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엔젤>(Falling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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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책 읽기를 방해할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폴링 엔젤>을 접하기 전이라면 먼저 책을 읽은 후 기사를 읽어주세요.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폴링 엔젤>은 국내 팬들에겐 소설보다 이를 원작삼은 미키 루크와 로버트 드니로 주연, 알란 파커 감독의 <엔젤 하트>(1987)로 더 잘 알려졌다. 1978년 미국에서 <폴링 엔젤>이 처음 출간됐을 때도 현지 반응은 또 하나의 레이먼드 챈들러 풍의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 나왔다는 투였다. 하지만 <폴링 엔젤>은 레이먼드 챈들러를 모방한 그렇고 그런 탐정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을 적극 지지하는 스티븐 킹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엑소시스트>를 썼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소설이 딱 그렇습니다.’라고 추천했고 대중지 <The Sun>의 뉴욕판은 <폴링 엔젤> 발매 1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윌리엄 요르츠버그는 초판 발매 당시 탐탁찮은 시장 반응에 파우스트적인 반전을 가했다. 독자들을 롤러코스터에 태워 곧장 지옥의 심장 속으로 직행했다.’고 소설의 특징적 설정을 빌어 극찬했다.

이들의 표현처럼 <폴링 엔젤>의 미국 초판은 극중 뉴욕을 배경으로 악마의 날개를 활짝 편 총을 든 천사의 모습을 표지에 박아 넣었다. (국내 버전은 천사 대신 중절모를 쓴 탐정의 모습이 장식했다.) 그렇고 그런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경력에 일대 반전을 몰고 온 <폴링 엔젤>은 작가가 고등학교 시절 읽었다는 스티븐 빈센트 베넷의 <악마와 다니엘 웹스터>에 영감을 얻어 쓴 단편소설에서 출발했다. ‘옛날 옛적에 악마가 사설탐정을 고용했다’ 피 끓는 젊은 시절에 쓴 단편소설의 첫 문장은 굉장히 직설적인 것에 반해 <알프>(1969) <회백질>(1971) <토로! 토로! 토로!>(1974) 등 4편의 장편소설 및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경험한 후 37세가 되어 완성한 <폴링 엔젤>은 은근히 불길한 기운을 암시하며 노련한 방식으로 첫 문장을 시작한다.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챈들러 특유의 건조한 첫 문장에 종교적 암시를 노골적으로 덧씌운 것처럼 <폴링 엔젤>은 불가해한 사건에 휘말린 사립탐정의 10일 간의 행적을 다룬다. 뉴욕 666번가에 위치한 크로스로드 탐정사무소의 해리 엔젤은 1959년 3월 ‘13일의 금요일’ 루이스 사이퍼(악마 루시퍼를 의미한다!)의 의뢰를 받아 10여 년 전 실종된 가수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 나선다. 어느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사라졌다는 실낱같은 단서를 추적하던 중 엔젤은 자니가 심각한 악마숭배자였음을 알게 된다. 얼마 되지 않아 자니와 관련한 인물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엔젤에게도 악마의 손길이 뻗치기에 이른다.

<폴링 엔젤>은 단순히 흥미위주로 하드보일드와 오컬트를 결합한 작품이 아니다. 이 소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드보일드 세계 속 사립탐정을 오컬트한 방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단죄한다. 그래서 <폴링 엔젤>은 대실 해밋으로 시작해 레이먼드 챈들러가 정점을 찍고 로스 맥도널드 등에 의해 유지된 하드보일드의 한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범죄소설 속 사립탐정의 역할변화, 즉 사립탐정의 사회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하드보일드의 사립탐정은 자본주의가 낳은 사생아 같은 존재다. 국가권력의 장악력이 소홀한 틈을 타 생겨난 이들 존재는 공권력의 손이 닿지 않는 시민들의 안전에 복무하는 대신 자본주의 부르주아 계층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보디가드, 아니 부르주아가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일을 도맡아하는 비열한 거리의 청소부로 전락했다.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은 자본주의와 손을 잡는 대신 선과 악 사이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박쥐같은 삶을 얻으면서 타락한 도시의 전설 같은 존재로 남게 된 것. 이는 마치 블루스의 신(angel) 로버트 존슨이 십자로(crossroad)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천재적인 음악성을 얻었다는 전설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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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의 <원 모어 카 원 모어 라이더> 커버
로버트 존슨이 십자로 위에 서있는 차를 향해 걸어간다.
자니 페이버릿도 이렇게 영혼을 팔지 않았을까.



실제로 <폴링 엔젤>의 해리 엔젤이 찾으려는 스윙가수 자니 페이버릿은 여러 모에서 로버트 존슨을 모델로 한 혐의가 짙다. 극중 사이퍼가 자니 페이버릿을 일러 “홍보담당들은 그를 벼락스타라고 불렀지요.”라고 말한 것처럼 로버트 존슨은 활동기간 중 2년 동안 명곡을 양산했다. (로버트 존슨은 1936년부터 재능을 뽐내다 1938년 27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다.) 또한 악마숭배자인 자니 페이버릿처럼 로버트 존슨 역시 부두 마법을 통해 악마를 만났다는 소문이 파다한 인물이었다. 하여 윌리엄 요르츠버그는 로버트 존슨의 거짓말 같은 전설을 하드보일드 소설에 이식해 영혼을 판 탐정의 대가가 무엇인지 비열한 도시의 전설에 비수를 꼽는다.

<폴링 엔젤>이 하드보일드로 시작해 오컬트로 끝을 맺는 건, 그래서다. 윌리엄 요르츠버그가 오마주를 바쳤다는 대실 해밋,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의 책이 시리즈였던 것에 반해 <폴링 엔젤>이 단 한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처럼 단 한 번만 가능한 트릭을 구사하는 작품이다. (이와 관련, 재미난 홍보문구가 있어 소개한다. ‘<폴링 엔젤>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다면 소설의 마지막 순간 경악할 것이다. 그것처럼 당신이 수다쟁이 같은 입을 영원히 다물면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죄를 선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하드보일드 소설 속 범인은 항상 체포되고, 표면적이었을지언정 정의가 실현된 것에 반해 <폴링 엔젤>은 오히려 탐정이 체포되기에 이르고 그럼으로써 시끄럽던 사회는 조용해진다. (그럼 필자는 무죄를 선고받기 그른 건가?)

이 책이 발표된 1978년은 <악마의 씨>(1968)부터 <엑소시스트>(1973), 그리고 <오멘>(1976)까지, 할리우드에 오컬트 붐이 한차례 지난 후였다. 흥미롭게도 <악마의 씨>와 <엑소시스트>와 <오멘> 모두 상류층 가문의 자제들에게 악마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 악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불길한 결론을 도출했다. 이제 부르주아(가 비호하는 자본주의)는 악마의 다른 이름이다. 급기야 <폴링 엔젤>에서는 ‘기업의 대표’로 등장한 사이퍼가 자본주의의 청소부였던 탐정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립탐정의 역할은 낡은 가치가 되었기에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폴링 엔젤>에서 보이는 것처럼 해리 엔젤로 대표되는 탐정의 몰락은 곧 새로운 세계, 아니 더욱 강력한 악의 세계의 도래에 대한 징후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당시 하드보일드 소설의 인기가 시들면서 이를 대체한 범죄소설은 다름 아닌 스파이물이었다. 자본주의 파수꾼이 탐정에서 스파이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국가권력이 냉전체제로 말미암아 강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막말로, 국가가 선이라고 믿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이는 윌리엄 요르츠버그가 극중 시대적 배경을 1959년으로 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을 빌면, “시대 배경은 1959년일 수밖에 없었다. (중략) 1959년은 60년대로 나아가는 문턱이었지만 과거로부터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중략) 새 천년이 도래한 시점에서 볼 때, 1959년은 과거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해였다.”

<폴링 엔젤>은 픽션이지만 해리 엔젤이 열흘 동안 겪는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이는 한편으론 이 장르가 현실의 지면에 얼마나 끈적끈적하게 발을 붙이고 있는지를 역설하는 하나의 예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폴링 엔젤>은 재미도 재미지만 자본주의의 은밀한 내적 변화에 맞춰 범죄소설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만하다. 하드보일드가 이끈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범죄소설에 바통을 넘겨주는 범죄소설사(史)에서도 중요하게 언급될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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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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