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족주의가 지키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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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극장가에는 어김없이 재난영화가 찾아왔다. 할리우드의 영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재난을 묘사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말이다.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2009)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이제 재난영화는 여름과 겨울 대목 시즌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김지훈 감독의 <7광구>(2011)가,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와 김지훈 감독의 <타워>(이상 2012)가 뒤를 이었으며 그리고 올해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와 <감기>가 개봉했다.

이중 <더 테러 라이브>를 제외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재난영화의 공식은 속된말로 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해운대>의 쓰나미, <7광구>의 괴물, <연가시>의 치사율 100%의 연가시, <타워>의 대형 화재, <감기>의 감기 바이러스로 촉발된 재난을 통해 아비규환의 현장을 묘사하는 것. 재난의 묘사뿐만이 아니다. 재난을 극복한 후 극 중 인물을 통해 이 영화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한결같다.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구성원들이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며 진정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이를 일러 ‘가족주의’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가족주의를 영화적으로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은 다름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이다. 스필버그는 외계인 영화(<E.T.>(1982)), 모험물(<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 괴수물(<쥬라기 공원>(1993)), SF(<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추격물(<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어왔지만 이들 영화 속 사건은 기본적으로 재난의 성격이 강했다. 예컨대, <우주전쟁>(2005)의 경우, 미국을 침공한 괴생물체의 습격이라는 설정에서 보면 괴수물이나 SF로 분류될 수 있지만 9.11에 대한 은유라는 점에서 재난영화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스필버그 영화 속 재난들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무너진 중산층 가족을 봉합하고 다시금 결합하기 위해서다.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족 관계에 있어 절름발이다. <E.T.>처럼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등장하거나 <우주전쟁>처럼 아내의 자리가 부재중이고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처럼 부자(父子)는 관계가 좋지 못해 오랜 시간 내외하며 지내던 사이다. 왼손은 거들듯이,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재난은 탈골한 가족 구성원들을 다시금 맞춤하기 위해 거들 뿐인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가족주의는 당연히 보수적이다. 가족이 바로 서야지만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재난이라는 스펙터클에 정신을 잃은 관객들에게 은연중에 전달된다. 여기에는 뭔가 전략적인 구석이 감지된다. 이는 영화를 통한 가족주의 메시지가 왜 미국에서 힘을 얻는지 살펴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가 있다. 미국은 국가의 탄생 이래 늘 (그들의 입장에서) 외부세력, 안으로는 인디언이라든지 밖으로는 냉전시대의 구(舊)소련이나 지금의 북한처럼 대치를 통해 국가적 이익을 극대화해온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내부의 힘을 결속하기 위해 할리우드를 활용해온 사실 또한 유명하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가족주의는 국가적인 단합이 필요로 할 때 가장 큰 힘을 얻는다.

미국에 비할 바야 아니지만 한국 역시도 그 어느 때와 다르게 국가적 단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물론 그것이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국가적 단합 따위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뭐,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전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다만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전(前) 정권부터 그것이 비록 구호에 그치는 수준일지언정 국가 화합의 기치를 내건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에 있다. 이념과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또한 북한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하나 됨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매 시즌 재난에 목을 매고 그런 영화를 향해 관객들이 꾸준히 몰리는 현상은 이와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터다.

그런데 같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과 전 정권에 만들어진 재난영화 사이에는 재난 발생과 관련한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해운대> <7광구> <연가시> <타워>, 즉 전 정권에 만들어진 재난영화의 재난이 내부 발생이라면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올해 만들어진 <감기>의 재난 발생은 외부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 정권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 요인은 상대적으로 내부적인 것이 많았다. 그에 반해 현 정권의 갈등 발생은 내부적인 것에 더해 전 정권에서 불씨를 키워왔던 일본과 북한과의 대립이 이번 정권 들어 각각 우경화와 핵문제로 더욱 꼬여가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외부의 재난이 내부로 유입되는 <감기>에 대해서 박근혜 시대의 영화라고 칭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감기>에서 초당 감염 속도가 3.4명일 정도로 치사율이 높은 감기 바이러스의 진원지는 홍콩이다. 더 정확히는, 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려던 홍콩인들이 컨테이너에 갇혀 있는 동안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걸려 대부분 사망에 이른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극적으로 살아남아 탈출에 성공, 한국 땅을 밟으면서 한국인과 접촉하게 되고 그러면서 감기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이에 대해 <감기>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극 중 감기 바이러스 발생의 원인을 두고 2003년 홍콩을 강타했던 사스를 떠올려 설정에 반영했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것이 홍콩의 국가적인 이미지를 실추하거나 홍콩인을 비하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현실 반영의 차원에서 사스 발생 당시 주변국에 남긴 인상이 대단했기에 현실 반영의 차원에서 선택된 극 중 설정일 것이다. 중요한 건 홍콩이라는 국가나 이미지가 아니라 홍콩으로 대변되는 외부로부터 한국을 위협하는 공격이 감행된다는 점이다. 그만큼 우리 내부에 지키고자 하는 재산과 이어가고자 하는 신념 등 여러 유무형의 가치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공교롭게도 <감기>가 주요한 배경으로 삼는 곳은 분당이다.  

분당은 대표적인 신도시일 뿐 아니라 서울의 강남에서도 가까워 잘 사는 이미지가 지배적인 곳이다. 그런 동네답게 지지하는 당이나 정치적인 신념 역시도 보수적인 쪽에 더 기운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그 어느 도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많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공격이 감지될 시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제반 조건이 갖춰진 공간인 셈이다. 바로 그 분당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홍콩인 한 명이 들어오면서 분당 주민들 대다수가 삽시간에 감기에 걸려 죽음 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 피해가 서울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급기야 도시 자체가 폐쇄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재난을 이겨내는 건 당연히 가족주의다. <감기>의 주인공인 지구(장혁)와 인해(수애)는 처음엔 가족이 아니었다. 아니 딸과 함께 단 둘이 살고 있는 인해 쪽만 보면 남편과 아빠의 자리가 부재한 결손가정이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지구는 동분서주하지만 인해 쪽에서 별 관심이 없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재난이 발생하자 상황은 역전된다. 앞서 언급한 재난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식 하나를 생각해보자. 재난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가족이다. 인해가 지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분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법이 생겨난다.

이렇듯 재난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결말은 대개 가족 화합과 같은 보수적인 내용 쪽으로 귀결이 된다. (그런 점에서 국회를 파괴하는 <더 테러 라이브>는 굉장히 독특한 재난영화에 속한다.) <감기> 전까지 등장했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재난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끝을 맺었다. <감기>는 좀 다르다. 지구와 인해가 맺어지지만 그 맺음 자체가 결국 자신이 사는 도시를 구하고 나라를 위험에서 지킨 관계로까지 확장된다. 그런데 이들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건 분당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이었다. 재난영화를 가장 잘 활용하는 미국이야 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큰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아니던가.

재난영화가 유행처럼 등장한 건 한국 역시 어느 정도의 기득권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비약이 아니다. 경제 선진국으로 불리는 한국은 이미 G20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국가적인 힘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그 국가적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가족이다. 재난이 닥쳤을 때 가족은 국가를 지켜내는 중요한 힘이 된다. 재난영화는 그와 같은 메시지를 가장 극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무대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을 옹호하는 재난영화가 유행처럼 번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보수적인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 이유로 재난영화를 살피는 건 곧 우리 사회의 성격을 살피는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이 등장할까. 그때 우리는 또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ARENA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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