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캐처>(Foxcat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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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유명한 듀폰은 두 가지다. 라이터나 만년필을 만드는 프랑스 회사 듀폰과 프랑스계 이민자가 1802년에 미국에 설립한 거대 화학회사 듀폰이다. 세계 최대 화학 그룹으로 유명한 후자의 듀폰은 나일론을 발명해 일반명사화시키고 테프론과 스판덱스와 라이크라 등으로 현대 소비 생활에 떼놓을 수 없는 큰 업적으로 남겼다. 당연히 큰 부를 모았고 창업자 일가는 200년 넘는 기간 동안 회사를 지배하며 300년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이 회사의 긴 역사에는 씻을 수 없는 스캔들이 있다. 바로 ‘존 듀폰 케이스’다. 1996년 1월 듀폰의 4대손이자 미국 레슬링협회 후원자였던 존 E. 듀폰이 자신의 레슬링팀 ‘폭스캐처’에 소속된 데이브 슐츠를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존 듀폰은 사건 현장에서 경찰과 48시간 대치한 끝에 체포되었지만, 살해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는 존 듀폰 케이스가 왜, 그리고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쫓는 작품이다.

존은 왜 데이브를 살해했나?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1984년 LA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관심 두는 이가 없다. 미국에서는 레슬링이 비인기 종목인 까닭이다. 존 듀폰(스티브 카렐)만이 진가를 알아보고 연락을 해온다. 폭스캐처에 입단,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환경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이를 수용한 마크는 높은 연봉과 최고급 시설과 같은 전례 없던 지원 속에 존의 바람대로 승승장구한다. 그럴수록 존과 마크는 선수와 코치의 관계를 넘어 유사 부자(父子)로까지 나아간다.

이는 사실 존이 의도하던 바였다. 존은 거대 기업 듀폰을 이끄는 수장임에도 여전히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후 존은 어머니의 보살핌 하에 자랐는데 레슬링은 천박한 스포츠라는 그녀의 편견으로 선수의 꿈을 포기했던 과거가 있다. 대신 코치의 꿈을 키우는 것을 넘어 강한 아버지, 유능한 스승과 같은 리더가 되는 것을 갈망했다. 자신처럼 아버지가 부재하고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마크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처럼 마크를 향한 존의 집착이 심해지면서 이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벌어진다.  

하지만 존은 왜 마크가 아닌 마크의 친형이자 또한 유능한 레슬링 선수였던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를 살해한 것일까. 결국, 마크의 경력을 망가뜨리고 (마크는 서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고 이후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슐츠 가문을 풍지박산 낸 존은 천하의 나쁜 놈이지만, 그를 연기한 스티브 카렐의 평가는 오히려 동정에 가깝다. “존이 두 살 때 그의 부모가 이혼했다. 아빠 없이 냉정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 형제가 있었지만,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우애도 없었다. 거대한 사유지에서 외롭게 자란 셈이다. 그런 배경을 알고 보니 존 듀폰이 어떤 사람일지 이해가 됐다. 악하기보다는 정말 불쌍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존은 인정욕구가 강한 인물로 묘사된다. 일례로, 폭스캐처 선수들과 훈련 중일 때 존의 노모가 훈련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존은 갑자기 원형으로 둘러앉은 선수들 앞에서 파테르 자세를 취하며 한 선수를 불러 그 위에 올라탈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유능한 선수들을 지도하는 리더이니만큼 독립된 자아로 자신을 인정해 달라며 어머니 앞에서 항의의 표시를 해 보이는 것이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그대로 체육관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인데 존이 받게 될 상처는 얼마나 클까. 영화는 존의 인정욕구가 계속해서 거부되는 상황이 존 듀폰 케이스의 기원이라고 본다.

존은 마크와 사이가 나빠진 뒤 데이브를 폭스캐처로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한다. 등을 돌린 마크가 어떻게든 차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코치인 자신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데이브가 마크를 바로 잡아주기를 기대했던 것. 의도와 다르게 마크는 점점 더 부진에 빠지고 그럴수록 데이브의 역할이 커지면서 존은 데이브를 견제하고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상황으로 급변한다. 마크에게 스승이면서 멘토이고 리더이면서 아버지이기를 바랐던 역할을 데이브가 해내는 것을 보고 존의 심정이 편치 않았을 거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존이 마크를 살해했을 것이라고 <폭스캐처>는 강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진짜 아버지가 부재한 미국의 초상

베넷 밀러가 실제 인물의 삶을 영화로 만든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카포티>(2005)에서는 르포르타주의 걸작으로 꼽히는 <인 콜드 블러드>의 트루먼 카포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에 대한 사연을 다뤘다. <머니볼>(2011)에서는 하위권을 맴돌던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강팀으로 이끈 빌리 빈(브래드 피트) 단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폭스캐처>의 존 듀폰과 슐츠 형제까지, 이들은 모두 성공한 이력이 있지만, 베넷 밀러는 그 뒤에 감춰진 실패와 좌절의 역사에 주목한다. 특히 이를 개인의 사연에만 한정하지 않고 미국에 대한 초상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베넷 밀러의 전기영화는 특별하다.

마크와의 좋았던 관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존은 자신을 독수리라 불러주기를 희망한다. 공교롭게도 사무실에서 이뤄진 이 장면의 한쪽 벽에는 성조기가, 그 반대편에는 독수리가 발톱을 세우고 여우를 낚아채는 그림이 걸려있다. 그중 후자의 그림은 이 영화처럼 ‘여우잡이’(foxcatcher) 제목이 딱 들어맞는다. 이것이 은유하는 바는 명백하다. 각각 독수리와 여우로 상징되는 존과 슐츠 형제의 ‘비극적 운명’이다.

‘비극적 운명’은 베넷 밀러의 전기영화를 관통하는 테마다. 운명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베넷 밀러의 얘기를 들어보자. “현실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비극으로 끝난 사건은 여러 사람의 선택이 공동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우리 인생에서, 또는 기업이나 국가에서 늘 볼 수 있는 일이다.” 감독의 말에 ‘여우잡이’ 그림이 걸린 반대편 성조기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독수리는 미국의 국가 로고다. 존 듀폰은 듀폰의 대표이고 폭스캐처 팀의 구단주이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애국자이기도 하다. 마크를 무한지원했던 것, 마크의 금메달을 간절히 바랐던 것은 존에게 있어 애국의 길이기도 했거니와 그 자신이 인정받는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였다. 그 꿈은 좌절됐고 그 여파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은 마크에게로 전이됐다. 베넷 밀러가 <폭스캐처>를 존 듀폰의 이야기이면서 마크 슐츠에 대한 영화로 만든 결정적인 이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서울 올림픽에서의 메달 실패 후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마크가 링 위에 오르자 관중들은 그의 이름 대신 ‘USA! USA! USA!’ 미국을 연호한다. 국가라는 거대한 아버지의 정체성에 짓눌려 독수리에게 쫓기는 여우처럼 이리저리 도망치느라 개인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미국인의 초상. 그럼으로써 진정한 아버지를 갖지 못한 미국의 비극. 영화 속 존 듀폰의 거대 사유지에 자리 잡은 하얀 저택은 백악관을 연상시킨다.

<카포티>의 카포티는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마를 취재하던 중 직업인의 의무와 인간적인 감정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머니볼>의 빌리 빈은 야구에만 집중하느라 가족에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국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부과한 (<폭스캐처>가 푹 가라앉은 듯한 촬영과 미술을 지향하는 이유다!) 아버지 부재의 운명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베넷 밀러는 <폭스캐처>로 삼부작의 정점을 찍는다.  
 

시사저널
(2015.1.31)

2 thoughts on “<폭스캐처>(Foxcatcher)”

    1. 안녕하세요 ^^ 예, 진행이 빨랐으면 인물의 감정이 잘 안 살았을 것 같아요. ^^;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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