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볼> 조정래, 김보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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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원더스는 한국야구 최초의 독립야구단이자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단이다. 프로야구 리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로 일궈낸 통산 90승 25무 61패라는 놀라운 성적, 이를 바탕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선수들이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게 된 신화 같은 이야기. 그리고 공식 출범 3년 만에 맞이한 갑작스러운 해체 소식. 하지만 고양 원더스가 남긴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 번 실수가 실패와 동일시되고 패배자라는 굴레 속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이 일상화된 한국. 그와 같은 현실에서 고양 원더스는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가치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줬다. <파울불>은 바로 기적과 같은 새 출발의 이야기로 울림을 주는 영화다. 고양 원더스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던 조정래, 김보경 감독과 김성근 감독에 대한,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프로야구 시범 경기가 한창이던 3월 26일에 이뤄졌다.    

<파울볼>을 기획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해주세요.
조정래(이하 ‘조’) : 정원찬 프로듀서님께서 고양 원더스 창단 소식을 접하고 영화화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해주셨어요. 원더스가 창단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2011년 말부터 전주에서 첫 번째 훈련이 있었어요. 이를 시작으로 해외 캠프에서 연습하고 국내로 돌아와 시즌을 치르는 걸 전부 다 찍었고요. 그걸 바탕으로 편집했어요. 그리고 간간이 2기 멤버들 훈련하는 것도 찍고요. 김보경 감독님께서는 3기 멤버 촬영부터 해서 김성근 감독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야구 언론 종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성근 감독님과 인터뷰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고요?
조 : 엄격한 이미지가 있으시잖아요. 김성근 감독님께 가까이 다가가 인터뷰를 많이 시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계를 느꼈다고 할까요. 전 야구를 좋아하고 사회인 야구도 했지만, 김보경 감독님은 야구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을 해주셨어요. 그게 잘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김성근 감독님 인터뷰까지 이어졌어요.

어떻게 김성근 감독님을 녹이셨나요? (웃음)
김보경(이하 ‘김’) : 전 야구를 잘 모르지만, 왜 인터뷰하고 싶은지 김성근 감독님께 먼저 손편지를 썼어요. 개인적으로도 영화감독으로 다시 시작하려는 상황이었는데 감독님께도 원더스에 오셔서 다시 시작하는 거 아니냐, 그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나누고 싶다는 요지의 글을 3장짜리 편지에 써서 드렸죠. 감독님께서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누구야, 궁금해하셨어요. 이를 계기로 인터뷰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죠. 카메라를 앞에 뒤고 이야기하는 거에 귀찮아하셨어요. 감독실에 들어가거나 연습하는 중에 붙어서 얘기를 나누는 경우는 없다고 조정래 감독님께 들었어요. 근데 저는 야구 잘 모르니까 ‘생까야지’ 들이댔죠. (웃음)

두 분 감독님의 역할은 각각 ‘야구’와 ‘사람’으로 분담이 됐군요?
조 : 김성근 감독님(1942년생)이 나이 드셨다고 해도 완전 청년이시거든요.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세요. 자신에게도 그렇고 선수들에게도 룰을 철저히 지키세요. 저희는 프런트에 있는 홍보팀처럼, 몸속의 장기처럼 딱 붙어 있었죠. 김보경 감독님이 합류하기 전까지 저희 팀은 그라운드 안에서 훈련 과정을 기록하고 적절하게 인터뷰를 가미했어요. 김보경 감독님이 합류하면서 ‘사람’에 더 접근해 마음의 문을 계속 열었던 것 같아요.

김 :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걱정하면서 찍었어요. 조정래 감독님이 진행하실 때는 정석 같은 다큐멘터리 방식과 정갈한 카메라 워크 등이 있었는데 제가 초반에 찍은 소스는 완전 개판이었어요. (웃음) 저도 그렇고, 저와 함께 한 스태프들도 상업영화만 해 온 케이스이다 보니까 다큐멘터리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어요. 대신 저 나름대로는 고양 원더스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어요. 사람을 콘셉트로 찍자고 공유를 했어요. 우리가 궁금하면 관객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기존의 고양 원더스를 다룬 TV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지점을 찾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감독님도 그렇고 선수들과 스킨십을 하는데 치중을 했죠.

드디어 김성근 감독의 마음을, 선수들의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 : 퓨처스리그 경기 중 더그아웃에 들어가서 촬영한 적이 있어요. 김성근 감독님께는 촬영 전 설명드렸죠. 시큰둥하면서 모른 척해주셨거든요. 근데 심판한테 경고를 들었어요. 심판이 나중에 매니저를 통해서 경기 중에, 특히 원정 경기에서 더그아웃에 카메라가 왔다 갔다 하는 건 안 된다. 그때부터 요령이 생겼어요. 홈경기 때만 심판에게 미리 양해를 드리고 방해를 하지 않는 선에서 촬영할 수 있었죠. 김성근 감독님 자리 앞에 GoPro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찍다 보니까 못 보던 컷들을 얻게 됐어요. 처음에 불안했던 요소들이 조금씩 사라졌던 거죠.

언론으로 접하던 김성근 감독님을 직접 대면해 보니 어떻게 다르던가요?
조 :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적장일 때는 굉장히 미워했죠. SK 와이번스 감독님일 때 공공의 적이셨잖아요. (웃음) 야구에 대해서 해박하시고 19연승을 이끌기도 하셨잖아요. 김성근이라는 인물 자체가 궁금했어요. 직접 촬영을 하게 되니까 신기했죠. 현장에서 감독님이 이렇게 가르치시는구나. 어떤 지도자도 감독님이 직접 그라운드에 아침부터 나와서 밤낮으로 함께 하는 경우가 없대요. 선수들도 처음 경험하는 거래요.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됐죠.  

<파울볼>은 김성근 감독님을 비롯해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에게도 주목하는 작품이에요. 워낙 사연이 많은 선수들이잖아요.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이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까 영화 안에서 선수들과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했겠죠?
조 : 그렇죠. 김성근 감독님이 주인공으로 비치지만, 이 작품은 야구 경기를 하는 ‘사람’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잖아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니까요. 원더스 선수들이 조연이 아니라 함께 하는 주연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죠.  

김 : 야구를 몰랐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님이 ‘야신’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가 한 명의 성공 신화로 그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어요. 김성근 감독님께서 워낙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편집 과정에서 감독님 분량과 들어갈 자리를 정해놓고 선수들 이야기를 넣었다, 뺐다 균형을 잡아갔어요.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기 전 방출 당하기도 했었고 모두가 새롭게 출발하는 선수들이었는데 그 안에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 해체 소식을 듣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느꼈을 절망 등의 이야기를 넣었죠.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절망적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했어요.  

스킨십을 중요한 접근 방법으로 삼았던 만큼 인간적으로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과 아주 친해지셨죠. 그래서 갑작스러운 고양 원더스의 해체 소식에 누구보다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조 : 생각도 못 했죠. 지옥 훈련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좋은 성적을 냈고 많은 선수가 프로팀에 진출했잖아요. 김성근 감독님이 맡았던 팀이, 선수들이 왜 잘할 수밖에 없는지를 목격했던 거죠. 단순히 선수들을 ‘굴려서’ 됐다는 게 아니에요. 감독님의 훈련법은 아이컨택에 가까워요. 그게 정말 다른 거죠. 그런 모습을 통해서 인간 승리라는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예상한 대로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김 : 그때 조정래 감독님은 오사카에 계셨어요. 3기 촬영 때부터는 빠지셨거든요. 해체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는데 통화가 안됐어요. 그래서 저희 팀만 가서 촬영했어요. 코치님들도 당일에 선수들 알기 5분 전에 해체 소식을 아실 정도였으니까요. 편집에는 빠졌지만, 감독님이 출근하시고 단장님이랑 얘기한 후에 코치님들을 감독실에 부르셨어요. 다음 시즌 준비하러 온 첫날에 해체 소식을 들었으니 모두 ‘멘붕’이었던 거죠. 저는 충격이라기보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정신이 없었어요. 저희도 많이 울었어요. 어떻게 선수들과 얘기를 하고 촬영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건 카메라를 돌려야 하는 게 감독님의 의무라는 게 그날만큼 힘든 적이 없었겠네요?
김 : 그걸 기록해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말 독하게 다 찍었어요. 분량만 해도 엄청나요. 카메라 4대를 돌렸거든요. 이들에게 오늘을 꼭 기억시켜주고 싶다, 당시만 해도 이 영화가 개봉하게 되면 이 장면을 쓸 수 있을지 몰랐어요. 다만 그걸 담아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프로 구단에서 받아주지 않고 버려진 선수들이 다시 절망을 맛본 순간인데요. 영화는 여기에서 또 다른 희망을 보며 끝을 맺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김 : 해체는 팩트죠. 끝이고 절망이었죠. 그래도 아주 작은 씨앗 같은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해체 당일 청각장애를 가진 박병우 선수와 인터뷰를 했어요.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말을 못하겠대요. 그러다가 할 말이 생각났다고 왔어요. 끝까지 해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감독이나 코치가 돼서 자기 같이 장애가 있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해줬어요. 해체가 힘들었을 텐데 그 이후에도 선수들은 새벽같이 계속 훈련에 나왔어요. 그때 느꼈죠. 해체를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그게 저는 아주 예뻤어요.  

<파울볼>을 만들고 나서 프로야구 개막을 지켜보는 기분은 남다르겠죠?
조 : 햇수로 4년, 기간으로는 3년의 기록인데 김보경 감독님과 저는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지도 몰랐어요. 여러 가지 부침 속에서 이렇게 개봉을 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해요. <두레소리>(2011)도, 오랫동안 준비한 위안부 소녀 이야기도 혹자들은 저에게 마이너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로 헤맨다는 얘기를 해요. 김성근 감독님께서 “끝까지 연습하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덤덤하게 말씀하셨어요. 저에게 울림이 컸어요. <파울볼>을 작업하면서 감독님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노력하고 생각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참 감사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 그들 모두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어요. 요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더 힘든데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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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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