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MB에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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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탓인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정치와 관련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중에는 충무로도 포함되어 있다. 이전 대선과 달리 충무로의 영화를 통한 목소리 높이기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나 정치영화라고 부를법한 작품들이 지금 이 시기를 전후해 집중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영화 붐

포문을 연 건 김재환 감독의 <MB의 추억>과 김형렬 감독의 <맥코리아>다. MB정부의 지난 5년간을 돌아보며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선택한 우리의 과오를 이참에 정산해보자는 이 다큐멘터리들은 공교롭게도 10월 18일 같은 날 개봉했다. <MB의 추억>은 2007년 대선 당시 MB가 유권자를 상대로 공약한 내용과 2012년 지금 그 공약이 얼마나 실천됐는지를 따져 묻는다. 그럼으로써 당시 MB에게 투영된 우리의 욕망이 결국에는 대통령 일가와 그 주변만 배를 불린 결과가 되었다고 일침을 놓는다. 

<맥코리아>는 <MB의 추억>이 제기한 MB가 배를 불린 구체적인 과정, 즉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 이지형이 대표이사로 근무했던 ‘맥쿼리’가 각종 특혜를 통해 대한민국 민자 사업에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과정을 파헤치고 고발한다. 그에 앞서 ’10월 유신’이 꼭 40년이 되는 10월 9일에는 박정희 정권의 실태를 드러내 비판하고 그에 맞선 재야인사들의 투쟁을 회고한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제작 발표회가 열리기도 했다.

올해 부산영화제 최고 화제작이었던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11/22 개봉 예정)는 1985년 9월 민주화 운동을 하던 고(故)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남영동의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가 20여 일 동안 당한 고문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정지영 감독은 이미 올해 초 <부러진 화살>로 집단이익을 위해 공정성을 내던진 검찰을 비판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그로 인해 <남영동 1985>가 다시 한 번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리고 <26년>. 강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26년>은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복수극을 다룬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26년>은 이해영 감독이 연출하고 류승범, 김아중 등이 출연하는 <29년>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쯤 극장 개봉이 이뤄져야 했던 영화다. 석연찮은 이유로 제작이 돌연 중단됐던 <29년>이 3년 만에 다시 프로젝트가 가동되어 조근현 감독, 진구, 한혜진, 임슬옹 등이 출연하는 <26년>으로 개봉(11/29 예정)을 확정한 것이다.

정치영화의 등장 이유

이외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어머니 고(故)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도 애초 대선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영화라는 점에서 최근 불어 닥친 정치영화 붐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개봉 일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어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하여 개봉을 하였거나 확정지은 작금의 정치영화들을 종합해 볼 때, 이들 작품들은 하나 같이 MB정권에 부정적이거나 현 정권의 뿌리가 된 정당과 정당인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견지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은 부산영화제의 공식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의견을 피력했다. “정치의 계절을 두고 개봉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꼭 미쳤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남영동 1985>는 27년 전의 사건을 다루지만 적이 패(?)가 갈리는 선거의 속성상 특정세력, 그러니까 인권 유린을 자행한 정권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세력에 반대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퍼스트 레이디-그녀에게>를 제외하면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모두 대선을 앞두고 가장 민감한 시기에 개봉 일을 확정, 말 그대로 대선 특수를 겨냥한다. 예컨대, <MB의 추억>은 일찍이 5월에 열렸던 전주영화제에서 첫 공개가 이뤄졌지만 개봉은 그보다 훨씬 뒤인 10월 18일로 확정했다. 관객들의 호응도 좋아 4개관에서 시작했던 영화가 11개 상영관(11월 1일 기준)으로 늘어나면서 개봉 후 15일 만에 누적관객 7,000명을 기록, 뜻 깊은 관객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온전히 대선의 영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26년>을 제외하면 소위 정치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모두 독립영화 진영에서 나왔다. 여름과 겨울 시장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뻔한 장르영화 사이에서 개봉 일을 잡지 못하다보니 선거철과 맞물렸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올해만큼 작은 영화들이 개봉관을 확보하기 힘든 경우가 없었다. 사실 <MB의 추억>만 해도 주말 관객점유율 50%를 육박하는 수치를 감안했을 때, 11개 개봉관은 턱도 없이 부족한 수치인 것이다.

정치영화에 대한 욕구 폭발

바꿔 말해, 정치영화의 등장 배경은 그동안 억눌렸던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다양한 영화에 대한 욕구가 폭발했다는 분석과 맥을 함께 한다. 딴지일보 김용석 편집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우리 사회의 억압기제가 만든 반작용의 결과다. “이번 정권 들어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다보니 문화적인 수단, 특히 영화를 통해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었다. 정치영화의 부상도 이 때문인데, 특징은 피해자 정서로 문제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이 관객의 공감대를 얻는다면 그만큼 이번 정권 하에서 억울한 사연이 많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의도보다 정치적 피해에 따른 결과가 정치영화로 분출되고 있다는 김용석 편집장의 의미 접근은 많은 영화인들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이번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영화계에 가한 일련의 개혁(?) 행위들, 예를 들어, 서울아트시네마, 미디액트, 인디스페이스에 대한 공모제 전환,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하여 인권과 노동 관련 영화제 지원금 중단 등은 (그들이 규정한) 좌파영화인 몰아내기와 좌파영화 척결에 맞춰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살풍경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 제작 역시 자기검열을 통해 웬만해서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만한 선에서 이뤄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작금의 정치영화 현상에는 약화된 MB정권의 집권 말기 누수현상과 때를 맞춰 그동안 제약받았던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려보겠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췄던 간첩 소재 영화들이 등장하거나 기획되고 있는 건 그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머리에 뿔나고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그런 간첩이 아니다. 추석에 개봉했던 <간첩>의 22년차 남파간첩은 전세금 인상에 시달리고, 한창 촬영 중에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동창생>은 각각 김수현과 최송현(빅뱅의 TOP)이라는 ‘꽃미남’ 계열의 배우를 남파간첩으로 캐스팅, 남한의 여심을 흔들 예정이니 북한 사람도 인간이라는 시각을 확실히 한다.

너무나 당연한 시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MB정권이 한창 때였다면 이들 작품들은 ‘빨갱이 영화’라고 공격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자기 검열이 당연시될 만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들던 시절을 통과했다. 그것이 어디 영화뿐일까. 미네르바, 쥐 그림 포스터 등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문화에 재갈을 물리는 사례들을 수없이 목격하고 경험해왔다. 다만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것이 딱히 이번의 사례만은 아닌데 유독 MB정권 하에서, 그것도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게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직성

심리학자 장근영이 바라보는 현상은 이렇다. “이념을 가지고 문화계를 재단한 적이 없었다. 도덕적인 문제로 재갈을 물렸을지언정 좌파라는 이유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지만 이념 자체만 가지고 몰아붙인 건 이번 정권이 처음이다. 그 과정에서 이념과 무관한 이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등장했고 결국에는 멀쩡한 예술인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그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이다가 MB정권의 레임덕과 함께 정치영화라는 결과물로 영화계의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영화사(史)에서 정치영화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집중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과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가,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과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맞붙었을 때도 영화계는 대선과 관련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작품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정치가와 언론인 등 소위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사상을 제어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도 예술인들의 반발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그 전까지 영화와 정치 관련, 가장 큰 사건이었다면 단연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4)을 들 수 있다. 박정희 전(前)대통령을 소재로 했던 이 영화는 아들 박지만이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을 걸 정도로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왔다. 곧 문제가 된 장면의 삭제를 통해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숱한 갑론을박이 오고갈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지금처럼 그렇게 위축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26년>만 해도 개봉일이 확정되기는 했지만 3년 전 돌연 제작이 무산된 배경에 대해서는 속 시원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만큼 이번 정권 들어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경직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정치영화 제작은 상업영화보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비교적 활발히 이뤄지는 추세다. 아무래도 상업영화에 비해 소재의 폭이 넓고 무엇보다 자본과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에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문제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상영관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 오히려 전문가들은 정치영화가 힘을 받고 있는 이 시기를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영화에 요구되는 것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이에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비판하는 영화들의 등장은 무척이나 반갑고 고무적이다.”라고 전제한 뒤 “다만 형식적으로도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만 머물고 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의 말에 첨언하자면, 이들 영화들이 일종의 피해자 정서를 통해 감정적으로 접근, 관객의 공감대를 얻는 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좀 더 냉철한 시선에서 이번 정권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데에는 다소 힘에 부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지금의 정치영화 현상을 두고 자칫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염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심리학자 장근영은 “MB에 대한 비판만 있으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먹힐 수 있다는 안일한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의도만 너무 앞세우거나 부풀리다보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영화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인 A씨는 “정치나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만듦새와 무관하게 대선이라는 타이밍 때문에 후한 점수를 받고 흥행이 될 거라는 태도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런 점에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얘기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단지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쟁점을 갖고 있는 영화가 정치영화라 생각한다. 소재적인 정치영화라도 아무런 정치적 쟁점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가 많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룰 때,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제시하는 형식들로, 이 형식들이 정치적 쟁점을 갖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정치영화라 하긴 어렵다. 장 뤽 고다르가 했던 오래된 말이지만 정치영화란 결국 정치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정치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이 보호받지 못하고 독립하지 못함에 따라 정치에 맞서야 하는 상황은 정치영화라는 형태로 나타나 지금 하나의 사회적 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렇듯 MB정권의 레임덕 속에서 반사효과처럼 표현과 소재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영화는 대선 전까지 그 덕을 톡톡히 누릴 전망이다. 다만 전례 없던 정치영화 붐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 않고 특정 시기와 무관하게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상영관에서부터 영화의 정치적 전략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말해지고 파헤쳐져야 할 역사와 정치가 수두룩하다. 정치영화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것이다.

movieweek
NO.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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