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평양 시민>(Crossing the Line)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1년 6월, 중국에 머물고 있던 대니얼 고든은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천리마 축구단>(2002) 촬영을 위해 북한에 입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고려여행사 대표이자 공동 프로듀서인 니콜라스 보너였다. 메일을 통해 그는 미국인 네 명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미국과 철천지원수 지간인 북한에 미국 사람이 살고 있다고, 정말?

호기심이 발동한 고든은 그 다음 문장을 읽는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북한에 사는 미국인들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한창이던 시기 남한에 파견된 군인들로, 직접 북한으로 넘어가 40년이 넘도록 그곳에서 살고 있는 미국 망명자였던 것이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던 고든은 그들이 누구인지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든은 <천리마 축구단>을 촬영하는 동안 ‘조선영화 수출입 공사’ 관계자를 통해 망명 미국인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다. <천리마 축구단>에 호의를 가지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은 처음에는 조심스러워 했지만 곧 문제의 미국인들이 누구인지 고든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했다. 네 명 중 두 명은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 두 명이 평양에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의 이름은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과 ‘찰스 로버트 젠킨스’였다.


기대하지 못했던 이야기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하 <평양 시민>)에는 드레스녹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하지만 고든은 이 영화를 드레스녹 개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연출하지 않았다. 드레스녹이 전면에 등장하지만 범위를 넓혀 1962년부터 1965년까지 3년 사이에 월북한 네 미국인의 정체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미국 정부를 경악케 한 사건은 1962년 8월에 일어났다. 드레스녹이 순찰을 돌던 중 월북을 시도한 것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유년 시절, 군생활 중 파탄 난 결혼생활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 망명을 선택한 것이다. 북한에는 ‘래리 알렌 앱셔’라는 미국인이 드레스녹과 비슷한 사연을 안고 이미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다. 드레스녹과 앱셔는 처벌을 받는 대신 선전용으로 이용됐고 이들의 선전에 혹한 ‘제리 웨인 패리쉬’와 ‘젠킨스’ 두 미국인이 북한으로 넘어왔다. 미국 정부는 당황했지만 개인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고 사건을 은폐했다. 네 미국인의 존재는 부정됐다. 그러는 동안 푸른 눈의 네 병사는 적국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간다.

<평양 시민>에는 이런 소재의 영화에 기대할 법한 정치적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입장을 배제한 채 북한으로 가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북한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처럼, <평양 시민>은 이들이 누구인지, 왜 북한으로 망명을 했는지, 그곳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밝힐 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비범한 사건을 겪었지만 거기서 역사적인 맥락을 걷어내면 이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고든 감독은 <천리마 축구단>과 <어떤 나라>를 통해 북한, 그것도 평양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했다. <평양 시민>에서는 월북한 미군병사라는 민감한 소재로 범위를 넓혔지만 감독의 목적은 정치적 선전효과가 아닌 평범한 이들의 사연에 있다. 드레스녹이 주인공이지만 네 병사 모두의 이야기로 영화를 구성한 건 이 때문이다. 그래서 <평양 시민>은 우리가 상상하는 혹은 기대하는 북한의 모습을 철저히 배반한다.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하다는 이분법에 기초한 정치적인 시선은 배제하고 철저히 다큐멘터리적 중립성을 유지한다.

양쪽의 시선을 모두 보여주는 <평양 시민>은 관객들로 하여금 상반된 의견이 도출될 수 있게 만든다. 즉, “어떤 입장에 놓이느냐에 따라 진실은 판이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감독의 입장은 이 영화가 지닌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이다. <평양 시민>은 부정국가의 이미지로만 덧씌워진 북한에도 인간적인 면모가 존재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카메라 한 대로 증명해 보인다.


자족의 행복을 말하다

대니얼 고든 감독의 중립적인 시선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천리마 축구단>으로 시작해 <어떤 나라>를 거쳐 <평양 시민>에 이르기까지 ‘편견 없음’은 ‘북한 삼부작’을 일관되게 관통한 태도였다. ‘천리마 축구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을 때부터 비교적 쉽게 북한의 취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비방하는 영화가 아닌 중립적인 시각에서 북한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2002년 평양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천리마 축구단>은 매진을 기록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고, 국영방송을 통해 열 번 이상 방영되는 등 소위 ‘대박’을 기록했을 정도다.

<천리마 축구단> 촬영 중 우연히 접한 매스게임에 매료돼 기획된 <어떤 나라>는, 북한에겐 일종의 도박이었다. 다름 아닌 평양 사람들의 일상이 주요 소재로 차용됐기 때문. <천리마 축구단>의 경우, 1966년 영국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주인공이었던 까닭에 기록화면이 영화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실생활이 공개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학생 소녀가 주인공인 <어떤 나라>는 그들의 집과 가족이 영화 내용으로 포함됐기 때문에 북한의 ‘속살’이 만천하에 드러나야 했다. 발전 시설이 부족해 정전이 잦고 밤이면 어둠에 잠기기 일쑤였던 평양의 일상은 <어떤 나라>를 통해 가감 없이 외부에 공개된 것이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위험부담을 안고 내린 선택이었지만 불순한 의도가 없는 이들의 촬영을 거절할 이유가 그들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니얼 고든은 <어떤 나라>에 대해 “북한의 실생활이 공개된 사실보다 주체사상에 대한 본질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의 산물인 북한의 집단 매스게임을 두고 ‘집단의 필요가 개인의 욕구에 우선한다’는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사례로 언급한 것. 이를 통해 북한의 폐쇄성이 개인의 ‘무조건적인’ 자유 박탈이 아닌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부분적’ 자유 박탈에서 기인하는 결과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같은 연출의도에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개척한다는 주체사상의 본래적 의미가 담겨 있음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니얼 고든이 북한 삼부작을 통해 보여주는 중립적 시각은 어떤 견해도 삽입하지 않는 기계적인 의미에서의 중립성이 아니다. 그 전에 체제보다 개인을, 복종보다 개척을, 운명보다 삶을 우선하는 전제로 한다. 그래서 1966년 월드컵의 업적을, 매스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두 소녀의 성과를 북한이 아닌 이들 개인의 공으로 돌린다(<어떤 나라>는 현순과 송연의 공연을 보여주며 ‘김정일은 끝내 어떤 공연에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자막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평양 시민>에서 더욱 강조된다. 여기서 감독이 네 병사에게 갖는 가장 흥미로운 의문은, 오늘날도 북한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적의가 더욱 강력했던 당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 답은 네 병사 중 유일하게 현재도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드레스녹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영화는 그가 북한의 체제에 대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은 자신이 꾸려나가야 한다는 주체사상을 마음에 들어 하는 그의 모습을 확실하게 포착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건 자기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라는 그의 대사는 영화를 통해 고든이 말하고 싶었던 바를 짐작케 한다. <평양 시민>에는 정치적인 견해는 없지만 감독의 견해는 존재한다. 한 마디로, 사람들은 모두 환경에 맞게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 이는 견해라기보다는 진리에 가깝다.


관객에게 판단을 넘기다


만약 고든 감독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요량이었다면 체제나 삶의 우열을 판가름할 수 있는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관계를 더욱 파고들었을 것이다. 촬영 전 <평양 시민>은 두 사람을 중심에 놓고 진행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젠킨스의 부인이 일본에 넘어간 뒤 돌아오지 않았고(그녀는 납북된 일본 여성이다!) 이 문제가 북한과 일본, 미국의 정치문제로 비화돼 촬영을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젠킨스의 이야기 추이를 지켜보며 바로바로 영화에 삽입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감독은 촬영을 진행하는 쪽을 선택했다. <평양 시민>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었기에 당시 벌어지고 있던 사태의 결과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한 달 후 이는 감독의 입장에서 올바른 선택임이 밝혀지는데 젠킨스는 부인을 따라 일본의 미군에 투항했고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상반된 진술로 드레스녹과 진실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양 시민>은 “북한에서 문제없이 살고 있다”는 드레스녹과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는 젠킨스 두 사람의 진술을 공정하게 들려줄지언정 그 결과에 대해서만큼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이와 관련해 진실을 캐볼 수 있는 주변인물과 관련 자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체제의 본질에 깊게 다가서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한 고든의 반응은 단호하다. “객관적인 입장을 취한 감독으로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이 내용을 보고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감독은 사실을 밝히는 데 있어 관객의 판단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만한 편향된 시각에는 가차 없이 편집을 가하기도 했다. 가령, 고든은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남한 근무 당시의 상관을 만나 이들에 대한 평가를 들었지만 영화에는 삽입하지 않았다. 상관 개인의 견해일 뿐 사실의 차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양 시민>은 북한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이,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감독의 입장이 북한 삼부작 중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말하려는 바에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다. “다큐멘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걸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없는 일을 꾸미지도, 사실을 왜곡하지도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평양 시민>은 북한도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물론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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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49호
(2007.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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