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은 혜성과 같이 등장한 영화다. 올해 3월 3일에 개봉하지만 이미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한 경쟁부문 ‘뉴컨런츠’ 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영화는 어느 고등학생의 자살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추적하는 것이 <파수꾼>이 의도하는 바다. 사건의 중심에는 기태(이제훈),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 세 친구의 살얼음 같은 우정이 놓여있다. 사이가 좋을 땐 평생이라도 함께 할 것 같은 이들이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 가벼운 행동 하나가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이들의 우정은 금세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이다.
이처럼 <파수꾼>의 등장인물들은 겉으로는 강한 척 속으로는 관계의 어긋남에 대해 갈등하고 도망치려 하는 등 하나같이 나약하게 그려진다. 세 친구들은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방어기제로 친구에 대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 까닭에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의 자살을 뚜렷한 하나의 이유로 제시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인간의 관계학에서, 특히 기태, 희준, 동윤과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는 청춘들에게 감정은 한치 앞의 상황도 예측불가능하게 만드는 불완전한 체계임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복잡 미묘한 감정의 파장을 잡아내기 위해 윤성현 감독은 인물별로, 시기별로 장면을 교차하며 최대한 진실에 다가설 수 있도록, 다만 그 판단은 관객의 몫이 될 수 있도록 연출에 주안점을 둔다. 사실 제목의 ‘파수’(把守)에는 무언가를 지킨다는, 그리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극중 내용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회피하는 ‘모순’을 취한다. 이는 또한 영화를 작동하는 서술과 형식의 중요한 기제이기도 하다. 청춘을 다루면서 죽음을 이야기하고, 성장영화이면서 느와르처럼 잿빛을 띤, 과연 <파수꾼>은 정의하기 힘든 청춘의 모순된 이미지를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형태로 구현한다.
이 영화의 탄생 자체도 흥미로운 모순(?)의 배경 위에 자리 잡는다. 사실 <파수꾼>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다. 그중에서도 <파수꾼>은 다른 작품에 비해 작업시간이 유독 더뎠다고 알려진다. 시나리오부터 촬영까지 학교에서 제시한 날짜에 맞춘 적이 없었던 것. 이에 한국영화아카데미 측에서는 작업을 독려하는 의미에서 PD 배정을 취소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은 오히려 작품 혹은 장면의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기동성이 생긴 까닭에 감독의 미학이 그대로 살아났다는 점일 테다.
<파수꾼>은 핸드 헬드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촬영감독의 수전증을 의심할 정도로 카메라가 과하게 흔들린다. 메이저 상업영화라면 거의 모험이라고 해도 좋을 시도인데 이에 대한 윤성현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모순된 청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헨드 헬드가 적합한 카메라미학이고 또한 그럼으로써 심리가 주가 되는 영화 속 배우들에게 연기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심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연기가 매우 중요했다. 좋은 연기가 나오려면 기술적인 부분들이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촬영감독과 합의를 보길, 배우들을 프레임에 가두지 말고 핸드 헬드를 통해 자유롭게 풀어주자고 했다. 그래서 촬영, 조명, 그리고 녹음까지 모두 배우의 동선에 맞춰 움직였다.”
청춘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는 점에서 특권계급이라 할만하다. 극중 세 친구, 아니 한 친구의 자살 이후 남게 된 우리의 주인공들 역시 차가운 시련을 이겨내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성숙을 이뤄낼 것임이 자명하다. 그것은 <파수꾼>을 장편 데뷔작으로 발표한 윤성현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그는 촬영 과정에서의 불리한 조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졸업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극장 개봉을 이루는 데까지 이르렀다. 청춘의 본질을 영화 내외적으로 구현한 예는 한국영화에서 좀체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그만큼 <파수꾼>은 두드러진 영화이면서, 그래서 또한 윤성현 감독의 미래가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KBS 저널
201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