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볼>(Foul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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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개막했다. 야구의 인기를 반영하듯 관련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돼 관객의 눈길을 끈다. 한국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배경으로 한 <파울볼>(4월 2일 개봉)과 1982년 한국을 찾았던 재일동포 야구단의 30년 후를 다룬 <그라운드의 이방인>(3월 19일)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이지만, 결국 이의 바탕이 되는 건 코칭스태프와 선수 개개인의 드라마라는 것을 두 편의 작품은 가슴으로 설득한다.

<파울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
 
고양 원더스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단이다. 구단은 해체됐지만, 원더스에서 활약한 선수들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남긴 가치는 그 파장이 여전하다. 영화는 고양 원더스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창단한 2011년 9월부터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으로 충격을 남긴 2014년 9월까지 1,093일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구단의 짧은 역사로 틀을 잡은 작품이되 <파울볼>이 다루는 내용은 구단의 흥망성쇠와는 크게 관련은 없다.
 
지금은 한화 이글스로 팀을 옮긴 김성근 전(前) 고양 원더스 감독의 얘기를 들어보자. “야구에서 파울볼은 다시 칠 수 있는 기회이다. 아직 아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상태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한 번 실수했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기회로 잡는다면 그 속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파울볼은 다음 준비를 할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잡는 것.”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원더스에 지원했던 이들의 면면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340명에 달하는 1차 트라이아웃 지원자 중에는 82세 어르신부터 16세의 야구 꿈나무까지, 기존 프로야구 구단에서 활약했던 선수부터 이미 선수 생활을 접었던 이들까지, 나이와 직업을 불문했다. 그중 원더스에 최종 입단한 선수들 또한 헬스 트레이너와 대리 운전기사 등 ‘프로’와는 거리가 먼 선수들이었다.
 
김성근 감독부터가 12번의 해고를 당했던 이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던가. 어떻게 보면 마음속에 큰 울분을 삭여야만 했던 이들은 오로지 프로구단 진출만을 목표로 김성근 감독의 악명 높은 지옥 훈련을 버티고 또 버텼다. 흔히 우리는 이런 상황을 두고 ‘패자부활전’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고는 한다. 선수들은 다르다. 그들 스스로 패자(敗者)라며 단 한 순간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면서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버팀목 같은 거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필수코스이자 반환점이라는 것. 예상치 못했던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모든 이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훈 전 고양 원더스 투수 코치가 제작진에게 들려주는 말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들이 야구계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원더스에서의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파울볼>의 입장 또한 다르지 않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바는 오합지졸 같았던 이들이 혹독한 조련 속에 프로구단에 입단하면서 얻게 되는 성공적인 인생의 2막만이 아니다. 물론 시련을 딛고 목표를 이뤄낸 사연은 깊은 감동을 전달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게다가 고양 원더스의 해체와 함께 당장의 앞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영화는 고개 숙인 뒷모습이 아닌 웃으며 또 다른 앞날을 기약하는 희망에 포커스를 맞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은 “<파울볼>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이 영화가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게 어디 고양 원더스에 소속되었었던 선수들에게만 해당할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 처한 어렵고 극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응원 또한 필요하다고 <파울볼>은 역설한다. 이 영화는 고양 원더스가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한 응원가인 셈이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잠실 마운드에 선 이방인들
 
<파울볼>이 현재진행형의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우리 기억에서 잊힌 재일동포 선수들을 다시 한 번 무대 위, 즉 마운드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지금은 국내 야구 대회에서 함께 뛰는 재일동포 야구단을 볼 수는 없지만, 1956년 이후 30년 가까이 한국의 고교야구 대회에 참가했던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어떻게 보면 야구 불모지인 대한민국에 수준 높은 야구 문화가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재일동포 야구단이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일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당시의 관중들은 한국의 고교대회에 참석했던 재일동포 야구단에 거침없는 야유를 퍼붓고 비하의 말을 쏟아냈다. 어린 나이에 이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컸을까. 김명준 감독은 순수한 마음으로 조국의 운동장에서 맘껏 기량을 펼쳤던 이들의 명예를 복권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그라운드의 이방인>을 만들었다. 그 대상은 1982년 역전의 명수로 불렸던 군산상고와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맞붙어 아쉽게 준우승했던 재일동포 야구단의 주역들이다.
 
김명준 감독은 당시 남겨진 자료를 바탕으로 투수 양시철 등 4명의 재일동포 전 선수를 한국에 초청, 2013년 4월 두산 베어스의 개막 3연전 마지막 날 시구자로 나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31년 전 봉황대기 결승전이 열렸던 바로 그 잠실야구장의 마운드였다. 이들에게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터다. 반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관중들의 박수 소리는 연예인이 시구자로 나설 때와는 확연히 달랐고 그날 경기에 나섰던 두산과 SK 와이번스 선수들은 누구 하나 기립하지 않았다.
 
재일동포 야구단 출신의 시구자들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이었다. 그래서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소수자에 대해 아량이 넓지 못한 한국 야구계의 태도를 비판하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그동안 누락됐던 재일동포 야구단의 역사를 이 작품을 통해 복원하려고 한다. 김명준 감독은 “야구팬들 중 적어도 한 명이라도 이 영화의 의미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영화에 대한 의의를 밝힌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의 결말부에서는 시구를 마친 전 재일동포 야구단 선수들과 영화의 제작진이 서로 섞여 경기를 펼친다. 경기의 내용에 상관없이 카메라에 포착된 이들의 얼굴에서는 땀방울보다 웃음이 더 커 보인다. 그동안 조국에 가졌을 섭섭함의 감정이 완전히 휘발된 듯한 표정은 결국 김명준 감독의 마음이 전해졌다는 방증이다. 1982년 봉황대기에 출전한 재일동포 야구단 외에도 더 많은 그라운드의 이방인이 복권과 화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 또한 한국야구의 역사라는 것을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증명한다.

 
시사저널
(201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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