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The Propos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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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는 원치 않는 위장결혼을 통해 어찌저찌해서 사랑에 골인하는 커플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뉴욕의 모 출판사 편집장인 마가렛(산드라 블록)과 그가 노예처럼 부려먹는 부하직원 앤드류(라이언 레이놀즈)다. 캐나다 출신인 마가렛이 비자만료로 모국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앤드류에게 자신과의 결혼을 명령한 것. 승진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앤드류는 상사 마가렛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응한다. 다만 이민국 직원은 그런 이들을 의심하고, 결국 마가렛은 앤드류의 배경을 완정정복하기 위해 그의 고향 알래스카로 함께 떠난다.

산드라 블록은 <프로포즈>에서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매력을 펼쳐 보인다. 깐깐한 상사로 통하는 마가렛은 산드라 블록이 그간 필모그래프에서 쌓아올렸던 이미지의 극단에 위치한 캐릭터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스피드>(1995)에서부터 또래 여배우들처럼 새장 속에 갇혀 보호받는 역할에 안주하지 않았다. 시속 50마일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탄이 터지는 버스의 운전대를 사수해 테러범 체포에 일조했고 <미스 에이전트>(2000)에서는 FBI의 여자수사요원으로 등장했던 그녀다. 하여 <프로포즈>의 재미는 전통적인 남녀 역할을 뒤집은 설정에서 상당수 발생한다. 여자 상사 마가렛의 카리스마에 눌려 제대로 기 한 번 펴지 못하고 벌벌 떠는 남자직원들의 모습에는 전복의 쾌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프로포즈>가 불씨만 남은 산드라 블록의 배우인생을 활활 지펴준 작품으로 등극(?)한 데에는 단순히 남녀의 위상변화를 이용한 설정에만 있지 않다. 꽤 진화한 이야기로 흘러가던 영화는 마가렛이 앤드류의 고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급격히 신데렐라 스토리로 변모한다. 앤드류의 마음에 들어야만 결혼할 수 있고, 그래야만 추방당하지 않는 그녀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알몸도 불사한다. 덩실덩실 엉덩이춤을 추는 것도 모자라 그녀 연기 인생 최초로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아낌없이(?) 노출한 그녀의 몸매를 보고 있자면 저것이 과연 오십 줄을 바라보는 여자의 라인인가 찬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산드라 블록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가 반영하는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프로포즈>는 호기롭게 여자 상사, 남자 부하라는 구도를 가져왔지만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한다. 이를 로맨틱코미디의 한계라고 지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남자의 도움 없이 여자가 성공에 이르기 힘들다는 이 장르의 진리 아닌 진리는 높기만 하다. 오히려 <프로포즈>는 직업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소유한 여자라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질 수 있는 남자의 환상을 더욱 견고히 반영한 듯한 인상이 짙다. 우리의 산드라 블록이 이렇게 망가져가면서까지 열연을 펼친 끝에 전미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데에는 이렇게 남자의 도움이 컸다.(?)

로맨틱코미디는 재미에 비해 작품이 가볍다는 이유로 평가가 인색한 경우가 많다. 로맨틱코미디의 원조랄 수 있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이 신데렐라 스토리 공식을 정착한 이래 <노팅 힐>(1999)을 통해 전통적인 공식이 역전되는 등 이 장르가 실은 당대 남녀관계의 지정학을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박한 평가는 재고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런 관점에서 여자의 위상을 인정하는 척 실은 이에 대한 남자들의 은근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프로포즈>는 꽤 흥미로운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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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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