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몰개성의 어둠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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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전문지 기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은 목소리로 푸념을 해댄다. 도통 기사화할만한 한국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여전히 극장가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신작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나. 문제의 핵은 질이다. 지난여름 <해운대>와 <국가대표>가 각각 1천1백만, 8백4십만 관객을 기록한 이후로 한국영화는 급격히 개성이 사라졌다. 근래 불어 닥친 경제 한파와 맞물려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모험적인 기획보다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기준 삼아 관객의 평균적인 감성과 취향에 호소하는 몰개성의 영화가 많아진 것.

이는 오스카 시즌을 전후해 다양한 장르와 개성의 영화를 대방출한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첨단의 기술력과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이야기로 전 세계를 호령한 블록버스터 <아바타>의 한편에서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는 <허트 로커>가, 고독한 현대인의 삶을 따뜻하게 성찰한 <인 디 에어>가, 신에 대한 강박적 믿음을 차가운 유머로 승화한 <시리어스 맨> 등의 작가주의 영화가 포진한 할리우드와 달리 코믹물(<반가운 살인자><육혈포 강도단>)과 어설픈 할리우드 모방 영화(<베스트셀러><무법자>) 일색인 한국 극장가는 도무지 선택의 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형국이다.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영화를 산업으로 인식하되 할리우드가 문화적인 안목으로 감독의 예술성을 존중한다면 한국영화계는 단순히 돈의 논리에만 입각해 감독을 기능인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바람난 가족> <올드보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대중성과 예술성을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 대거 쏟아졌던 것이 2003년. 불과 7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극장가에는 감독의 이름만 지우면 과연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무색무취한 영화들로 넘쳐난다. 

한국처럼 시장의 파이가 작은 국가에서 산업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은 서로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하여 영화 산업 안에서 잡지의 존재는 정보의 전달과 비평의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산업의 건강도를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영화기자들의 기삿거리 부족의 한탄은 영화잡지의 시련을 넘어 영화산업의 고전을 의미한다. 도대체가 오늘의 한국영화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그들의 불만은 새로운 감수성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감독들의 출현을 바라는 간절한 호소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영화계에는 관객의 취향에 영합하는 영화 대신 관객의 감성을 선도할 영화가 필요한 것이다.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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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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