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 대처하는 기자의 자세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의 대니얼 고든 감독을 저녁 늦은 시간에 만났다. 오전부터 무려 여덟 건의 인터뷰를 소화했다며 마지막 순서인 기자를 향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앞선 인터뷰와 중복된 질문에 대해서는 ‘패스’해도 좋다고 농을 던졌다. 고든은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기어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천리마 축구단>과 <어떤 나라>까지 ‘북한 삼부작’ 연출을 통해 증명됐듯 그는 저울을 들고 있는 법원 앞 정의의 여신상처럼 공정한 사람이었다. 특히 촬영 대상에 접근하기 위해 선입견을 버렸다는 요지의 답변은 취재에도 적용되는 내용이라 매우 인상 깊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배우 유준상의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다.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한창 재밌게 시청하고 있던 중이라 극중에서처럼 활달한 인물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질문도 이에 맞춰 나름 재밌는 것으로 준비했다. “<나의 결혼원정기> <리턴>에서 잇따라 연기변신을 시도하셨는데 별명이 트랜스포머 아니세요?” “<리턴>에서 아줌마 파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상당히 유치한 질문으로. 하지만 그는 생각만큼 활달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진지한 쪽에 속했다.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연기의 동력을 얻고 있다는 얘기에는 그만 마음이 숙연해져 준비한 질문을 포기하고 말았다. ‘재치빵점’의 기자는 그 분위기에 적합한 질문을 던지지 못해 안절부절 속으로 꽤나 마음 졸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절한 준상씨’였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된 인터뷰가 불가능할 뻔했다.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성격이 이럴 거야’라는 편견을 미리 갖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까닭에 인터뷰 대상자의 실제 성격을 접하고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자로서 당연히 갖췄어야 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전에 대니얼 고든을 만나 한수 가르침을 받았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아졌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쪽 입장만 시뮬레이션해 질문을 준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음 인터뷰를 앞두고 양면을 모두 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래서 두 가지 질문지를 준비했다. 철두철미한 건가, 미련한 건가.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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