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가이조로 보는 한일 탐정영화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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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는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을 상영했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은 데뷔작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1986) 이후 줄곧 탐정영화 외길 인생을 걸어온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중 사립탐정 ‘하마 마이크’ 시리즈는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흥행한 작품으로 꼽힌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1993),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1994), <덫>(1995) 모두 3편으로 구성된 시리즈는 주인공의 이름만 보면 ‘하드보일드 소설의 제왕’ 미키 스필레인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극중 하마 마이크(나가세 마사토시)는 미키 스필레인 소설의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 ‘마이크 해머’와 극중 배경인 ‘요코하마’를 혼합한 이름이다.  
 
스필레인의 영향력은 단순히 마이크 해머의 이름을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야시 가이조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필립 말로우와 같은 탐정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필립 말로우는 일본식 발음이라든가 이름으로 바꾸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반면 하마 마이크는 실제 존재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왠지 있을 법한 느낌의 이름이기 때문에 차용을 했다.”는 것. 그래서 스필레인 원작의 마이크 해머가 폭력을 휘두르는데 거리낌이 없고 마초적인 것에 반해 하마 마이크는 여성적이고 섬세한데다가 굉장히 패셔너블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대개의 탐정소설이 나이 많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는 것에 반해 하야시 가이조는 하마 마이크를 탐정이 되기 직전 혹은 바로 직후의 나이대로 설정함으로써 이 시리즈를 성장물로 기능토록 한 까닭이다.

오히려 하마 마이크 시리즈의 계보는 스필레인의 해머가 아니라 스즈키 세이준의 <탐정 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1963)의 주인공 에이스 조(시시도 조)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에이스 조가 하마 마이크의 스승으로 삼부작에 모두 등장하는데 하야시 가이조는 “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시시도 조가 나오는 영화사 닛카츠의 무국적 액션 시리즈를 의식해서 만든 부분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시시도 조는 자국에서 하나의 장르라고 인식될 정도로 일본 액션물의 상징 같은 배우다. 그가 맡은 역할은 주로 멋진 악역에 쏠려 있었는데 시시도 조가 출연했던 작품 중에 거의 유일하게 탐정으로 나오는 영화가 바로 <탐정사무소 2-3 죽어라 악당들>이다. 하야시 가이조는 이 같은 설정을 살려서 그가 나이를 먹으면 하마 마이크의 스승이 되어있는 것으로 둘의 관계를 묘사했다고 전한다.

일본 탐정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여기에 탐정물로는 접하기 힘들었던 청춘물을 접목한 까닭인지 하마 마이크 시리즈는 이후 탐정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내 다른 감독들에 의해 TV 시리즈가 제작됐으며, 아오야마 신지(<유레카><새드 배케이션>)의 경우, 하마 마이크를 너무나 좋아해서 외전격인 <이름 없는 숲>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다. <철남><동경의 주먹><총알발레> 등의 감독으로 유명한 츠카모토 신야는 <내 인생 최악의 시간>과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에 연이어 출연하며 영화의 꿈을 키운 경우다. 실제로 신야는 고등학교 때 하야시 가이조가 만든 프로모션 비디오를 보고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결심을 했단다. 이에 대해 하야시 가이조는 “하마 마이크 시리즈를 만들 때만 해도 감독의 재능보다는 배우의 재능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서 만들어진 탐정물은 츠카모토 신야가 마츠다 류헤이를 캐스팅해 만든 <악몽탐정>(2006)이 유일하다. 그 정도로 하야시 가이조와 츠카모토 신야는 개인적인 친분뿐 아니라 일본 탐정영화 계보에서도 일종의 부자(父子) 관계를 점한다.

사실 ‘하야시 가이조와 탐정영화전’이 열리기 전까지 한국에서 하야시 가이조의 작품은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와 <20세기 소년 독본>(1989)만이 영화제 등을 통해 간간히 소개된 것이 전부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1990년대 이후 씨네필을 중심으로 주로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온 비디오나 복제 비디오를 통해 왕성히 소비됐다.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종종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흔적이 눈에 띠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대민 감독은 <그림자 살인>(2009)의 서커스 장면을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의 분위기에서 차용했고 <기담>의 정범식 감독 또한 하야시 가이조의 작품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으로 하마 마이크 시리즈를 보며 떠올린 것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였다. 박찬욱의 영화에는 하마 마이크 시리즈의 인용이 눈에 띤다. (박찬욱의 영화는 복수의 대상 혹은 어떤 가치 등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점에서 탐정영화적 요소를 띠고 있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의 하마 마이크가 왼쪽 손바닥에 부상을 입어 영화 내내 깁스를 하고 나오는 설정은 <친절한 금자씨>(2005)의 새끼손가락을 깁스한 금자씨와 겹치고, <아득히 먼 시대의 계단을>의 악당 보스 하얀 남자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 등장하는 하얀맨의 원조인 듯 하며, <덫>의 말 못하는 동생과 공장에서 일하는 누이의 관계는 <복수는 나의 것>(2002)의 공장에서 일하는 남동생과 몸져누운 누이의 변주로 보인다. 이것이 우연인지, 의도적인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만큼 하야시 가이조가 한일 양국의 영화에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영화가 궁금한가? 조만간 극장에서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최근 영화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Tip! 100인의 탐정을 다룬 ‘탐정사무소5’ 시리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영화가 무엇이냐고? ‘탐정사무소5’ 시리즈는 일본에서 침체된 탐정영화의 붐을 일으키기 위해 하야시 가이조 감독이 기획한 시리즈다. 탐정사무소5에 근무하는 탐정 500부터 599까지 100명의 사연을 모두 100편에 걸쳐 소개하겠다며 야심차게 기획한 시리즈다. 지금까지 모두 극장판 3편과 인터넷 단편 51편이 제작됐다. 매 작품 주인공 탐정이 바뀌며 사건을 해결하는 동시에 우정과 사랑과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국내에 수입이 결정된 작품은 첫 번째 극장판 <카인과 아벨>(2007)과 세 번째 극장판인 <코드>(2009)다. <카인과 아벨>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코드>는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7)을 오마주함으로써 탐정영화에 대한 전통을 일본의 오늘에 맞게 되살렸다. 올 여름쯤 국내 극장가에서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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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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