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花よりもなほ)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죽음, 사후세계, 버려진 아이 등 많은 이들이 꺼려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왔다. 그런 그가 귀여운 코미디를 만들었다면 믿어지는가. 그것도 사무라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극을 말이다. <하나>는 복수를 주제로 한 사무라이영화다. 그런데 극중 사무라이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비장하기보다는 덜떨어져 보이고 대범하기보다는 하나같이 소심하기 그지없다.

때는 오랫동안 전국을 휩쓸던 칼바람이 잦아든 에도시대. 소자(오카다 준이치)만이 아버지의 죽음을 갚는다며 복수의 칼날을 갈기에 여념이 없다. 원수가 살고 있다는 허름한 마을에 정착하지만 정작 관심을 갖는 건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이요, 심지어는 이웃집 과부 오사에(미야자와 리에)에게 마음을 뺏긴다. 어느 날, 원수 카나자와(아사노 타다노부)를 찾아내지만 어쩐 일인지 복수가 망설여진다. 마을 사람들은 소자에게 그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마을행사인 연극이나 하자고 꼬드긴다.

<하나>는 사무라이영화지만 이 장르가 흔하게 다루는 화려한 칼싸움 대결이 없다. 그뿐인가, 팔다리가 싹둑 베어져 죽어나가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보니 복수를 다루지만 희한하게도 복수의 순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무라이의 명예에 초점을 맞춰 죽음을 미화하지 않고 장르의 기존 규칙을 비틀어 개인의 삶과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그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바둑을 두며 즐거워하고 사랑에 망설이며 질투하는 등의 그런 자질구레한 일상을 말이다. 소자가 카나자와를 앞에 두고 칼 대신 삶을 꺼내들어 죽음을 베고 일상의 소소함을 찬미하는 건 이 때문이다.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복수는 나의 것‘ 따윈 애당초 불가능한 행위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증오가 난무하는 작금의 시대에 <하나>는 더없이 특별해 보인다. “다시 필 것을 알기에 지는 벚꽃이 아름답다”는 극중 대사처럼, 복수에 복수로 응하지 않는 민초들의 대수롭지 않은 삶이야말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살벌하고 무거운 사무라이영화도 이처럼 관점만 바꾸면 살갑고 발랄한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그건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거창한 명분이 우선되는 혼란의 시대지만 눈높이를 낮춰 평범한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면 세상에는 곧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다. <하나>는 전작들에 비해 한없이 가벼워진 작품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더욱 현자(賢者)의 모습에 가까워졌다.






FILM2.0 331호
(2007. 4. 24)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