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나게 항의하기 위해 필요한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난 93학번이다. 지금 12학번 대학생과 비교하면 아버지(?)뻘 세대이지만 대학교 1,2학년 때만 하더라도 나름 신세대로 통했다. 소위 ‘X세대’라 불리며 신세대 문화를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세대였다. 집단보다 개인의, 이념보다 패션의, 정치보다 문화의 가치를 신봉하는 세대의 출현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예시하는 징후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학생운동 문화의 쇠퇴였다.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다고, 4.19 혁명을 기념한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기린다고 매달 굵직한 시위가 벌어졌지만 참여하는 이들의 면모는 매번 대동소이했다. 저학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학년과 복학생 일색이었다. 새내기들이 등록금 인상의 부당함을, 역사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이유가 있었다. 옷차림과 같은 개인의 취향은 깡그리 무시된 채 (여기가 패션쇼 무대야, 이런 해외 브랜드 옷을 입고 나오는 놈이 어디 있어!) 살벌한 구호를 외치고 운동가요를 부르는 그 방식의 촌스러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운동이 그랬다는 건 아니다. 특정한 예일 뿐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와 비교하면 적어도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만큼은 놀이로써의 항의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 보인다. 실제로 MB정권 초 미국 산 소고기 반대 대규모 집회나 등록금 반값 시위 때 이들이 보여준 항의는 기존의 경직된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전경이 쏘아대는 물 대포에 머리감기로 응수하고 곤봉을 폭력 삼는 진압에 춤과 노래로 방패삼을 줄 아는 그들에겐 과거 학생운동 세대의 촌스러움을 벗어난 폼 나는 세련됨이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현실참여도 일종의 놀이다. 그런데 그게 꼭 모든 젊은 세대에게 해당하는 사안은 아닌 듯하다. 이번 2012 런던 올림픽의 축구 대표 팀, 특히 일본과의 3, 4위전에 나왔던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독도는 우리 땅’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굳이 그걸 만천하에 과시하겠다고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과 전 세계 불특정 다수의 TV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시위의 방식은 한마디로 퇴행적이었다. 나의 대학시절 선배들의 학생운동이 오버랩 된 이유였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박종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탓하려는 게 아니다. 국가 간의 정치적인 목적이 담긴 첨예한 논란에 뛰어들어 일개 운동선수가 해를 볼 게 뭐냐는 거다. 바닥까지 떨어진 인기 만회를 위해 방문했다는 이유 말고는 맥락을 찾을 수 없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행은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이었다. 일본의 노다 정권의 경우, 허약한 지지 기반의 돌파구를 위해 독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순한 애국심의 발로에서 독도 세리머니를 펼친 박종우는 억울한 피해자이자 희생양인 셈이다.

사실 군인 정도를 제외하면 대표 팀의 운동선수들만큼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집단은 없다. (정치인? 농담하나, 이들만큼 국가와 국민을 빌미로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어디 있다고.) 이들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기량 외의 정신력을 가다듬는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이 초대형 규모의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하거나 그 이상을 넘어서면 국가를 향한 퍼포먼스를 펼치기 마련이다. 물론 어느 국가나 국기 퍼포먼스를 펼치지만 한국은 종종 과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2008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에서 일본을 꺾자 한국 대표 팀이 마운드에 올라 태극기를 꽂은 퍼포먼스는 이들이 얼마나 국가를 의식하고 경기에 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짐이 곧 국가'(?)라는 의식이 한국 스포츠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원동력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스포츠를 국가대항전의 도구가 아니라 즐기는 문화로 생각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한국의 운동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주의적 사고관이 여간 불편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직된 사고에서 유연한 생각이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종종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우리 감독과 선수들은 게임을 즐기겠다, 는 ‘쿨’한 출사표를 던지고는 한다. 그런데 말하는 내용과 달리 그들의 표정은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처럼 자못 비장하기만 하다. 승부에 관계없이 게임을 즐기고 싶지만 국가라는 스트레스가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에 말로써만 개인의 바람을 표명할 뿐이다. 하물며 게임당일 들려온 상대 팀 국가와의 독도 관련 외교전(戰) 속에서 결국 올림픽 첫 메달 수상과 병역면제라는 희소식은 특정 선수의 메달 박탈과 정치문제 비화라는 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국가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오로지 개인에 집중하며 게임 그 자체만 즐길 줄 아는 ‘삐딱한’ 선수를 보고 싶다. 사실 이는 국가의 세련됨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표이기도 하다. 팀워크를 중시하는 가운데서도 개별 선수의 개성, 즉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가가 있기에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빛나기에 국가도 빛난다는 발상의 역설이 존재한다. 더한 설명 필요 없이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마리오 발로텔리가 딱 그런 선수다.

‘왜 나만 갖고 그래? Why always me?’ 기행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국가대표 발탁에 의문을 표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그리고 이렇게 항의했다. 왜 나만 갖고 그래! 발로텔리만이 할 수 있는 항의의 방식이었고 그 방식이 얼마나 기발했고 예상외였던지 그의 세리머니 문구는 한동안 유행을 탓을 정도다. 그러니 이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발로텔리는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의 발로텔리’, 우리 문화에서 그것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 잘 알고 있다. 일말의 튀는 행동조차 팀플레이를 저해하고 목표달성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튀어나온 못 박아 넣듯이 유무형의 제재를 가하는 한국의 스포츠문화는 여전히 근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왜 아니겠는가. 올림픽과 같은 큰 경기에서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선수들에게 좋은 성적은 국가가 강요한 의무 아닌 의무다. 병역면제와 상금을 당근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채찍으로 가하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말 그대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다.

승리가 확정된 뒤 박종우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 피켓을 든 건 그래서 이해가 간다. 그것은 마치 국가라는 거대 명분 속에서 개인의 가치는 사라지고 집단의 이념에만 함몰된 채 명분으로만 정당성을 부여했던 나의 대학 시절 선배들의 학생운동을 연상시켰다. 그 같은 느낌을 잘 알고 있기에 관중석의 피켓을 보고 우발적으로 벌인 세리머니라고 밝혔지만 결국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스트레스가 될 때 굳이 독도가 아니더라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우리 선수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스탠스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가의 가치는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팔 부분에 박힌 자그마한 태극기 정도의 크기라고 생각한다. 가슴에 큰 태극기를 새겨 넣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 지금은 메달 색깔이나 승패에 상관없이 경기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문화가 경쟁력인 시대다. 감독과 불화가 생기면 국가대표 유니폼을 스스로 거부할 줄도 알고 정치 문제와는 동 떨어져 게임의 승리만을 만끽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제 필요한 때다. 그럴 때야 비로소 우리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보여주는 좀 더 세련된 방식의 항의가 가능해 질 것이다.  

ARENA
201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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