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화 만들기 갈수록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제작 지원 요건을 따르는 건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그에 맞춰 간신히 완성을 해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는 왜 이렇게 문제 삼는 장면이 많은지, 상영등급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역으로,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면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미래의 영화감독을 꿈꾸는 예비 영화인들을 위한 특강 시간을 마련했다. 강의명 하여, ‘충무로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남는 법’ <시>의 시나리오 0점 논란부터 <악마를 보았다> 제한상영가 파문까지, 최근 문제를 일으켰던 영화들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단, 본 강의대로 영화를 만들 경우, 일말의 작품성도, 반 푼어치의 개성도 보장할 수 없음을 미리 경고한다. 순전히 영진위, 영등위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 제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럼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수강생들은 교재의 1장을 펴주기 바란다.
1장 0점 안 받는 시나리오 쓰는 법
시나리오를 소설 형식으로 썼다는 이유로 영진위 제작지원사업 심사과정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가 0점을 받은 사태가 있었더랬다. 이후 영화를 포기하는 예비 영화인들이 줄을 이어 주변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천하의 이창동이 0점이라면 나 같은 듣보잡이 쓴 시나리오는 마이너스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것’이라며 자포자기한 것. 본 강의는 바로 그런 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마련된 시간이다. 사실 영진위가 바라는 시나리오 요건은 생각 외로 쉬운 편이다. 전통의 시나리오 작성법대로 씬(scene) 넘버 적고 지문과 대사를 갖다 붙이면 해결될 문제다.
오히려 영진위 지원 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시나리오 형식에 상관없이 심사 위원의 심기를 거스른 일이 없었는지 신중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창동 감독처럼 노무현 정권 당시 친정부 성향의 발언과 활동 전력의 소유자라면 심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현 영진위의 참여정부 알레르기 증상은 <시>에 각본상을 수여한 칸영화제의 세계적인 명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수강생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영진위 관계자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의 연마에 있다. 조희문 위원장과 같은 고위직 포섭에 성공한다면 합격은 따 놓은 당상에 가깝다. 일례로, 조 위원장은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심사가 마감된 지원사업의 심사 위원에게 전화를 돌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특별 심사를 요구한 전과가 있다. 하여 제작지원사업 지원 시, 시나리오 맨 위에 ‘조희문 위원장 출연 예정’ 등과 같은 훈훈한 멘트를 써놓는 것이 중요하다. 가산점은 물론 특혜까지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일부 심사위원의 폭로와 언론의 반발에 대해서는 본 강의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려드린다.
2장 청소년 모방 위험의 이해와 실제
각종 특혜를 통해 시나리오 지원 사업에 통과하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정 장면의 수위에 따라서 이후 등급 판정에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의 등급을 판정하는 영등위의 심사 기준을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영등위의 청소년 사랑은 유별나기로 잘 알려졌다. 그들이 보기에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자아 발달이 덜 된 까닭에 각종 ‘모방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게 영등위의 입장이다. 동반 자살 모방 위험 때문에(<여고괴담5: 동반자살>), 주가 조작 모방 위험 때문에(<작전>), 동성애 모방 위험 때문에(<친구사이?>) 등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영등위의 각종 ‘모방 위험’ 때문에 숱한 청소년 관람가 영화가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피를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 청소년 모방의 위험이 제로인 동물이나 로봇 주연의 영화만 만들어야 하나?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지금처럼 투자 환경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비싼 돈 들어가는 <킹콩>과 <트랜스포머>같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 본 강의가 더 좋은 방법을 알려주겠다. 청소년이 주인공이라면 집, 학교, 학원을 왕복하는 일상을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처럼 무료하게 묘사한 영화를, 성인 주연이라면 <인생극장> <생활의 달인> 유의 도덕 교과서에 실려도 무방한 내용의 영화 연출을 강력 추천하니, 밑줄 쫙! 도리어 영등위에서는 모방을 장려하며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화답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어찌됐든 영등위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좌빨용공’ 영화에 물들지 않고 (가령, <반두비>의 “왜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은 ‘쥐’인가요?” 같은 대사) 참되거라 바르거라 자라주는 것이 목적이다. 단, 이런 내용의 영화는 극장에서라면 흥행 가능성이 극히 낮은 전차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본 강의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거.
3장 제한상영가 판정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최근 <악마를 보았다>가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으면서 수강생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신체 절단과 시체 훼손, 그리고 인육 먹는 장면을 넣고 싶어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훼손을 들어 제동을 거는 영등위의 보수적인 판정 앞에 무슨 방도가 없느냐는 거다. 없긴, 있다. 물론 지적당한 장면을 삭제하거나 길이를 줄여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에 성공한 <악마를 보았다>의 사례도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경우, 오락가락하는 영등위 판정의 사각지대를 노릴 필요가 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라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해지는 영등위의 판정 사례를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예컨대, <악마를 보았다>의 시신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처럼 <킬빌>(청소년관람불가)에는 절단된 팔과 다리와 심지어 머리통이 스크린에 난무한다. 또한 인육을 먹고, 개에게 던지는 할리우드 영화도 세고 셌다. <얼라이브>(15세 관람가)에는 추운 겨울 조난당한 생존자들이 먹을 게 없어 동료의 살을 뜯어 먹는 장면이 나오고 <왓치맨>(청소년관람불가)에는 신체 일부를 먹어치우는 개도 등장한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해결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용상 신체 절단, 시체 훼손 등과 같은 불경한 장면을 넣어야 한다면 할리우드 영화로 둔갑하면 된다. <박쥐>처럼 할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인다든지(송강호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됐다!) 최후의 수단처럼 할리우드 출신의 미국인을 신체 절단 및 시체 훼손의 재료로 활용해 볼만하다.(미국 외 지역 출신은 영등위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쯤에서 다들 예상하겠지만, 이 방법 역시도 본 강의의 책임에는 한계가 있다. 워낙에 영등위의 판정 잣대가 바람 앞에 갈피 못 잡는 오줌발처럼 일관성이 없어 언제 돌변할지 어떻게 알겠냐고.
4장 강의를 마치며
예비 영화감독 여러분들은 어디에서도 수강할 수 없는 족집게 명강의에 힘입어 특별한 영화 만들기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영진위, 영등위의 각종 정신 나간 요구에 버틸 수 있는 강심장과 비위 연마에도 함께 힘써줄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허나 이 모든 것이 임시방편일 뿐 하루 빨리 영진위와 영등위가 실종된 원칙과 탈골된 상식을 되찾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 영화계는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건강한 영화생태계로 군림할 것이다. 이로써 예비 영화인들에게 한걸음 다가가는 강의가 된 것 같다.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다.

ARENA
2010년 9월호