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 서커스로 세상을 보고 광대로 인간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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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월드컵 축구 열기로 뜨겁지만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2010.6.10~7.4)으로 또한 열기가 넘친다. 영화와 축구, 특히 펠리니와 월드컵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실제로 펠리니는 필모그래프를 통틀어 축제로 대변되는 환상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멈추지 않는 환상의 즐거움 속에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유일한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한 펠리니의 영화가 월드컵으로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6월에, 그것도 한국에서는 최초로 거의 전작에 가까운 22편이 상영되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세상은 그냥 티켓이 필요 없는 하나의 거대하고 신기한 공연이다. 사람과 사물이 뒤섞여 끊임없이 흐르는 무의식적이고 매력적이며 동시에 끔찍하기도 한 상상의 거대한 물결일 뿐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 <전화의 저편>(1946) 등의 조감독과 공동각본가로 참여하면서 영화를 익힌 사실은 잘 알려졌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비텔로니>(1953)와 <길>(1954)은 네오리얼리즘의 자장 안에서 평가 받지만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시카, 루키노 비스콘티(의 초기영화)와 달리 지극히 주관적인 환상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네오리얼리즘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선배 감독들이 당시 이탈리아의 비루한 현실을 정면에 두고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는 의미를 상기시켰다면 펠리니는 여기에 더해 축제를 통한 삶의 환상성을 구현한다. 이탈리아의 현실을 지나가는 풍경처럼 보여주는 대신 비극적 삶을 축제의 유흥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알베르토 라투아다와 공동연출을 맡은 그의 데뷔작 <다양한 불빛>(1950)은 유랑극단의 단원이 되기 위한 젊은 여인의 이야기다. 펠리니는 첫 장면부터 물랭 루주와 같은 무대를 배경으로 신나는 쇼를 선사하며 이후 나올 자신의 영화적 정체성을 선언하듯 제시한다. 다만 쇼의 화려함 뒤에 놓인 척박한 인생을 조명하는 영화는 단원이 되기 위해, 유랑극단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절망과 실패 대신 축제로 대변되는 낭만적인 삶을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니까 네오리얼리즘이라고 하더라도 펠리니는 여기에 자신의 경험과 예술적 비전을 녹인다. “무대극은 언제나 서커스처럼 나를 흥분시켰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영화에 담는데 거리낌이 없고 이를 환상세계처럼 묘사하여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고 신비한 마법과도 같은 삶의 베일을 벗겨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펠리니의 영화를 두고 ‘광대’와 비유하기도 한다. 펠리니 또한 세상사가 공연과 닮았다고 공공연히 비유했다. 분장한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분장을 지운 맨 얼굴에 힘겨운 삶이 배어 있는 광대의 속성을 영화적으로 드러내길 즐겼다. 인생과 영화에서 모두 펠리니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줄리에타 마시나가 연기한 <길>의 젤소미나야말로 대표적인 캐릭터다. <길>은 펠리니가 줄리에타 마시나를 위해 만든 영화이기도 한데 그녀에게서 광대의 이미지를 본 까닭이다. “그녀는 어릿광대의 희극적인 슬픔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녀는 틀림없는 어릿광대 배우이며 실제 어릿광대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어릿광대는 내게 있어 한없이 영광스러운 찬사이다.”

<길>에서 집시 곡예사 잠파노(안소니 퀸)의 조수로 등장하는 젤소미나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나 순박한 캐릭터다. 대신 그녀는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을 흉내 낼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 곡예사 조수 생활 중 죽은 언니를 대신해 유랑에 나선 그녀는 잠파노의 계속되는 학대 속에서도 결코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놓지 않는다. 그런 젤소미나의 영혼의 순수성은 ‘조약돌 우화’로 증명된다. ‘조약돌도 어딘가 쓸모가 있을 거야. 만약 이 조약돌이 쓸모가 없는 거라면 이 세상 모든 게 쓸모가 없는 거지.’라는 한 서커스 단원의 얘기를 마음 깊이 간직한 그녀는 끝내 죽음을 맞이하지만 조약돌보다도 쓸모없어 보이는 인간 실격자 잠파노를 구원의 길로 이끈다. 이처럼 펠리니에게 광대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지닌 캐리커처이면서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한 괴물의 형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다. 줄리에타 마시나에게서 광대의 이미지를 목격한 펠리니는 <길> 이후 <카비리아의 밤>(1957) <영혼의 줄리에타>(1965)를 함께 작업하며 ‘구원 3부작’을 완성하게 된다.

“영화는 진실로 꿈이라는 친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꿈은 무의식적이고 난해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이 밝혀질까 봐 불안하지만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동안에는 매력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줄리에타 마시나가 펠리니 영화 속 절대 순수를 상징하는 존재와 같다면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세월의 부침 속에서 순수함이 풍화된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앞서 밝힌 바, 펠리니는 초기 작품에서 대개 구원의 가능성을 긍정했지만 이례적으로 <사기꾼들>(1955)에서는 구원 불가능한 비극적 삶을 그리기도 했다. 이는 (지금 와서 보건데) 후에 나올 <달콤한 인생>(1960)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영화 속 각각의 주인공인 아우구스토(브로데릭 크로포드)와 마르첼로(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구원 받지 못하는 상황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딸의 학비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기 행각을 벌이는 아우구스토의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 <사기꾼들>은 전후 이탈리아 사회 민초들의 삶이 가진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그에 반해 <달콤한 인생>은 구원을 갈구하지만 끝내 이에 이르지 못하는 마르첼로를 통해 구원의 의미에 물음표를 제기한다.

<달콤한 인생>은 <사기꾼들>과 달리 네오리얼리즘의 전통과 절연한 작품에 가깝다. 이를 증명하듯 헬리콥터에 매달린 거대한 예수상이 로마 상공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은 네오리얼리즘을 지지하는 영화비평가로부터는 ‘배신’이라고, 로마 가톨릭으로부터는 ‘신성모독’이라고 당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 사라진 지금 이 영화는 펠리니의 필모그래프 안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원형적인 캐릭터가 제시됐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펠리니의 영화에서 마스트로얀니는 적당히 타락하고 적당히 삶에 찌들어 혼란을 겪는 인물을 대표한다. <달콤한 인생>을 비롯하여 <8과 2분의 1>(1963), <여인의 도시>(1980) 등에서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한 인물들은, 실은 펠리니 자신의 모습을 대입한 것이기도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나 자신이 투영된 모습이자, 나의 습관과 열정, 그리고 변덕까지 나타내는 뭔가 친숙한 면을 지니고 있어 이젠 영화 밖에서도 내가 가진 어떤 일면의 상징이 되어버린 얼굴”이었다.

젊은 시절 펠리니는 미국영화를 즐겨 보며 극중 기자들의 삶에 매료됐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실제로 짧은 기간이지만 기자로 일한 경력도 있는데 <달콤한 인생>에서 신문기자로 등장하는 마르첼로는 펠리니의 경험이 전면에 나선 첫 번째 캐릭터라 할만하다. 이렇게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페르소나 삼으면서 펠리니의 영화적 특징은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아예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8과 2분의 1>(1963)은 그 자신이 “나의 두 번째 데뷔작 혹은 진정한 첫 번째 영화”라고 부를 만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자기반영적 설정이 훨씬 노골화되고 영화라는 매체의 고민과 함께 무엇보다 구원의 상실을 표현하기 위한 현실과 꿈,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환상성이 펠리니의 영화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8과 2분의 1>은 영화 제작을 앞두고 온갖 선택할 것들의 갈등에 직면한 영화감독 귀도의 정신적 혼란을 다룬다. 그것은 현실세계에서 펠리니 본인이 겪는 영화 만들기의 고통과 다르지 않았다. “내게는 영화를 만드는 철학이 있지만 제작과정과 영화는 곧잘 그것을 거부하고 방해한다. 거기서 고통과 도피와 극복해야 할 질병들이 생겨난다. 마침내 극장에 들어서는 그날, 두려움에 떠는 한 자유인이 도착할 것이다. 첫 프레임 아니면 첫 장면일까? 거의 예외 없이 초기 2주 동안은 끔찍한 자학과 자살 충동에 가까운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하며 보낸다.”

다만 그 고통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면,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발생하는 부분이었던 까닭에 펠리니는 자신의 영화가 근원적인 공포와 깊이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꿈과 환상과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를 극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이유였다. 그에게 서커스는 정신적 갈등의 해방구(<8과 2분의 1>의 귀도는 영화제작이 무산되자 스텝, 출연진들과 함께 놀이로써 해방감을 만끽한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혼란한 정신세계의 은유이기도 했다. (필모그래프 후기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세상사를 서커스로 바라보는 그는 이를 담는 그릇인 영화도 서커스, 즉 환상 혹은 꿈과 동일시했다. 삶을 알기 위해서는 과학과 마법, 이성과 환상, 꿈과 현실, 그리고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한다는 것이 <8과 2분의 1> 이후 펠리니가 일관되게 추구한 영화적 세계다. 그것은 또한 펠리니가 생각한 영화의 본질이기도 했다. 

“진실로 자아를 실현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정신의 정화를 위해 위험을 마다않고 인생의 가장 기적적인 모습인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향할 줄 안다.”

1970년대 들어 펠리니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전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영화로 끌어들인다. 흑백영화로 일관하던 그가 컬러영화로의 변화를 꾀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펠리니는 컬러영화에 대해 강한 의심을 품었던 감독 중 하나였다. “컬러영화는 표현의 정확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흑백영화의 방식을 선택했다. 컬러영화가 완전히 흑백영화를 대신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형편없는 컬러영화보다는 당연히 흑백영화를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단서를 덧붙이길, “물론 컬러영화가 영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다든지 회화적으로 사용된다면 무척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컬러영화에 대한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긍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바로 <사티리콘>(1969)이다.

<사티리콘>이 펠리니 영화의 첫 번째 칼라영화는 아니다. 그 전에 찍었던 <영혼의 줄리에타>가 첫 번째 칼라영화였다. 하지만 칼라영화의 가능성을 펠리니 연출의 완성형으로 만든 첫 번째 작품은 <사티리콘>이었다. (<영혼의 줄리에타>가 맘에 들지 않았던 줄리에타 마시나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펠리니는 <사티리콘>에서 새로운 스태프들과 작업하게 된다.) 이 영화는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가 쓴 동명의 모험소설을 원작으로 한 펠리니 최초의 역사물이기도 했는데 에피소드로 이뤄진 구성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로마시대의 한 청년이 갖가지 희한한 소동을 겪으며 사랑과 성에 눈떠가는 이 영화에서 펠리니의 칼라 활용은 과감하지만 상당히 괴기스러운 측면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영화평론가 한창호는 ‘카오스: 페데리코 펠리니의 미술’을 주제로 한 강좌에서 ‘펠리니 후기 영화의 특징이라면 단테 <신곡>의 ‘지옥’ 편을 자기 식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카사노바의 일생을 다룬, 펠리니의 두 번째 역사물 <카사노바>(1976)도 칼라 활용 면에서 <사티리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사노바>는 대중이 카사노바하면 떠올리는 방탕한 이미지와 달리 예술가로서의 카사노바에 방점을 찍는다. (카사노바는 시인이기도 했다.) 호색한의 이미지가 중심에 서긴 하지만 펠리니는 이런 저런 경험을 겪은 말년의 카사노바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어떤 이치를 보여준다. 그 이치란 건 다름 아닌 ‘인간의 유한성’이다. 펠리니가 꿈이나 환상 같은 비현실적인 개념으로 확장한 형태의 연출을 보여주지만 원색의 색깔을 통해 지옥처럼 구성한 배경은 결국엔 죽음과 맞닿아있는 개념이다. 다만 인간 카사노바가 죽었다고 그의 예술까지 죽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펠리니가 만든 카사노바와 관련한 영화를 보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 가능할까? 

<사티리콘>에서 펠리니는 지옥의 풍경을 그리면서 히에로니무스 보쉬와 피터 브뤼겔의 작품을 활용하기도 했다. 보쉬의 <쾌락의 정원>과 브뤼겔의 <바벨탑>은 색채와 주제 면에서 <사티리콘>의 주제와 맞닿아있지만 한편으로는 극중 예술의 무한성을 드러낸 장치이기도 했다. 이는 원형무대를 생각하면 쉽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인간의 한 평생을 선으로 그으면 남는 것은 원형, 즉 원형무대로 상징되는 예술이다. (펠리니는 모든 형태의 공연은 서커스를 기원에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인간의 유한성과 함께 예술의 무한성은 펠리니의 후기영화를 특징짓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래서 펠리니는 후기영화에서 원형구조를 두드러지게 차용했다. <로마>(1972)에서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로마로 들어온 차가 마지막 장면에서 빠져나가는 구성으로 원형의 구조를 세웠다.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1983)의 경우, 출발과 도착 운동을 반복하는 배의 속성상 원의 구조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는 죽음을 실은 배의 항해를 통해 예술의 무한성을 긍정하는 영화다. 표면적으로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의 유골을 외딴섬으로 옮기는 과정을 묘사하지만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모든 예술의 총집합이다. 노을 진 지평선, 까마귀 실루엣 등 죽음을 나타내는 회화적인 구도 한쪽에서는 오페라, 즉석공연과 같은 종합예술이 삶에 대한 흥을 돋우는 식이다. 특히 영화의 첫 장면, 배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흑백 무성영화로 보여준 후 칼라 유성영화로 이야기를 진행하다 배위에서의 촬영이 세트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펠리니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영화는 영원하다. 이는 펠리니 그 자신이 증명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 이후 <진저와 프레드>(1986) <인터뷰>(1987), 그리고 유작인 <달의 목소리>(1990)를 남기고 1993년에 타계한 펠리니이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2편의 영화로 예술의 무한성을 증명하고 있다. 펠리니는 생전에 영화적인 삶을 살았으면서 사후에도 영화로 생명을 얻은, 말 그대로 예술가다. 아니 그는 ‘광대’로 불러주기를 더 바랄 것이다. 

* 본문의 펠리니 인용구는 모두 페데리코 펠리니가 쓰고 한리나가 옮긴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만들기 Fare un Film>에서 발췌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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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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