회를 모두 아우르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ARENA HOMME
201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