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의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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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 전체가, 아니 일부 세력을 제외하면 무력감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같은 무력감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번 세월호 참사처럼 큰 사고가 터질 때면 무고한 희생에 가슴 아파하며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눈물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공주>는 그런 한국 사회의 만성적인 무력감에 대한 영화다. 더 정확히는 허탈하고 맥 빠진 한국적 시선의 거리감을 다룬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그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내 하고 ‘있는’ 한공주(천우희)를 바로 옆에서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빠라는 사람은 딸의 딱한 처지를 악용해 돈푼이나 만져볼 궁리나 하고 학교는 그녀의 사정이 외부로 알려질까 쉬쉬하기에 급급하며 절벽으로 내몰린 공주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은 방관으로 일관한다.

한국은 그런 사회다. 사회적 강자로 구성된 가해의 커넥션이 얼마나 경악스러운지 도움이 절실한 약자를 앞에 두고도 매번 책임 회피에, 제 밥그릇 챙기기로 일관할 따름이다. 그런 치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 기득권이란 사실에 느끼는 무력감은 고스란히 <한공주>의 시선에 반영되어 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공주에게 밀착하기보다는 거리를 둔 채 그녀 혼자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지켜본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결말, 견디다 못한 공주는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때 <한공주>의 카메라는 다리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바깥의 그녀를 비춘다. 지나가는 버스 안의 승객은 긴박한 상황을 목격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다행히(?) 수영을 익힌 공주는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금 삶에 대한 의지를 찾고 물 위로 떠올라 헤엄을 친다. 하지만 카메라는 역시나 다리 난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안간힘을 쓰는 공주를 내려다 볼 뿐. 그리고 그 장면 위로 응원의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지만 더 이상 그런 현실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면서도 고작 응원 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행동해야만 한다. 무력감의 거리를 좁히는 것. 이 땅의 모든 ‘공주’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더 이상 가해의 커넥션이 작동할 수 없도록 약자끼리 연대하고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맥스무비
(2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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