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캐처> 아버지를 잃은 미국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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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폭스캐처>(2014)는 <머니볼>(2011)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베넷 밀러 감독의 신작이다. 베넷 밀러는 <카포티>(2005)로 극영화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단 3편만을 연출했다. 꽤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하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LA의 <폭스캐처> 정킷 행사에 참석한 맥스무비 매거진 통신원은 그와의 만남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오래 생각을 하고 조심스럽게 답변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인상을 전했다. <폭스캐처>는 <카포티>를 마친 후 무려 8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이다.

작은 선택이 빚은 비극

마크 슐츠(채닝 테이텀)는 1984년 LA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이지만, 관심 가져주는 이가 별로 없다. 그를 지도하는 코치이자 친형인 데이브 슐츠(마크 러팔로)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더 높다. 그에 대한 불만이 커질 때쯤 마크는 존 듀폰(스티브 카렐)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기업 듀폰의 소유자인 존은 마크에게 자신의 레슬링팀 ‘폭스캐처’로의 입단을 권유한다. 높은 연봉과 좋은 환경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마크는 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존이 마크에게 갈수록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이면서 둘의 관계는 급격히 벌어진다.

<폭스캐처>는 실제 사건 ‘존 듀폰 케이스’를 영화화했다. 존 듀폰 케이스는 1996년 1월, 세계 최대 화학그룹인 듀폰의 4대손이자 미국 레슬링협회 후원자였던 존 E. 듀폰이 데이브를 38구경 리볼버로 사살한 사건을 말한다. 체포 현장에서 48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이 TV 방송으로 생중계되며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존 듀폰의 정신이상 징후가 밝혀지면서 더욱 쟁점이 되었지만, 살해 동기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존 듀폰은 왜 데이브를 살해했을까?’ 베넷 밀러가 <폭스캐처>의 영화화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다. <폭스캐처>는 <카포티>의 차기작으로 결정되었지만, 베넷 밀러는 존 듀폰 케이스의 방대한 자료 앞에서 자신의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베넷 밀러의 표현에 의하면, “발생한 사건에 비해 너무 많은 일이 그 뒤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료 조사에만 6년, 그 중간에 아론 소킨(<소셜 네트워크> <뉴스룸> 등 시나리오 작가)이 참여한 <머니볼>을 찍은 후 본격적으로 <폭스캐처> 제작에 돌입했다.

그래서 베넷 밀러는 영화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존 듀폰과 슐츠 형제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에 할애한다. “슐츠 형제는 굉장히 유명한 스타였다. 레슬링에 대해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다면 이들을 모를 수가 없다. 존 듀폰도 슐츠 형제를 잘 알았다. 그는 데이브에게 먼저 입단 제의를 했다. 하지만 데이브는 동생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을 안타깝게 느껴 마크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존은 정말로 마크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왔다. 그와 같은 작은 선택, 베넷 밀러는 바로 거기에 비극적인 결말의 출발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끌고 간다.  

성공의 이면에 자리한 실패의 역사

베넷 밀러는 성공한 인물 뒤에 감춰진 실패와 좌절의 역사를 들춰내는 데 관심이 많다. <카포티>에서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성공한 트루먼 카포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일가족을 살해한 살인마를 취재하던 중 직업인의 의무와 인간적인 감정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혼란에 집중했다. <머니볼>에서는 스몰볼 이론으로 만년 하위권을 맴돌던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돌풍을 이끌던 빌리 빈이 야구선수로 활약했던 과거에 어떻게 좌절했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족에게 얼마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폭스 캐처>가 전작의 테마를 이어받으면서도 변화했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비슷한 과거를 공유하는 두 인물이 일종의 상하 관계를 띈다는 데 있다. 기업가 존 듀폰과 금메달리스트 마크 슐츠의 성공한 경력의 이면에는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불우했던 가정사가 공통으로 자리한다. 엄마 진 듀폰 여사(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형 데이브가 각각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지만, 그 때문인지 존과 마크는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다. 코치와 선수로 결합하면서 초반만 해도 이들의 관계가 좋았던 건 유사 부자(父子) 형태로서 각자에게 부재했던 가족애를 서로에게서 보충했기 때문일 터다.

안 그래도 존은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레슬링 코치 자격에 대해 “아버지이면서 스승이고 멘토이면서 리더”라는 얘기를 강조한다. 여러 선수에게 고루 가르침을 주었던 형에게 불만을 품었던 마크는 존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전에 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훈련에만 몰두한다. 세계선수권에서의 우승 이후 모처럼 만의 휴식을 취하며 마크가 존의 머리를 잘라주는 장면은 둘의 유사 부자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의 촬영 전 베넷 밀러는 존을 연기한 스티브 카렐에게 인생 선배로서 곧 아이 아빠가 될 채닝 테이텀에게 아무 얘기나 조언해달라고 요구하며 부자 관계에 대한 혐의를 부여했다.

하지만 언급한 장면을 변곡점 삼아 존은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크에게 손찌검하고 그러면서 이 둘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는다. 그런 존에 대한 스티브 카렐의 평가는 뜻밖에 동정에 가깝다. “악하다기보다는 불쌍하고 외로운 인물이다.” 두 살 때쯤 부모가 이혼한 존 듀폰이 거대한 사유지에서 냉정한 듀폰 여사의 보호 속에 억압받으며 자랐다는 게 스티브 카렐이 내세우는 근거다. 이를 상기한다면 베넷 밀러가 존 듀폰 케이스에 대해 가졌던 최초의 의문, ‘존은 왜 마크가 아닌 데이브를 죽였을까?’ 이는 ‘존은 왜 마크를 영입했을까?’로 질문을 바꿔야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독수리로 불리기를 원했던 남자

존이 폭스캐처 소속 선수들을 모아놓고 훈련을 시키던 중 듀폰 여사가 훈련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존은 파테르 자세를 취한 후 한 선수를 불러 그 위에 올라타라며 의도적으로 엄마 앞에서 항의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레슬링을 천박하다고 여기는 엄마의 뜻에 밀려 선수를 하고 싶었던 존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폭스캐처 팀을 만들어 선수들을 가르치는 걸로 대리했던 것. 그런 만큼 코치로서 그가 가진 사명감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존은 아버지의 부재에 따른 결핍을 코치의 역할로 충족하려 했다. 문제는 코치를 넘어 선수들의 멘토이자 팀의 리더, 더 나아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함으로써 국위선양을 하는 애국자와 동일 선상에 놓고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싶다는 집착으로 나아갔다는 것. 베넷 밀러가 <폭스 캐처>를 통해 존 듀폰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와 같은 존의 욕망을 실현해줄 대상. 올림픽 2연패가 유력한 마크는 코치이자 멘토이자 리더이자 이를 모두 아우르는 대명사로서의 아버지의 지위를 모두 가져다줄 적역이었을 테다.

결국, 마크는 희생양인 셈인데 베넷 밀러가 이 영화의 제목을 <폭스캐처>로 가져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존은 마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독수리라 불러줬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 공교롭게도 사무실 벽 한 면에는 독수리가 발톱을 세우고 여우를 낚아채려는 그림이 걸려 있다. 이 그림이 은유하는 바는 명백하다. ‘여우잡이'(foxcatcher), 바로 존과 마크의 비극적 운명이다. 자신을 아버지로 만들어줄 먹잇감으로 점찍었던 마크가 그 자신이 아닌 데이브를 따르는 것을 보고 존이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살인을 저질렀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폭스캐처>를 비롯해 베넷 밀러가 연출한 세 편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모두 인물의 옆모습에서 나온다. 트루먼 카포티가 감옥에 갇힌 살인마에게 진짜 살해 동기를 들으며 혼란스러워할 때, 운전 중인 빌리 빈이 음악을 듣다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때, 마크가 존의 입단 제의를 받고 형 데이브와 함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할 때 베넷 밀러는 앞도, 뒤도 아닌 얼굴 옆이 강조되도록 카메라를 위치시킨다. <폭스캐처>의 포스터만 해도 존 듀폰의 옆모습을 실루엣으로 콜라주한 형태가 아닌가.  

지금껏 실화 기반의 영화만을 만들었던 베넷 밀러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fact)과 그 속에 감춰진 이면을 파고들어 해당 인물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앞에 드러난 밝음과 뒤에 드리워진 어둠, 그 중간(side)을 파고들어야 진짜 인간이 있다고 베넷 밀러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것이 실화를 기초로 하면서 영화라는 허구를 통해 유의미한 진실을 유추해내는 베넷 밀러만의 방식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은 <폭스캐처>가 단순히 개인의 사연에 머물지 않음을 지시하는 가이드라인처럼 다가온다. 마크가 이종격투기 선수로 전향한 뒤 링 위에 오르자 관중들은 ‘USA! USA! USA!’를 연호한다. 이는 마크 슐츠를 개인이 아닌 아버지를 잃은 미국인의 비극적 초상으로 바라보는 영화의 시각을 대변한다. 국가라는 거대한 정체성의 지면 아래 매몰된 (이 영화가 축 처진듯한 분위기의 촬영과 미술을 지향하는 이유!) 개인의 사연, 베넷 밀러는 이를 끄집어내는 것이 감독으로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폭스캐처>와 <카포티>와 <머니볼>을 묶어 베넷 밀러의 ‘미국의 초상 삼부작’이라 불러 마땅하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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