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어벤저> 강인한 젊은이로 만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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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어벤저>의 진짜 제목은 <캡틴 아메리카: 더 퍼스트 어벤저>(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다. 국내 개봉 시 제목의 ‘캡틴 아메리카’가 빠진 이유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7월 4일자 ‘할리우드 리포터’ 보도(http://www.hollywoodreporter.com/news/captain-america-keep-us-title-207939)에 따르면, 미국의 파라마운트사가 한국 수입사에 <캡틴 아메리카: 더 퍼스트 어벤저>와 <퍼스트 어벤저> 둘 중 하나의 제목을 고르라고 했고 그래서 채택된 것이 바로 <퍼스트 어벤저>다. (한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만 <퍼스트 어벤저>라는 제목으로 개봉한다!) 한국의 수입사 측에서 제목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아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지만 전혀 짐작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이 미국의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내용이 한국 국민의 정서상 국내 흥행에 방해가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캡틴 아메리카를 따르라!

<퍼스트 어벤저>의 캡틴 아메리카는 마블 코믹스를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등 전 세계적으로 친숙한 캐릭터를 제치고 캡틴 아메리카가 마블의 간판으로 꼽히는 이유는 슈퍼히어로의 원조 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블 코믹스의 전신 ‘타임리 퍼블리케이션 Timely Publication’이 1941년에 선을 보인 캡틴 아메리카는 이후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의 공식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다가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돼 지구 평화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한다는 슈퍼히어로물의 원형을 제시한 것이 바로 <퍼스트 어벤저>, 즉 캡틴 아메리카인 것이다. (‘천둥의 신’ 토르는 예외에 속한다.)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어서 빨리 군인이 되어 히틀러의 나치군 만행을 저지하고 싶지만 신청도 하기 전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이쑤시개 같은 몸매의 허약체질 어린이를 연상시키는 까닭에 도움이 안 된다는 군 당국의 판단이 작용한 탓. 하지만 애국심이며 정의감이며 근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티브는 에스카인 박사(스탠리 투치)의 특별전형(?)으로 군 입대를 명받는다. 사실 에스카인 박사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능력을 키우는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 중이었는데 스티브는 이를 통해 캡틴 아메리카로 변모한다. ‘쭉쭉딴딴’한 가슴근육은 물론, 그 어떤 공격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와 압도적인 힘을 갖게 된 스티브, 아니 캡틴 아메리카는 적진의 심장부에 투입돼 맹활약을 펼친다. 

원형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퍼스트 어벤저>는 시초에 해당하는 만큼 후에 나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헐크 등과 달리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이나 활약이 거창한 허구에 기대지 않는다. 뭐랄까, 좀 더 현실에 밀착한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치에 적을 둔 레드 스컬(휴고 위빙)의 야욕에 맞선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을 묘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퍼스트 어벤저>가 큰 인기를 모은 건 이 작품의 코믹스가 처음 발매된 1941년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미국의 세계2차 대전 참전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등장한 <퍼스트 어벤저>는 캡틴 아메리카가 히틀러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는 표지로 화제를 모았고 기세를 모아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니까 이 코믹스는 출발부터 미국국민의 애국주의에 편승해 인기를 누렸던 셈이다.   

이를 영화화한 <퍼스트 어벤저>는 그런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매우 시대착오적으로 비친다. 실제로 빼빼마른 우리의 주인공 스티브가 군에 입대한 친구를 보며 부러워하는 장면에서 ‘엉클 샘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Uncle Sam’s I WANT YOY’ 문구가 새겨진 그 유명한 미국의 징병 포스터가 비추면 상영관에는 웃음이 터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의 에스카인 박사와 군인이 되지 못해 안달 난 스티브 로저스의 대화는 이전 장면의 징병포스터가 시대를 초월해 현세대의 젊은이들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히틀러를 무찌르고 싶나?” “아니요, 그저 불량배가 싫을 뿐입니다.”

(나는 이 코믹스를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이 대사는 영화화되는 과정 중에 첨언된 것으로 보인다. ‘불량국가 rouge state’라는 용어는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을 끝낸 후 새로운 적을 위해 만들어낸 용어로 유명하다. 특히 조지 부시는 9.11 이후 북한,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을 ‘악의 축’으로 지칭하며 불량국가의 개념을 널리 퍼뜨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같은 배경을 상기할 때, <퍼스트 어벤저>는 극중 시대 배경을 세계2차 대전으로 잡고 있지만 ‘불량(배)’이라는 단어를 교묘히 드러내는 대사를 통해 현대의 특정 국가를 은연중에 상기시킨다.

다시 말해, 이 영화가 적으로 상정하는 건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가 아니다. 극중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제거하려는 레드스컬은 오히려 히틀러까지 밀어내고 세계를 정복하려 하지만 그 공격 대상은 뉴욕, 워싱턴, 시카고와 같은 미국의 주요 국가다. 레드스컬은 단순히 미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량배인 거다. (해골을 형상화한 생김새는 그냥 악(惡) 그 자체다.) 그리고 현실의 미국은 여전히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는 이유로 그 자신들의 평화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소위 불량국가로 명명한 집단들에 맞서 가장 많은 전쟁을 자행하고 있다. <퍼스트 어벤저>가 세계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적으로 느껴진다면 이런 이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드바디의 귀환

<퍼스트 어벤저>가 ‘노골적인’ 미군 홍보물이 될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던 조 존스톤 감독 이하 제작진들은 제목의 축소 허가는 물론 극중에서 캡틴 아메리카라는 호칭을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캡틴 아메리카가 이끄는 최정예요원들이 다국적군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미국 중심의 세계관의 질량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고려보다는 해외 흥행을 염두에 둔 설정이지만 그만큼 더 많은 관객들에게 영화의 메시지를 알릴 수 있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퍼스트 어벤저>처럼 정치적인 입장은 최대한 덜어낸 인상을 주면서 은근한 방식으로 미국적 세계관을 전파하는 것이 최근 1~2년 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보여주는 중요한 경향 중 하나다. 특히 노골적으로 ‘미국 만만세’를 외쳤던 과거의 전쟁영화들과 달리 허구의 설정이 전제된 Sci-Fi, 코믹스와 같은 장르물로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써커펀치>(2011),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2009)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등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들은 하나같이 Sci-Fi의 장르 형태를 취하면서 전쟁을 중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예컨대, <트랜스포머>와 <터미네이터>가 로봇에 대한 유년기의 꿈을 현실화하며 폭력에 대한 환상성을 키운다면 <써커펀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 여전사들의 섹시한 몸매 전시를 통한 낭만성으로, <스타트렉>은 풋내기 소년의 리더로의 성장을 광활한 우주 배경의 스페이스 모험담으로 포장하며 전쟁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식이다.

이때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다름 아닌 육체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이를 두고 ‘하드 바디 Hard Body’라는 용어를 유행처럼 사용했는데 (수잔 제퍼드가 쓴 <하드 바디: 레이건 시대 할리우드 영화에 나타난 남성성 Hard Bodies: Hollywood Masculinity in the Reagan Era>가 가장 유명하다) 미국의 막강한 힘은 남성 중심적이고 강하고 터프한 육체로 종종 고무 찬양되고는 했다. 즉, <트랜스포머> <터미네이터>의 금속성 육체, <써커펀치>의 첨단무기와 복장, <스타트렉>의 우주함선 등은 2000년대 버전의 하드바디라 할만하다. 그리고 <퍼스트 어벤저>는 전쟁 병기로써의 하드바디를 가장 노골적인 형태로 맥락화한 경우다.

과거 미국의 1980년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하드바디 영화들인 <람보>(1982) <코만도>(1985) <리썰웨폰>(1987) <다이하드>(1988) 등의 주인공들은 그 자체로 인간병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퍼스트 어벤저>의 스티브 로저스는 캡틴 아메리카로 변모하기 전에는 하드바디와는 거리가 멀다. 극중에서 과장되게 빼빼마른 모습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의 여느 평범한 청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의 젊은이들을 스티브 로저스의 자리에 대입해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사실 어느 시대건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들을 늘 자신들이 보기에 허약하게 생각되는 젊은이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에 맞추려고픈 욕망을 가진다. 

영화는 종종 그런 기성세대의 욕망을 대변하곤 한다. 특히 할리우드는 미국 그 자신이 적이라고 상정한 집단과 첨예하게 대치중일 때 하드바디를 통한 팍스아메리카의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앞장서 전파해왔다. 소련과의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가 그랬고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2000년대가 또한 그렇다. 마치 타이밍을 지켜봤다는 듯 람보와 존 맥클레인이 각각 <람보4: 라스트 블러드>(2008)와 <다이하드 4.0>(2007)으로 귀환한 것은 그래서 징후적이며 (그 중 <다이하드 4.0>의 존 맥클레인은 컴퓨터에는 능하지만 힘을 쓰는 데에는 영 젬병이인 젊은이를 데리고 다니며 함께 테러범을 응징하고 강한 사나이로 키워낸다!) 앞서 언급한 Sci-Fi 영화들 역시 한철 극장가를 휩쓰는 블록버스터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기저에 깔린 정치적 함의가 일관된 흐름을 갖는 것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퍼스트 어벤저>가 약한 육체의 젊은이들을 슈퍼솔저 프로젝트에 의해 하드바디로 변모시키는 신체교화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신체교화 뿐 아니라 미국을 상대로 파괴를 일삼으려는 레드스컬을 상대로 활약하는 캡틴 아메리카를 통해 애국심이라는 정신적 고취로까지 나아간다. 특히 레드스컬을 앞세워 특정시대(세계2차 대전)와 적의 정체(나치)를 무력화하는 전략은 명백하게 현재 시점을 전제한다. 하여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며 <퍼스트 어벤저>가 특별히 한 장면을 할애하는 엉클 샘의 손가락질은 지금의 관객들, 그중에서도 현재의 젊은이들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퍼스트 어벤저>에서 그런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바로 슈퍼 솔져를 이끄는 체스터 필립스(토미 리 존스)이다. 그는 유약해 보이는 스티브 로저스에 대해 처음부터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지금의 젊은이였다면 외형도 외형이지만 무엇보다 정신상태가 글러 먹었다고 한숨지었을 게 분명하다. 과거와 달리 국가에 대한 애국심도 희박하고 자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갈수록 비판적인 의견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체스터 필립스와 같은 기성세대라면 젊은이들에 대한 교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이들을 하드바디의 전사로 교화시킬 슈퍼 솔져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이고 스티브 로저스처럼 이에 응한다면 모두가 선망하는 ‘몸짱’의 지위는 물론 국가를 위해 앞장 설 경우 그 대가로 유명세와 함께 꿈에 그리던 미녀를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유튜브 세대를 위한 홍보물

이렇게 <퍼스트 어벤저>는 시대착오적인 배경을 하면서도 현대를 불러오는 설정을 교묘하게 매설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설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엉클 샘 포스터의 현대판 버전으로써 유튜브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사기 위한 홍보물의 역할로 기능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역사 다시 쓰기로 치환이 가능하다. 대중문화로 대체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할리우드가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영역이다. 다만 1980~1990년대처럼 현실의 적을 스크린 속으로 그대로 끌어들여 미국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방식은 이 시기를 거쳐 온 영화 팬들에게 이제는 뻔히 속 보이는 전략이 되었다.

그럴 때는 Sci-Fi와 같은 장르를 당의정 삼아 팍스아메리카에 대한 메시지를 은근슬쩍 감추는 방식이 유효하다. <트랜스포머> <스타트렉> 등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의 흥행 성과로 보자면 그 전략은 꽤 효과를 발휘하는 형국에 해당한다. 사실 Sci-Fi는 진보적인 작품이 많이 나오는 장르 군에 속하는데 할리우드 영화에서만큼은 <다크나이트>(2008)나 <왓치맨>(2009) 정도를 제외하면 유독 보수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 속내에는 작금의 대립의 역사를 미국 쪽으로 유리하게 이끌고 싶은 전략, 이를 위해 전쟁을 미화하여 젊은 관객들의 환심을 사려는 욕망이 읽힌다. 그 정점에 선 작품이 바로 캡틴 아메리카의 <퍼스트 어벤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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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11.8.3)

5 thoughts on “<퍼스트 어벤저> 강인한 젊은이로 만들어드립니다”

  1. 우리 정서를 고려해서 제목을 바꿨다니 음… <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에 저항감없을 나라는 어디려나..^^ 그나저나 딴지 마빡에서 이 글을 읽자마자 딴지가 다시 사라져버리더라고요.

    1. 딴지가 해킹 당한 후에 시스템이 불안하더라고요. -_-; 근데 예전에도 시스템이 안정된 곳이 아니라서… 아마 시간 좀 걸려 열리겠죠 ㅋㅋ

    1. 그래도 많이 순화된 거라고 하는데요, 뭐 너무 당연하겠지만 할리우드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거죠. 물론 그 반대편에 < 혹성탈출>과 같은 작품이 있는 게 할리우드의 위력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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